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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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르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 오규원, <프란츠 카프카>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소개된 후 기계 학습과 인공지능에 대한 각계 각층의 관심이 급속하게 높아졌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시들지 않는 화두처럼 되어, 유수의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이를 강조하다보니 일종의 마케팅 용어처럼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이 아직 학문적으로 그 실체나 정의가 확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도 우리나라에서 민감하게 이를 받아들인다는 건, 오히려 그만큼 우리나라가 새로운 과학 기술의 속성과 그로 인한 영향력에 상대적으로 무지하고 무신경했다는 걸 반증한다고 주장하는 칼럼도 보았습니다. 즉, 기존의 자동화 및 컴퓨터 기술이 체계적이고 탄탄하게 발달되어 온 선진국에서는 로봇이나 인공지능 기술도 그들의 연장선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우리나라는 그간 기초 과학이나 공학, 문해력 교육을 경시하고 대입 반영 과목과 고소득 직종으로 연결되는 응용 학문에만 치중하다보니 이러한 기술 혁신을 ‘불안’으로 받아들인다는 분석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터지자, 이후 국가, 성별, 인종, 직업 간의 위계와 불균형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인공지능이 여론을 조종하여 편견 및 특정 집단의 입장을 퍼뜨리거나, 일부 선도적인 기업의 독과점이 중소기업의 도전과 혁신을 막을 수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가 현실화되는 걸 사람들은 팬데믹 내내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고등학생들이 대학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공계에 몰리는 현상도 덩달아 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영향을 받는 대상은 고등학생들만이 아닙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사교육 시장에서는 대개 수능에 반영되는 과목들을 주로 다루었던 것 같은데, 최근엔 코딩, 로봇, 3D 프린터 등의 강좌를 다루는 학원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부터 기계 공학과 인공지능을 배운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열심히 배워둔 기계 공학과 인공지능을,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과연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까요?
다가올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 뭐가 되었든 다양하게 배워두는 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나라에선 교육이 다소 호들갑스럽다는 것입니다. 사회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교육 기관에 하나 둘씩 잡다하게 보여주기식 특강을 집어넣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제 아들은, 해마다 학교폭력예방교육, 인권교권교육, 생명존중교육, 장애이해교육,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교육, 재난안전교육, 성폭력예방교육, 정보통신윤리교육, 다문화이해교육, 감염병 및 약물오남용예방교육, 흡연 및 음주예방교육, 통일교육, 독도교육, 미세먼지교육, 생태전환교육, 반부패청렴교육, 이런 것들을 1시간씩 2시간씩 가끔 듣습니다. 솔직히 성인인 저라도 이렇게 교육을 받으면 딴짓도 엄청 하고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보다는 어느 하루를 온전히 해당 교육일로 잡고 관련 있는 교육들을 묶어, 왜 이런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이걸 사회 문제와 연결할 수 있는지 토론도 하고 활동도 하면 학생들에게 더 효과적일 듯한데, 그러면 또 수업 내용을 짜야 하는 담당자와 부서가 힘들어질 테니, 참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과거에는 방학과 연금이 있으니 선호 직업이라며 학벌 좋은 학생들이 앞다투어 교사를 선택했지만, 몇 년쯤 지나자 하는 일들과 지는 책임에 비해 학부모의 비난과 학생들의 요구가 너무 많다며 교육대, 사범대 지망생이 곤두박질 쳤습니다. 안정적이고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니 공무원이 그리도 선망 직업이라며 너도나도 앞다투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몇 년쯤 지나자 자잘한 일거리가 많고 이런저런 행사에 강제동원되는 데 비해 근무시간이 길고 박봉이라며 또 공무원 지망생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한창 유행을 탈 때에는 수요가 비 오듯 쏟아져 채용도 늘리고 매출을 마구 올리던 업종이, 유행이 끝나면 수요가 0에 수렴하듯 떨어져 수많은 실업자와 빚진 사람들을 양산합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희망 직업 1순위는 유튜버고 2순위가 웹툰 작가라는데, 정작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위 그룹의 몇몇을 제외하면 순이익이 아주 적다고 합니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고, 일은 하기 싫은데 여가는 즐겨야겠고, 힘든 일은 싫은데 월급은 많이 받고 싶고. 글쎄요,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는데, 이제부터 무슨 공부를 하고 무슨 직업을 택해야 진정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요?
학창 시절 공교육으로 혹은 사교육으로 배운 내용이 기계 공학이고 인공지능이어야만 미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관점을 바꾸어서, 현재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릴 때 같은 공교육과 사교육을 받았을까요? 부모가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비싼 유치원, 학원, 초중고, 대학과 대학원을 보냈던 사람들만 행복하게 살고 있나요? 질문의 답은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좋은 판단은 좋은 결과의 확률을 높일 수는 있어도,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한 치 앞의 미래도 모르는 채 삶을 살아갑니다. 이름난 점성술사도, 용하다는 무당도, 슈퍼 컴퓨터조차도,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솔직히 모릅니다. 하물며 자녀에게 지금부터 어떤 교육을 시켜야 10년 뒤, 20년 뒤 미래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이공계 학생의 비율이 높고 인구가 많아 첨단 기술을 다루는 벤처 사업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출범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과학 기술이 여타 선진국에 비해 현격하게 뒤처진다고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도 미국의 명문 대학에 유학을 갔던 중국 학생들이 대거 본국으로 귀국하고, 초국적 기업의 인재들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하면서 옛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헌데 세계적 수준인 중국의 인공지능과 안면인식 기술을 악용하여, 상상할 수도 없는 범죄가 최근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기 조직이 IT 업체 대표 지인의 SNS를 해킹해 영상을 확보한 뒤, AI 기술을 활용하여 지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똑같이 위조하고 업체 대표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8억 원 상당의 피싱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젠 하다하다, 내 친구가 아니지만 내 친구의 얼굴과 목소리를 지닌 가상의 AI 친구가 영상 통화로 송금을 요청한다고 합니다. 손톱을 깎아 아무데나 버렸더니, 깎은 손톱을 먹은 쥐가 나로 둔갑하여 내 집에 들어와 살더라는 전래 동화가 떠올라 정말 섬뜩하기 짝이 없습니다.
