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급 며느리>와 웹툰 <며느라기>
(본 글은 아트나인 네이버 카페에 작성한 아트나이너 리뷰를 옮겨온 글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아울러 ‘고부(姑婦)’라고 한다. 고부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가부장제가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우선순위에서 남성보다 뒤처졌고, 여성들 중에서도 며느리는 가장 뒷전이었다. 이렇기에 고부의 사이가 좋은 가정을 찾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시어머니에게 직접적으로 화내기도 힘들었기에 고부갈등은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었다. 이에 과거의 며느리들은 그들의 고충을 담은 민요를 부르며 시집살이의 한을 풀었다. 며느리들의 희생으로 갈등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님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세[同壻]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 경상도 민요 ‘시집살이 노래’ 中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해 가면서 고부 사이의 갈등 양상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사회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여성들은 점점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자기 의사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며느리들은 더 이상 과거의 며느리들처럼 참지 않은 것이다. 여성들이 가정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면서 고부갈등은 점점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드러난 고부갈등은 TV 드라마를 통해 수없이 다뤄졌고, 토크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을 통해 며느리들의 한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또, 한국사회가 다문화사회가 되어가면서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프로그램도 등장했고, 최근에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 민사린의 신혼생활 이야기를 담은 웹툰 <며느라기>가 화제가 되곤 했다.
웹툰 <며느라기>를 보고 고구마 먹은 듯 답답했을 독자들 그리고 고부갈등에 지쳐있을 며느리들에게 사이다를 마신 듯한 시원함과 통쾌함을 줄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바로 영화 <B급 며느리>다. 영화 <B급 며느리>는 영화의 감독인 선호빈 감독의 실제 가족 이야기로 그의 아내인 ‘진영’과 시어머니 ‘경숙’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진영’은 자신의 삶을 간섭하는 시어머니 ‘경숙’의 태도에 화를 내며, 자신의 아들의 옷을 멋대로 갈아 입히는 것에도 불만을 토로한다. 결국 ‘진영’은 명절이나 제사 등의 가족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지켜보던 ‘호빈’의 중재로 타협을 해보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작년 한국 영화계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다수 개봉하고 흥행까지 한 것이다. 주로 이전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사회고발 다큐멘터리가 주를 이루었고 관객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공범자들>의 경우 누적관객수 26만 명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8년에도 다수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미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B급 며느리>는 기존의 다큐멘터리의 대세와 달리 관객들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사회의 갈등 해결도 중요하지만 정작 바로 옆의 가족의 갈등에도 관심을 가지자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흔히들 다큐멘터리 영화가 재미없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감독은 자신의 불행을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즐겁게 영화를 관람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씁쓸함을 남겨 ‘진영’과 ‘경숙’이 직면한 갈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누구나 제목을 들었을 때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자신의 영화 제목에 ‘B급’이라는 단어를 썼으니 말이다. ‘B급’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최상급보다 질이 다소 떨어지는 무언가에 붙이는 수식어이다. 영화 속에서 ‘경숙’은 ‘진영’을 두고 B급도 아닌 F급 며느리로 평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A급과 B급을 나누는 조건과 판단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명절, 제사 때마다 꼬박꼬박 참여해 가사를 도와주는 것, 기념일마다 선물을 챙겨 드리는 것, 시어머니가 뭐라 하면 말대꾸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 등등일 수도 있고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들이 한국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평가 기준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기준들은 누가 정했고 왜 보편적일까?
왜 이들은 이렇게 서로 갈등할까? ‘진영’과 ‘경숙’ 둘 중 한 사람이 악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진영’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법고시 1차를 합격한 재원이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결혼 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는데”라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특히 ‘진영’은 집에서 테이블을 직접 페인트 칠하는 등 스스로 하는 일에 행복감을 느낀다. '진영'은 그저 모범적이고 행복한 사람이었다. ‘경숙’도 마찬가지이다.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모습을 통해 '경숙'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신혼시절 ‘진영’을 찍은 영상에서 ‘진영’은 시어머니가 착하다고 직접 말하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가 근본적으로 악하지 않다.
고부갈등이 개인적인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면 구조적인 문제로 고민할 수 있다. 가부장제의 한국사회에서 ‘며느리’가 집안 내에서 갖는 위치는 항상 최하위였다. <B급 며느리>에서 친척 중 한 분이 “며느리는 노예다.”라고 말한다. 신분제가 폐지된 것이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노예’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누가 나에게 노예로 살라고 하면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또한 이런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집안의 대소사에서 음식 준비 등을 해왔다. 하지만 시대가 흘러가며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며 가사를 전담하는 여성의 수가 줄어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에게만 가사노동을 요구해온 가부장제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추가적인 짐을 부여한다. 이를 여성들이 못마땅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사회 구조를 우리는 개선해 나가야 한다.
우선 <B급 며느리>를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그리고 남편과 시아버지도 같이 영화를 보며 우선적으로 서로의 감정과 관점을 이해해 서로 타협을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거기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관객들이 한국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는 가부장제와 가정 내 여성의 인권에 대한 담론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담론을 통해 영화 <B급 며느리>를 보고 세대가 다른 여성들이 고부갈등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손을 맞잡고 그들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 저항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