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무대 위에서 스스로 일궈낸 꿈

영화 <델타 보이즈>

by MENTAE

비극적인 청춘의 삶?


남성 4 중창 경연대회를 나가기 위해서 남성 4중창단 ‘델타 보이즈(Delta Boys)’가 어설프게나마 결성된다. ‘델타 보이즈’의 구성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델타 보이즈’ 멤버들은 대회를 앞두고 맹연습에 돌입한다. 그런데 ‘델타 보이즈’의 멤버 일록(백승환)은 멤버들과 식사 도중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은 일록은 멤버들보다 먼저 일어나 어디론가 향한다. 일록이 향한 곳은 주민센터로 일록은 참가자 수가 적기 때문에 남성 4 중창 경연대회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이에 대해 항의하러 갔던 것이다. 이 장면은 관객이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거야?”라며 낙심하게 한다. 이러한 가운데 일록은 항의에 대한 민원 접수를 하고 연락을 부탁하고 돌아가는 장면을 통해 관객은 일말의 희망적인 사건 전개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객의 마지막 기대는 1분도 채 가지 않는다. 연락이 없어 다시 찾아간 주민센터에서 일록에게 돌아오는 민원접수자의 답변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요.”라는 답변뿐이다. 여기서 영화가 끝난다면 비극적인 결말이 아닐 수가 없다.

경연대회가 취소된 시점에서 영화가 끝날 경우 비극적인 이유는 먼저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캐릭터에서 기인한다. 남성 4중창단 ‘델타 보이즈’의 구성 멤버들은 평범하지 않은 외모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청년의 모습을 갖고 있다. 일록은 레게 머리라 불리는 드레드 헤어스타일을 하고 매형의 공장에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한다. 일록의 친구인 예건(이웅빈)은 미국 시카고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다. 예건은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고 투 블록 스타일에 머리를 위로 올려 묶은 헤어스타일을 보인다. 또, 예건은 미국에서 취업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고, 한국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대용(신민재)은 시장에서 아는 형과 함께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축구선수 김병지의 헤어스타일과 유사한 머리를 하고 있다. 준세(김충길)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아내인 지혜(윤지혜)와 함께 트럭에서 도넛 장사를 한다. 이들 모두는 취업 경쟁의 낙오자, 꿈이 없고 현실에 타협한 청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멤버들의 표정들도 항상 밝지만은 않다. 게다가 멤버들이 노래한다는 꿈을 위해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현실의 벽에 계속해서 부딪히고 서로 갈등한다. 이와 같은 고난을 넘겨서 맹연습을 시작한 그들에게 꿈의 무대가 사라지는 결말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는 비극적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영화는 희망적인 결말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주민센터를 다녀온 일록은 멤버들에게 경연대회가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대신 일록은 대용에게 “왜 그렇게 노래가 하고 싶은 거예요?”라고 질문한다. 이에 대용은 축구선수 김병지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현역으로 뛰는 열정을 보고 어릴 적에 꿈이 가수였음에도 부끄러워 말하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고 답변한다. 그러면서 중창단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필요가 있는 존재라고 느껴서 하고 싶어 졌고,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대용은 답한다. 일록은 그날 저녁 마음의 변화가 생겼는지 배팅장에서 야구 방망이를 들고 공을 치기 시작한다. 다음날 ‘델타 보이즈’ 멤버들은 머리와 수염을 잘라 단정하게 하고 삼겹살 만찬을 즐긴다. 이후 멤버들은 옷을 깔끔하게 입고 실전 같은 연습으로 노래를 부른다. 멤버들의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영화는 암전 된다.


물론 ‘델타 보이즈’ 멤버들이 추구했던 꿈은 경연대회 출전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들이 연습밖에 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영화가 비극적인 결말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 진정으로 멤버들에게 공연을 위한 무대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비극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말의 비극성은 항상 상대적인 개념이다. 영화가 결국 보여주는 결말보다 비극적인 것은 그들이 노래라는 꿈을 추구했지만 영화 속에서 완곡마저도 하지 못하고 끝내는 결말이다. 이런 결말은 꿈을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꿈을 포기하기보다는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현재의 결말이 더 희망적이다. 이런 결말은 관객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준다. 먼저 관객은 좌절된 그들의 꿈의 실현을 통해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사회에 대한 비판을 생각한다. 이와 동시에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관객 역시 꿈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여기에 영화는 마지막 쇼트 후 암전과 함께 박수와 환호소리를 삽입해 포기하지 않는 자세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델타 보이즈'에게 무대는 주어졌는가?

공연의 무대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반박이 있다면 정말 그들에게 무대가 주어지지 않았는지 의심해보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 쇼트에서 예건은 연습을 시작하기에 앞서 실제 공연을 가정하고 실제 관객들이 자신들의 앞에 존재함을 강조한다. 이에 준세는 떨린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때 우리는 이 텍스트가 어떤 매체를 통해서 관객에게 다가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텍스트는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카메라의 시점에서 본 텍스트의 상황이다. 카메라가 본 상황은 스크린에 영사되고, 관객은 이를 바라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축소시키면 카메라는 곧 관객의 눈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삶을 지켜본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즉, 멤버들의 연습을 지켜보는 관객이 존재하기 때문에 멤버들은 무대에 선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또, 실제 ‘델타 보이즈’가 노래한 공간에서는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나올 리가 없다. 이런 박수와 환호성은 영화라는 무대에서 흘러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델타 보이즈’가 선 무대는 바로 영화이다.


