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충만한 하루

영화 <패터슨>과 단편영화 <내 인생의 물고기>

by MENTAE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일상은 자칫 지루함, 지겨움, 평범함의 의미와 연관될 수 있다. 이런 의미와 일상이 연관된다면 삶은 의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이런 방향의 일상을 표현한 극단적인 경우는 단편영화 <내 인생의 물고기> (The Fish of My Life, 2014)에서 볼 수 있다. 이 단편 영화에서 주인공은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반복적인 노동을 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는 일터로 가는 길에서 매번 개울을 들여다본다. 그러던 어느 날 개울에서 물고기를 발견하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려다 그만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우연히 다가온 물고기는 무의미한 반복의 굴레에서 찾아온 행운이었을까 불운이었을까?

일터로 가는 길에 개울을 쳐다보는 주인공_<내 인생의 물고기>

그런데 일상은 <내 인생의 물고기>처럼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다. 매일이 다른 하루이고 똑같을 수가 없다. 일상은 큰 틀에 있어서 동일해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다른 부분이 너무도 많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겪는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와 새로움이 소소할지라도 엄연히 다른 하루를 만들어낸다. 영화 <패터슨>은 이런 일상의 소소한 변주를 잘 담아내 보여준다.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 시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일상을 담은 영화이다. 월요일로 시작해 일요일까지 그리고 다시 월요일의 패터슨의 1주일간의 삶을 관객들은 체험한다. 패터슨도 일상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시계를 보고 일어나 아내 로라에게 키스를 한다. 그런데 이 하루의 시작도 매일 다르게 행동한다. 월요일은 자고 있는 로라에게, 금요일은 먼저 일어나 컵케이크를 만드는 로라에게 키스를 하며 변주가 일어난다.

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_<패터슨>

영화 <패터슨>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의 시선과 귀기울임이다. 영화는 패터슨의 시선에서 보는 장면들 그리고 패터슨이 듣는 대화들을 관객들에게도 전해준다. 단순히 영화의 내러티브 전개에서 중요한 장면과 대화들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패터슨이 길을 가다 쳐다보는 것들과 들려오는 대화들을 영화가 전달한다. 영화 속에서 패터슨은 길을 가다 갑자기 뛰어오르는 다람쥐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하늘이나 건물 위를 쳐다보기도 한다. 그리고 버스 운전을 하면서 승객들이 하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 아나키스트 이야기를 듣고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런 영화의 시선과 귀 기울임은 일반적인 사람의 시선과 귀 기울임을 그대로 갖다 놓은 것 같다.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시선과 귀 기울임을 가져보지 않았을까?

패터슨과 일본 시인_<패터슨>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충만한 하루를, 더 나아가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온전하게 채워진 삶과 일상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진다면 그 빈자리에서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영화 속에서 패터슨은 그의 삶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 ‘시’를 잠시나마 잃어버린다. 자신의 비밀 노트가 마빈에 의해 갈기갈기 조각나고 일요일을 살아가는 패터슨의 표정은 공허함 그 자체이다. 그런데 그의 일상 속에서 다른 무언가가 없어져도 비슷한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또, 로라는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집과 주변 사물에 표현하는데, 만약 집이 화재로 소실된다면 패터슨과 비슷한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가족을 잃게 되면 큰 슬픔에 빠지고 가족의 빈자리를 더욱 많이 느끼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슬픔과 고통을 견뎌내며 살아가고 그 공백을 여러 가지로 채워나간다. 그렇다고 사라진 대상을 잊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추모, 그리움부터 해서 새로운 만남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빈 부분을 채워나간다. 그래서 폭포 앞에서 일본 시인이 한 대사인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주죠."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텅 빈 부분들은 우리가 이 부분을 채울 많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것을 무엇으로 채워 놓을지는 개개인의 몫이다. 이 시점에서 한 번쯤은 소리 내 외쳐보고 싶다. "아하!"


그렇다고 이 한 번의 "아하!"가 삶과 인생의 모든 것을 깨달았거나 이해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삶을 알아가는 도중에 외치는 첫 "아하!"로 앞으로 더 많은 외침을 해 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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