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버드>와 <리틀 포레스트>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새로운 글을 작성했습니다. 그동안 글을 발행하지 않은 것은 저의 게으름 탓입니다. 앞으로 조금 더 분발해 글을 발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시사회로 관람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사는 크리스틴은 동부의 뉴욕과 같은 대도시를 동경한다. 그런 그녀는 가난한 형편 탓에 잡지 하나 사는 것도 거절당하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하지 못해 항상 불만을 지닌 소녀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레이디 버드(Lady Bird)"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 달라고 하는 독특함을 보인다. 그녀는 절친한 친구 줄리와 함께 가는 하굣길에 푸른 저택을 보고 그곳에서 사는 것을 꿈꾸고, 엄마와 함께 쇼핑과 모델하우스 구경을 하는 것이 크리스틴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졸업반이 되어서야 존재를 알게 된 연극부에 입 부하여 대니와 연애를 시작할 때 기뻐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도 기쁘게 만든다. 사랑도 끝나고 엄마와 관계도 악화되지만 그토록 꿈꿔왔던 동부 소재의 대학으로 크리스틴은 진학한다. 하지만 뉴욕에 간 크리스틴은 허전함을 느끼는 것만 같아 보이고, 교회를 가서 무언가를 깨닫는다.
이 영화를 무심코 보면 사춘기 시골 소녀의 일상을 다룬 흔한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 이면에는 중요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이 영화는 할리우드 시스템 하에서 젊은 여성 감독이 제작한 영화이며 여성 감독이 여성의 이야기를 한 영화이다. 그리고 감독이자 배우 그레타 거윅이 영화계에서 갖는 포지션 등등은 단순히 넘겨 버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글에서 페미니즘을 다루기엔 내가 가진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기에 다른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지난 2월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다. 영화의 배경, 시점, 분위기, 주인공의 연령대 등등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분명히 두 영화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은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혜원의 고향은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 즉, 도시(수도권)가 아닌 지방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크리스틴과 혜원은 지방을 고향으로 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이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실질적으론 취업과 연애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혜원은 배가 고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그녀가 고향에서와 달리 도시에서 무언가를 채우지 못했고, 이것이 그녀를 허기지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와 유사하게 크리스틴도 뉴욕으로 진학한 뒤 교회를 다녀와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크리스틴이 교회를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럼 두 인물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일까?
두 인물의 변화를 유발한 것은 바로 '익숙함'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나고 자란 고향이 중요한 이유는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익숙함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고 아늑함까지도 준다. 하지만 이런 편안함과 아늑함은 그 존재를 상실하고 나서야 느낄 수 있다. 도시로 나간 두 인물은 익숙함의 상실과 함께 낯선 것들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낯선 만남이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뉴욕에서 크리스틴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소개하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혜원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노력 속에 큰 에너지 소모는 허기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낯선 관계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앞서 이야기했다. 이런 노력은 연기로 나타난다.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위해 진실된 내가 아닌 다른 나를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쉽다. 크리스틴이 파티에서 새크라멘토 출신이라 이야기하자 잘 못 알아듣는 친구에게 샌프란시스코 출신이라 하는 장면은 대표적인 예이다. 혜원 역시 취직과 시험 속에서 진실된 내가 아닌 포장되고 거짓된 자신을 연기하고 다녔을 것이다. 연애 관계에서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 슬픈 자신의 진실된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인물에게 익숙함이 가득한 고향으로 가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을 것 같다. 거짓되지 않은 자신의 본모습을 좋아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자신과 함께 변화해온 동네가 있는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재충전의 공간이다. 더 나아가 인생에서 긴 세월 지낸 공간은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이다. 이는 어릴 적부터 겪어온 그곳에서의 경험과 관계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사람이든 그 사람의 고향의 정취를 내뿜는다.
시작부터 도시와 지방으로 나누어 이야기했지만 이제 그 말을 수정해보고 싶다. 도시와 지방이 아닌 고향과 타향으로 말이다. 크리스틴이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고향 새크라멘토와 가족, 친구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혜원이 마음을 배부르게 하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찾을 수 있는 것도 고향, 가족, 친구들 덕분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 정체성의 밑거름이 된 고향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