영화라는 무대

제목 없는 그림.png

그런데 영화가 곧 ‘델타 보이즈’의 무대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무대를 만들어낸 주체는 곧 영화의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영화의 오프닝에 있다. 암전 된 화면 위로 기계음이 들려온다. 이윽고 공장의 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공장 안으로 들어온다. 이때 공장의 문을 여는 주체는 바로 일록이다. 문을 연 일록은 차에서 자재를 꺼내 공장 안으로 들고 들어오며 오프닝 쇼트가 마무리된다. 이렇게 <델타 보이즈>는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보며 관객이 느끼는 감각의 요소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시각과 청각이 주된 요소이다. 특히 시각은 영상으로 비롯되며 이들은 있어 중요한 요소는 빛이다. 빛이 없으면 관객은 시각적 경험을 할 수가 없다. 어둠만이 그들에게 보일 뿐이고, 단 하나의 빛도 존재하지 않는다. <델타 보이즈>에서도 관객에게 (영화사 로고가 등장하는 장면을 제외하고) 영화의 처음부터 빛이 주어지지 않는다. 입장을 달리 생각하면 영화가 관객들에게 등장인물인 일록을 부단히 노력해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카메라는 마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앉은 관객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다. 대신 일록은 공장의 문을 여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며 관객에게 자신의 존재를 보여준다. 이때 일록이 공장 문을 여는 장면은 무대의 커튼을 걷어내는 행동처럼 보인다. 일록의 행동을 통해 비로소 관객은 시각적 경험을 시작하고, 일록은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시작할 무대를 마련한다.


여기서 잠깐 영화 속 카메라의 존재에 대해 조금 더 다뤄보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 카메라는 부동한다. 어느 위치에서 프레임을 잡으면 그 프레임을 끝까지 지켜낸다. 물론 완전히 고정되지는 않는다. 아주 미세한 좌우 패닝으로 약간의 조정만 할 뿐이다. 사실상 움직이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카메라는 인물의 감정 또는 움직임과 함께 요동치지 않으며 관객의 역할, 지켜보는 자의 역할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카메라의 시점은 마치 관객이 무대를 바라보듯이 주된 축은 고정시켜두고 시선의 미세한 조정을 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이는 영화 자체가 무대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보면 영화라는 무대는 등장인물, 특히 일록에 의해 창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럼 이 무대를 창조해 낸 일록이라는 캐릭터를 조금 더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일록은 어떤 인물인가? 앞서도 일록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일록은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해 매형의 공장에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한다.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은 없고 사장인 매형도 도와주지 않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꾸짖기만 한다. 게다가 사회적인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멤버들과 버스를 타고 갈 때에는 여고생들에게 막일하다 온 노동자 같다며 무시당하는 존재이다. 일록은 내세울만한 특별한 재능도 없는 서민이고, 그의 꿈인 노래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일록이 스스로, 조력자의 도움 없이 영화라는 무대를 만들어 낸다. 이는 영화가 꿈의 무대를 만드는 것조차 개인이 스스로 하는 일임을 의미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이런 쇼트의 구성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두 차례 더 등장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일록에게 어린 시절 친구인 예건이 찾아온다. 예건과의 저녁 식사 후 화면은 암전 된다. 이 암전 된 화면을 밝히는 인물은 또 일록이고 오프닝 쇼트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거의 똑같은 장면이다. 다만 오프닝 쇼트의 크기가 풀 쇼트인 반면에 이 쇼트의 크기는 미디엄 쇼트이다. 이렇게 시작한 두 번째 시퀀스가 끝나고 화면은 다시 암전 된다. 이어지는 세 번째 시퀀스의 화면을 밝히는 주체는 역시 일록이고 앞의 쇼트들과 거의 똑같다. 다만 이번에는 쇼트의 크기는 조금 더 일록에게 다가간 클로즈 쇼트이다. 영화는 여기서 일록에게 집중하라고, 일록의 마음이 변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일록은 세 번의 시퀀스를 거쳐 노래하는 꿈을 접하고 실현하기로 결심한다. 아니면 이러한 세 번의 반복은 영화 <패터슨>에서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이 아침에 잠에서 일어나는 쇼트를 8번 보여주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패터슨>은 패터슨의 하루 일과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담아내고 있다. 패터슨이 잠에서 일어나는 쇼트가 8번인 이유는 <패터슨>이 월요일 아침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주일의 하루하루는 유사하지만 각각 조금씩 다른 변주가 일어난다. 이처럼 <델타 보이즈>의 초반 세 번의 시퀀스는 일록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모두 ‘공장 문을 연다’, ‘공장에서 일을 한다’, ‘면요리(짜장라면, 국물 라면, 짜장면)를 먹는다’의 순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 번의 시퀀스 이후 일록은 매형의 꾸짖음에 마음이 상해서 공장 일을 그만두고 일상에서 탈출한다.


