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전소설을 좋아합니다.
고전소설을 읽으면 세계 곳곳에 시대를 초월한 어른들과 수많은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받은 위안은, 시대는 다르지만 인간 본연의 시대는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항상 사유하며 존재에 질문을 던지고 삶에 의의를 묻습니다.
그것이 현재 자신만의 고통이 아닌 기원전부터 기록된 스승들의 글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과거에도 같은 사유가 존재했다는 것, 그 오래된 개인의 사유에 결론이 있다는 것, 저는 그러한 변하지 않는 과거의 것에 시대를 초월하는 위안을 받는 존재입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본다면 책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사유를 좋아했고, 사유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사유가 제공하는 정신적 고통을 과거의 스승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시대는 변하며 기술 또한 발전하지만, 인간의 본연은 수많은 변함들 속에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죽음 그리고 그 안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감정들 등에 대한 사유와 토론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까지 토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욱이 그렇기에 사유의 근원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해야만 하는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제 짧은 경험 탓인지는 몰라도,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은 고전소설처럼 쓰여지기를 바랐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쓰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저만의 사유가 누군가의 사유가 되고, 그것이 또 기록으로 남아 미래에도 사유가되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적힌 것이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입니다.
<어느 늙은 테일러의 구원>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하자면, 그저 우리네 인생입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삶을, 또 죽음을 어떻게 사유하며 마주해야 하고 그 안에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또 어떻게 존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아주 평범하지만 어려운 주제를 가진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더하여, 앞서 출판사 서평과 같이 이는 ‘남성복 찬가’이기도 합니다.
저는 남성복의 역사와 가치가 다음 세대에도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 본질을 적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아주 종교적인 글이 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면 인생을 어떠한 태도로 마주해야 하는지에 관한 글이 될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적인 배경지식이 아주 약간 들어있기도 하지만, 이는 ‘이런 게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편하게 읽으셔도 무방할 그런 소설입니다.
소설을 적으며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은 아무래도 단어입니다.
단어라는 것은 힘을 가지고 있으나, 이 힘이라는 것은 보였을 때만 힘이지 보이지 않는다면 그저 스쳐지나가는 돌멩이같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혼용이 가능한 단어면 되도록 일반인에게 쉬운 단어를 선택하여 단어에 힘을 실어주고자 했습니다.
마치며, 옷도 클래식을 좋아하다보니, 글도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클래식에 적힌 클래식을 여러분께서 같이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모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저는 이만 글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소설 중간중간 이스터 에그와 유머 또한 느껴주시기를 바라며, 책의 뒤 표지를 완독 후 한 번 확인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오준엽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