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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ux Jul 21. 2023

백두산은 터진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엄마, 2025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 건지 알아?” 또 시작입니다. 초등학생 아들의 머리 속에서는 항상 무슨 일이 나고 있나 봅니다. 아니, 무슨 일이 났으면 좋겠는가 봅니다. 허구헌 날 천재지변과, 전쟁과, 사건사고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들의 특기입니다. 어쩌라고, 라고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으니 일단은 응답을 해줍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백두산이 폭발한대! 백두산은 휴화산인데, 여태까지 터졌던 기록을 살펴보면 100년 주기로 터졌다고 했거든, 마침 2025년이 마지막으로 터졌을 때보다 100년 뒤가 되는거래.” “아, 2024년도 아니고 2026년도 아니고 꼭 2025년이래?” “응, 벌써 백두산 깊숙이 마그마 방이 세 개나 생긴 것 같대, 막 있잖어 백두산에 있는 물들이 부글부글 끓고 거기에다 달걀을 넣으면 달걀이 익는대. 그래서…….” “아 그래...”


 들어주고는 있는데 이미 저의 눈에는 초점이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녀석은 천재지변과, 전쟁과, 사건사고 이야기가 이리도 재미있을까요. 그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얼마나 끔찍한지 모르니 이러는 거겠지요? 일상조차 고달픈 저는 그보다 더 힘겨운 이야기는 가급적 듣고 싶지 않은 반면, 입만 열면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쏟아놓는 걸 보면 제 아들의 일상은 별로 고달프지 않은가 봅니다. 헌데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에게도 재난 영화를 일부러 검색하여 골라 보았던 기간이 있었던 게 떠올랐습니다. 펼쳐지는 장면들이 고달파서일 뿐 아니라, 이야기 구조가 뻔하다, 허무맹랑하다, 비현실적이다, 등의 까닭으로 재난 영화같은 걸 싫어해서 누가 옆에서 보고 있어도 들여다보지 않던 제가 말입니다. 그건 피싱을 당하고, 연이어 A형 간염에 걸려 대학병원에 일주일 간 입원했던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심심해서였습니다. 뭐든 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직성이 풀리는 저란 사람이, 손등에 주사바늘을 꽂고 온종일 침대 생활을 하게 되니 답답했습니다. 매일 식사하고 나서 바퀴 달린 수액걸이를 드륵드륵 끌고 병원 산책을 했지만, 층간 이동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니 번잡스럽고 같은 층에서만 빙글빙글 돌기에는 저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많아 민망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거라곤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꽂고 영상을 시청하는 거였는데, 짧은 영상 휙휙 넘겨 보는 게 귀찮아서 점차 긴 영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긴 영상 가운데 의외로 아주 흥미롭고 재미나게 보았던 게 바로 재난 영화였던 겁니다.


 모든 재난에는 전조 증상이 존재하나, 시청하고 있는 우리를 제외한 영화 속 인물들은 대다수가 그게 전조 증상이라는 걸 모르며, 소수는 알고 있지만 그 재난을 막을 방법을 딱히 찾지 못하고 재난이 몰려오는 걸 바라만 보아야 합니다. 이윽고 재난이 터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적자생존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개인의 어떠한 점이 생존에 보다 유리한가는 정해져 있지 않거나 알 수가 없고, 그냥 결과적으로 맨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적자입니다. 영화마다 조금씩 상황이나 결은 다르지만, 살아남은 사람이 처절하게 이리저리 구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끝끝내 노력하는 건 비슷합니다. 저 정도까지 가는거면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지경에서도, 그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입원 시점이 피싱 직후였기에, 초반부 저의 정신은 거의 초죽음 상태였습니다. 거액을 날렸으면서 전염병까지 걸려 드러누워 있는 제 자신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으며, 그러면서도 몸이 이곳저곳 쑤시니 불편하기는 하고, 앞으로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스러우면서도, 그저 여태껏 하던대로 꾸역꾸역 월급쟁이 노릇을 할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어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간접 경험이기는 해도, 제 처지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가난하고,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인물들이 재난 영화 속에서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애쓰고 있는 걸 지켜보면서 저는 다시금 삶의 의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생동감이 넘쳤고, 의지로 가득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장엄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제가 입원한 동안 신랑은 회사에 가고, 아들은 유치원에 갔으므로 저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혼자였는데,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혼자였던 덕분에 간만에 참 잘 쉬었습니다. A형 간염이란 질병의 속성이 본래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잘 먹고 잘 자면 낫는 병인지라 가족들도 별로 제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고, 저 역시 제가 점점 멀쩡해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니 그런 상황에 참 감사했습니다. 퇴원할 당시조차 저는 홀로 여유작작 환자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홀로 병실 정리를 하고 수납한 뒤 퇴원을 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병원을 나와 길을 걷는데 꼭 한바탕 꿈을 꾸고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였더니 그 사이 신랑이 가스검침을 ‘당연히’ 하지 않은 탓에 현관문에 안내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에혀, 하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랑과 아들이 ‘당연히’ 어질러놓은 거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스검침을 담당하는 업체에 우리집 사용 수치를 알려주고, 하나 둘 물건을 정리하다가 문득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 나 살아 돌아왔네.


