레인코트, Mac의 역사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오프닝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런지 모르겠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위대한 순간으로 시작을 해보고자한다. The Beatles의 Paul McCartney경은 그 위대한 축제의 오프닝 무대에서 Hey Jude를 연주했다. 그 순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라는 말이 이보다 어울리는 순간이 역사 중 또 있었나 싶다. 그가 Hey Jude의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그 장소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따라 불렀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국적은 상관없었다. 전 세계의 누구나 그 음악을 따라 부를 수 있는, 세상을 하나로 묶는 문화의 힘을 Paul McCartney경은 보여주었다. 그런 위대한 밴드가 만든 곡 중 옷을 이야기한 곡이 있다. 바로 1967년 발매된 Magical Mystery Tour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Penny Lane이라는 곡이다. 그 곡의 가사 중, “...And the banker never wears a mac in the pouring rain, very strange...”(번역: 그 은행원은 비가 와도 mac을 절대 입지 않아요 아주 이상하죠?) 이때 잘 해석되지 않는 단어가 있다, Mac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사실 Mac은 최근에 상당히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이다. Apple사(社)의 컴퓨터가 Mac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Mac은 사실 레인코트(Raincoat)를 뜻하였다. 그리고 스펠링 또한 다른데, Apple사(社)의 Mac은 Macintosh이고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레인코트는 Mackintosh(이하 매킨토시)이다.(여담으로 매킨토시로 발음되는 유명한 회사 중에 오디오를 만드는 McIntosh가 있다.) 그렇다면 Mac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매킨토시는 회사의 이름이며, 이를 창업한 창업주의 이름은 [Charles Macintosh]이다. 찰스 매킨토시는 1766년 12월 29일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염료공장을 운영하던 George Mcintosh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843년 6월 25일 사망하였다. 매킨토시는 화학자였는데, 그는 1823년 왕립학회 즉 The Royal Society(The Royal Society of London for Improving Natural Knowledge), 영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에 회원으로 선출될 만큼 위대한 화학자였다. 그의 화학적 관심과 전문성은 의복으로도 이어지는데, 그가 의복에 화학으로 일으킨 혁명은 사실 환경적으로도 아주 우수한 혁명이었다. 그는 1819년 글래스고에 위치한 ‘Glasgow Gas Work’라는 석탄가스 작업장에서 나오는 암모니아와 타르의 폐기물 전량을 구매에 대한 계약을 맺고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이 연구를 진행함에 따라, 1823년 6월, 타르를 증류시켜 휘발성 액체 탄화수소 혼합물인 [나프타(naphta)]를 얻게 되었다. 환경을 위협하는 폐기물에서 인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혼합물이 탄생한 것이다. 나프타는 새로운 힘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고무를 녹인다는 것이다. 그는 나프타로 인도고무(india-rubber)를 녹여 두 패브릭 사이에 위치시켜 완벽한 방수 원단을 만들고 이에 대한 특허를 1823년 6월에 냈다. 그의 특허번호는 4804번으로 “대마(hemp), 아마(flax), 울(wool), 면(cotton), 실크(silk), 가죽(leather), 종이(paper) 그리고 다른 물질들을 물과 공기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한다.”라는 내용을 갖고 있다. 지금은 합성섬유가 넘치고, 그 기술력 또한 너무나 대단하고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합성섬유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이 발명은 인류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레인코트의 탄생이었다.
글을 계속 읽다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매킨토시의 이름과 브랜드의 이름의 철자가 다르다는 것이 그것이다. 매킨토시는 새로운 기술과 함께 여러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1824년 Manchester Gas Work의 이사이자 방적공 및 방직공이었던 사업가 Hugh Hornby Birley와도 파트너십을 맺게 되었으며 이 결과는 “k”가 추가된 Mackintosh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방수소재를 생산하는 공장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원단은 완벽한 방수소재였나? 그렇지는 못했다. 여름에는 끈적거렸으며 겨울에는 너무 뻣뻣했다. 그리고 비를 막아주긴 하였으나 박음질이 들어간 실과 그 구멍을 통하여 빗물이 흘러 들어오기도 하였다. 또한 울과도 문제가 있었는데, 울 자체가 가진 기름으로 인하여 고무가 상했다. 이를 해결한 것은 매킨토시와 파트너십을 맺었던 Thomas Hancock의 발견덕분이었다. 그는 미국인인 Charles Goodyear와 함께 1839년 가황고무를 발견하였고, 납품처인 매킨토시에, 공급책이기도 했던 그들의 도움을 힘입어 1843년 더욱 가볍고 유연하며 편안한 코트를 만들 수 있었고 이는 염색도 용이하게 했다. 대부분의 문제점은 가황고무로 해결이 되었으나 이 또한 바늘구멍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것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 고안이 되었고 그것은 접착제를 이용한 새로운 접착방식이었다, 모든 솔기는 손으로 직접 접착제를 도포하고 테이프로 고정이 된다. 이것으로 과거에 가졌던 바늘구멍에 대한 단점을 없앨 수 있었다. 이 개선된 방식들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방수 이외의 문제도 있었다. 고무냄새와 환기의 문제가 그것이다. 고무냄새는 고무에 향을 입히는 것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해결을 하였고, 환기의 경우에는 후에 겨드랑이 아랫부분 구멍을 내어 환기시키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매킨토시의 발명으로 탄생한, Mackintosh의 라벨을 달고 있는 이 위대한 코트는 영국의 곳곳으로 스며들어갔다. 노동자들은 그의 옷을 입었고 마차꾼들도 그것을 입었으며, 승마복으로도 입혔다. 이 옷은 트렌치코트의 형태로 군복으로도 입혔고,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영국 철도에 공급되기도 했다. 1834년 스코틀랜드의 한 과학자의 발명으로 시작된 매킨토시의 코트는 영국의 모든 곳곳에 모든 삶에 역사를 같이 한 그런 옷이 되었고 지금까지 하나의 클래식으로 남아있으며 그 역사와 삶의 모습을 지금도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사실 이 옷을 한국에서 입고자 한다면 참 맞지는 않다. 왜냐면 한국의 우기는 30℃를 상회하는 한여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 날씨에 이 코트를 입는다면 아마 온 몸에 땀띠와 함께 열병으로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봄 혹은 가을날 내리는 비에 이 특유의 냄새와 사각거림이 함께하는 매킨토시의 코트를 입고 걷는다면 새로운 낭만을 마주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그 본질에 있지는 않지만, 그 삶의 모습을 생각하며 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싶다. 영국 리버풀의 페니레인 거리를 Mac도 입지 않고 걷는 이상한 은행원이 아닌 남성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이해하고 입는, 그리고 삶의 모습을 이해하고 입는 그런 이상한 남성으로서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치이자 클래식의 가치이지 않을까싶다.
*여담 : 찰스 매킨토시는 철을 강철로 만드는 효율적인 생산방법을 고안하기도 하였으며, James Neilson과 고품질의 주철을 생산하는 공정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Charles Tennant과 함께 표백제를 발명하여 많은 돈을 벌기도 하였으며, 스코틀랜드에 David Dale과 함께 Turkey-Red라는 색을 만드는데에 참여했고, 스코틀랜드 처음으로 명반(alum)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기도 했다.
** 여담 : 구글은 2016년 12월 29일 찰스 매킨토시 탄생 250주년 기념 로고를 띄우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로고가 서비스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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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JUL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