일록의 자해

그럼에도 관객은 일록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영화의 플롯이 전개되는 가운데 나타나는 일록의 자해적인 행위 때문이다. 일록은 영화 중간중간 자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자해는 공장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거처를 찾은 뒤 밤에 행해진다. 일록은 빨랫줄에 매달아 둔 거울을 쳐다본다. 일록은 무거운 숨을 내뱉고, 그의 두 눈은 눈물이 맺혀 글썽인다. 그러다 갑자기 일록은 자신의 뺨을 치기 시작한다. 두 번째 자해는 준세가 연습을 하지 않아 대용과 다툼을 하고, 일록은 예건과 예건의 태도에 대해 논쟁을 한 밤에 행해진다. 이 날 낮에 일록은 공장을 나온 일로 누나와 전화로 다투기까지 한다. 그날 밤 일록은 배팅장 타석에 서서 날아오는 공을 지켜본다. 그러다 스트라이크 존 앞에 공이 날아오는 쪽으로 등을 대고 선다. 그리고 날아오는 공을 묵묵히 맞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맞은 부위에 파스를 붙인다. 마지막 자해는 남성 4 중창 경연대회가 취소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지만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두 번째로 주민센터에 갔다 온 다음날 밤에 행해진다. 이때의 자해는 첫 번째 자해와 동일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이때 일록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글썽이기만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린다. 이러한 자해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 번의 자해는 추구하는 꿈과 현실이 과격하게 충돌할 때 일어난다. 일록의 자해에는 이러한 충돌이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고 판단해 일어나는 자기혐오적이고 낮은 자존감에 의해 발생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첫 번째 자해는 일록 자신이 ‘델타 보이즈’와 함께 노래를 해보겠다는 꿈과 현실에서의 생계 문제의 충돌의 결과물이다. 두 번째 자해는 멤버의 생계 문제로 인한 갈등과 본인의 가족과의 관계에서의 갈등으로 인한 결과물이다. 마지막 자해는 이루고자 하는 꿈을 사회가 막아버린 벽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마지막 자해에서 일록이 흘린 눈물은 모든 것을 걸어버린 단계에서 만난 벽에 무기력한 자기 모습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일록은 자해를 멈추고 취하는 행동을 바꾸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마지막 자해 다음날 대용과의 대화 이후 일어난다. 앞서 한차례 일록이 대용에게 왜 노래가 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언급했다. 대용의 답변의 주된 내용은 꿈에 대한 열정, 그리고 자신의 필요성 인식이었다. 첫 번째 자해 전 매형은 일록에게 “사람이 어디 가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일록은 짐을 싸매고 나와 매형에게 “제가 쓸모 없어서 그래요.”라고 말하고 공장을 나온다. 그렇기에 대용의 답변을 들은 일록은 사고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일록은 그날 밤, 일록은 배팅장에서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다 배트를 들고 스윙을 하기 시작한다. 시행착오를 겪은 뒤 일록은 공을 하나 둘 쳐낸다. 공을 쳐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아닌 쳐내고 싶다, 쳐낼 수 있다, 쳐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결국 일록의 자해를 멈추게 만들었다.


꿈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

꿈에는 열정이 필요하다. 대용이 다시 노래를 시작하게 만든 계기는 축구선수 김병지의 타오르는 열정이었다. 열정은 꿈을 위해 달려 나가는 원동력과 같다. ‘델타 보이즈’ 멤버 네 명 중 열정을 가진 사람은 두 명으로 보인다. 그 두 명은 바로 일록과 대용이다. 일록은 예건이 슬며시 건넨 제안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간다. 공고문을 붙이고, 연습장으로 쓸 예정이던 공장을 못쓰게 되자 새로운 연습장을 구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예건을 계속해서 부추긴다. 게다가 경연대회가 취소되자 항의하는 민원을 접수하기까지 한다. 대용은 축구선수 김병지를 보고 열정을 다시 가지기 시작했고, ‘델타 보이즈’ 모임에 계속해서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모습이나 생계보다 연습을 우선시하는 모습은 대용의 꿈(노래)에 대한 열정을 잘 나타낸다. 이처럼 영화 <델타 보이즈>는 관객에게 꿈이 어떻게 실현되어 가는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꿈에 대한 열정, 쓸모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자존감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우선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들을 바탕으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중요함을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영화의 메시지는 더 강력해진다. 고봉수 감독은 이 영화의 제작비로 250만 원을 사용했다. <어벤저스>와 같은 블록버스터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면 정말 작은 규모의 제작비이다. 고봉수 감독은 자신이 직접 적은 금액이지만 열정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인 영화를 제작해냈다. 게다가 <델타 보이즈>는 꿈의 무대로서의 영화를 제시함으로써 ‘델타 보이즈’의 꿈의 실현을 가능케 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조금은 부족해도 들어줄 만한 하모니의 노래와 박수갈채로 N포 세대라 불리는 청춘들의 꿈에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기 정체성의 밑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