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패션 알려주는 남자입니다.
사회에 어떤 사상이 박히기 시작하면 그것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편견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를 고착화가 만드는 편견이라 칭하겠습니다.
나치체제, 소련, 북한을 보게 되면 이것이 사회화가 되어 전 국민을 세뇌하게 됩니다.
사고는 멈추고 편견이 답이 되는 사회가 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압니다.
상당히 위험한 사회로 진실은 전혀 해당 사회에 통하지 않고 위에서 이야기하는 자신만을 위한 이득으로 가득 찬 거짓의 말이 사회를 통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붕괴하게 됩니다.(물론 북한은 아직이지만..)
이것은 비단 사회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의류학을 전공하면서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이름이 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이름이 유명하면 무조건적으로 신격화가 되어 버리고 그들이 어떤 결과물을 내든 상관없이 비판이 죄가 됩니다.
아니면 이름 있는 누가 비판하면 그 디자이너는 절대 다시 메인스트림으로 살아나기 힘듭니다.
전문가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 시장에서는 그 이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주입식 교육을 받아 대단한 사람이라고 소화하게 되지요.
물론 유명해진 이름들은 대단한 사람들이 맞겠지만, 시장에서 이에 대한 담론도 비판도 없이 유명해지는 것은 전 반대입니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국주의나 공산당 같이 비판을 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으며 비판의 자유가 있습니다.
물론 거짓과 선동으로 비판을 하는 것은 절대 안 되지만 건강한 비판과 토론은 항상 환영입니다.
사실 저는 [곤조]가 무척이나 강합니다.
제 색이 무척이나 강하고 제 표현방법, 의견 등이 상당히 공격적입니다.
이는 제가 갖고 있는 단점이기도 하지만, 제 생각을 말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더 확실하게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누군가 무언가에 대해 [좋아함], [개인의 취향]을 강요하게 된다면 '내가 왜??'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고 상당히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생각과 논리를 펼쳐 나가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것이건 저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나에게 그것이 맞지 않는다면 다 쓰레기일 뿐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물론 그게 쓰레기라고 판단을 한다면, 쓰레기인 이유를 2박 3일 정도는 밤새며 객관적인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지만요.
그렇기에 신이 되어버린 이름들은 항상 불편합니다.
특히 요즘 시장은 더욱이 그렇죠.
어떤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대기업에 먹힌, 돈 앞에 허울뿐인 브랜드들이라고 저는 생각하니깐요.
정말 불같이 살아있는 브랜드는 몇 없습니다.
2010년 초반만 하더라도 Ermenegildo Zegna의 경우 정말 완벽한 아이덴티티와 철학 그리고 실루엣이 있었습니다.
수면 위로 올라와 세계를 호령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밀라노의 사르토리아를 보여주고 싶은 의도들이 여실히 보였죠.
더욱 재밌는 건 이때 제냐에 디자이너가 없었다는 것이죠.
제냐 하우스가 진행하는 쇼였습니다.
브랜드를 사랑하고, 브랜드를 이해하고, 브랜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담론의 결정체였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제냐의 쇼? 저에게는 좀 강한 말로 쓰레기에 가까울 뿐입니다.
그 좋은 원단들이 아까울 따름이죠.
하지만 아마 매출을 올랐을 겁니다.
그렇기에 포기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것들이 제냐에서 추구하는 것은 제냐의 브랜드 색에 맞는지는 의문입니다.
제가 앞서 이야기한 제냐의 케이스는 무척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디자이너 없이 쇼를 진행하다 디자이너를 선임해서 한 경우는 제가 알기로 없기 때문이죠.
패션, 즉 이 시장에 편승하여 이름을 신으로 만들어 재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옳으냐? 에 대해선 저는 보수적인 입장으로 반대입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강하게 말하는 게 맞냐?라고 말씀하시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그분들께 질문을 해보자면 “의복의 본질과 그 옷의 기본 실루엣과 역사를 아는가? 그것을 알고 의복의 본질을 즐기는 것인가 아님 시장을 즐기는 것인가?”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의복의 본질을 너무나도 모릅니다.
제가 제 글에서 의복의 역사를 많이 다루진 않았지만 특히 남성복에서는 많은 역사들이 있습니다.
그 옷이 왜 세상에 나왔는지, 이 세상에 나와 왜 아직까지 즐겨지고 있는 지를 많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왜 그 기본이 수많은 변주를 거쳐 여러 디자이너들에 의해 소개되고 있는지, 왜 나는 이것을 입는지에 대한 개인적 고찰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쁘면 된 거 아냐? 는 너무 위험한 구매욕구입니다.
[예쁘다.]라는 형용사가 가진 주관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예쁘다.]라는 형용사를 제공하는 브랜드들은 그것을 계속 바꿔가며 유행을 선도하며 [예쁘다.]를 과거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관을 해치고 소비자의 눈을 가려버리는 행위입니다.
눈이 가려진 우리는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이는 제가 이 글의 가장 앞에 말한 이야기의 연장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붕괴하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을 벗어나려면 우리는 [패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패션을 벗어던지고 의복의 세계에 좀 더 깊이 들어가 그 본질을 탐닉해야 합니다.
그러기엔 수많은 경험이 필요하겠죠.
저는 여러분의 그런 경험을 돕고자 합니다.
우리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처럼 자신 있게 구매하고 입으며 패션의 풍랑에 싸우지만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 딜레마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제대로 무언가를 잡을 수 있는 장비들이 필요합니다.
그 장비는 경험과 지식 그리고 철학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저와 같이 좋고 강력한 장비들을 챙기며 거친 풍랑을 맞서 출항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07JUN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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