중국은 제게 있어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가여운 나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와 중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 걸핏하면 글을 쓸 때 중국의 예를 들게 마련인데요. 중국에 이공계 학생의 비율이 높고 벤처 사업체가 많은 건 일견 작금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해 보이지만, 이는 중국의 역사와 사회적 구조 상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부분이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청대 초반까지만 해도 압도적으로 선진국이었던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뒤처지게 된 원인을, 공자를 필두로 한 사상가들의 인문학이라 지목했고 분풀이라도 하는 듯 현대판 분서갱유라 불리는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찬란한 문화유산을 스스로의 손으로 깨부쉈고 명망 있는 인문학자들을 처절하게 괴롭혔으며, 사회주의 사상이 아닌 사상은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막아버렸습니다. 이는 그들이 이후 자인했듯 건국 이래 국가에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준 행위였습니다. 고작 10년 만에, 4천 년에 걸친 중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의 기반은 통째로 무너졌습니다. 이 마당에 경제는 일으켜야 하니, 그나마 문화대혁명 당시 피해를 덜 본 이공계 인재들을 집중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은 과학 기술 면에 있어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으나, 문화콘텐츠 경쟁력은 주변 국가와 비교하기도 민망할 수준으로 밀린다는 평을 듣는 까닭입니다. 중국은 국가 면적도 넓고, 그에 따른 자원도 풍부하고, 인구도 많아 아주 예전부터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도덕적 규범, 정신적 가치, 문화적 매력 등을 한꺼번에 떨어뜨렸습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창조의 중요성이 점차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 지난날 조상들이 열심히 만들었던 전통이란 전통을 이미 죄다 박살내버린 중국은 인문학적 바탕과 윤리 의식이 배제된 첨단 기술이 국가에 어떠한 악영향을 가져오는지를 계속적으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인공지능과 안면인식 기술을 가지고 한다는 게 고작 사기 범죄와 해킹이라니, 아울러 공안 당국이 이에 비상이 걸려 국민들에게 본인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SNS에 올리지 말라고 권고를 해야 할 판이라니, 열과 성을 다해 개발해놓은 기술이 정말 너무 아깝습니다.
최근 들어 대세라서, 저명한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들의 공약이라고 해서, 희귀한 신상품 구매하듯이 자녀들에게 특정 분야의 교육만을 우르르 시키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니, 따지고보면 교육만큼 중심을 잡고 신중해야 하는 분야도 없는데 말이지요. 그야 앞으로 과학 기술이 더 발전을 하면 했지, 퇴보할 것 같진 않아 보이므로 현재 기계 공학이나 인공지능 학습을 시키는 게 부적절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과학 기술을 배움과 동시에 그 기술이 축적된 배경, 기술의 사용처와 사회적 허용 범위, 기술이 가져다 줄 장단점 등의 소양도 함께 배워야만 비로소 온전한 교육이 될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사학, 철학, 문학은 이미 취업률 최하위권 전공으로 분류된 지 오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세 가지는 모든 학문의 근간으로 불리며 이들이 함께 하지 않는 과학 기술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를 위한 존재가 아니게 됩니다.
디지털과 정보통신,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은 시공간의 제한을 건너뛰어 지식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므로, 학문을 이리저리 나누지 말고 ‘가로질러야’ 한다는 글을 본 적 있습니다. 이미 고등학교에서는 과거처럼 학급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지 않는 추세입니다. 인문학은 다루는 범위가 넓고, 소위 ‘STEM(Science, Techonology, Engineering and Math)’이라 불리는 이공계 계열의 학문보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별하기 쉽지 않아 최근 들어 오류가 많은 겉핥기식 인문학 강의가 넘쳐나고 있기는 합니다. 걸핏하면 TV와 인터넷 사이트에 인문학 강의가 보이는데, 전문가처럼 꾸미고 열변을 토하던 강사들이 얼마 후 학위 위조 스캔들에 휘말리거나 표절 시비 및 노이즈 마케팅이란 오명을 쓰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전세계적 경향인 인문학의 위기를 4차 산업혁명의 도래만큼이나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생계에 지장이 있을 것임이 자명한데도 꿋꿋하게 인문학을 전공으로 삼아 발전시키려 갖은 노력을 하는 이들도, 소수이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사농공상이라 하여 기술자와 상인을 천시하고 글공부하는 선비들을 우대하였습니다. 실은 중국 공산당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킬 때 인문학을 콕 집어 말살시킨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이전에 인문학을 했던 이들이 오만하고 배타적이고 부패했던 데에 자못 큰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지금, 우리는 입장이 완전히 뒤집혀 저 밑바닥에 깔려 있다시피 한 인문학의 위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교육은 균형이므로, 이렇게 이공계열이나 상경계열만 최상위에 위치하고 다른 학문들이 쪼그라들어 있는 모양새는 과거의 조상들이 범했던 우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편식을 하면 건강에 좋지 않듯, 다양한 학문을 폭넓게 배워야 비로소 그들 사이의 유기적 연결 및 통합적 사고가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그래야만,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 기술을 사회악으로 만드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부디, 시를 공부하겠다는 제자가 ‘미친 놈’이 되지 않는 풍토가 우리나라에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