 이후 한동안, 일부러라도 웃으려고 노력하면서 더욱 씩씩하게 살았습니다. 어마어마한 빚을 졌어도 우공이 산을 옮기듯 소액이어도 열심히 벌다보면 빚이 줄어들어 있을 거라고, 어린 아이들이 동화를 읽으며 즐거워하는 것마냥 무턱대고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습니다. 피싱범들이 통장을 정지시키면서 그동안 자동이체로 빠지던 기부금들도 정지되었는데, 아예 없앨까 하다가 그래도 한 군데는 살려두었습니다. 형편이 빠듯하여 등록을 포기하려던 대학원도 포기하지 않고 장학금을 받아가며 마저 다니고, 그 와중에 떠맡은 직장에서의 일들도 어떻게든 전부 해냈습니다. 밤마다 신랑과 머리를 맞대고 은행과 소송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고, 경찰서에서 제가 조사받고 있는 중이라며 회사 팩스로 내용증명을 보냈던 날에는 저의 처지가 너무 서러워져서 흑흑 울다가 잠들었어도 다음날 아침에는 칼같이 출근을 했습니다.


 진짜 영화와도 같은 재난은, 영화 속에서 그랬듯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기에 찾아왔습니다.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 19 탓에, 많은 이들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와서 되짚어보면 질병 자체가 가진 무서움도 있었지만 전염 사태가 3년 가까이 오래 갈 줄 몰랐다는 것, 그리고 반대로 더 오래 갈 줄 알았던 전염 사태가 급속도로 진정된 게 또한 무서운 부분이었던 듯 싶습니다. 건너건너 이름만 들어보았던 어르신들과 할머니의 지인 분들이 초창기 코로나로 돌아가셨었는데, 최근에는 누가 코로나 걸렸다는 소식조차 가끔 듣는 것 같습니다. 전염 초기 마스크와 생필품 품귀 현상이 극심했던 탓에, 생년 끝자리 수 지정 요일에 맞추어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했던 일은 이미 전설 속 무용담만큼 현실성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배달이 일상화되어 골목마다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달리던 때도 있었고 배달비도 고공행진이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예전만큼 오토바이가 길에 많지 않다는 걸 깨닫고 놀라게 됩니다.


 코로나가 퍼지는 걸 막겠다고 봉쇄를 했더니 전 세계 공급망이 교란되고, 그로 인해 침체된 경제를 살리겠다며 각국에서 금리를 인하하고 시장에 돈을 풀었습니다. 하지만 본래 국민들에게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풀었던 돈들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되었고, 이에 더해 2022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자국에 경제 제재를 가한 데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가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원자재 수출을 막아 물가는 사상 최고치로 올라갔습니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코로나 사태처럼, 일주일 만에 끝날 거라던 전쟁도 1년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그러잖아도 물가가 고공행진인데 낮았던 금리까지 훅 올랐습니다. 미국이 몇 차례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지만 현재 돌아가는 추세로 보자면 앞으로도 금리를 더 올리면 올렸지, 줄이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간 대출 이자 몇 만원이라도 깎아보겠다고 은행에 민원 글을 올리고 담당 직원과 몇 차례씩 실랑이하던 저였는데,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여 이자가 몇십 만원이 불어버리니 그동안 나 자신은 대체 뭘 했던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승한 물가와 기준금리는 매달 제가 모아둔 월급을 순식간에 잘도 가져갔고, 이는 예전과 달리 저 혼자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마치 정기적으로 집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훔쳐가는 걸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안 오르는 건 내 월급’이라던데, 저의 경우 월급 동결은 고사하고 깎인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출장비가 만 원이라 그거 받고 누가 출장 가냐고 비웃었었는데, 그나마 그 만 원도 8천 원으로 깎였습니다. 급량비 목적으로 나오는 출장비가 고작 8천 원이라니, 이건 뭐 요즘 물가를 고려한다면 식사를 분식집에 가서 해야 하는 수준의 금액이지요.


 질병의 전염과 그에 이은 수요 및 공급의 등락에 따라 저를 포함한 인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준금리 상승 초반에는 저의 무력함에 화가 나서 나도 이제 막 살 거라는 둥 괜히 혼자 투덜거리다가, 그래놓곤 올라버린 점심값을 아끼겠다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다가, 별안간 이게 또 무슨 소용인가 싶어 맥이 탁 풀렸습니다. 바로 그때, 이전에 재난 영화를 시청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만났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도, 자신들이 몸과 마음을 한계치까지 깎아가며 애써 보았자 커다란 재앙 앞에서는 그 애씀의 위력이 미미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전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도 또 도전하는 걸 반복했던 겁니다. 도전을 반복한 사람들 모두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 도전을 반복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2025년에는 정말 제 아들의 말대로 백두산이 폭발할까요? 폭발하기를 몹시 바라는 듯한 아들의 기대와 달리, 기상청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백두산 마그마 방의 움직임은 안정된 상태라고 합니다. 화산 활동이 본격화되면 천지 아래의 마그마가 솟구쳐 산 주변에 화산성 지진이 발생해야 하는데, 딱히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만약 실제로 분화할 경우 48시간 정도가 지나면 전남 일부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에 화산재가 쌓여 교통과 통신 및 농작물에 막심한 피해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기상청의 예측이 빗나가서 백두산이 폭발을 하든, 혹은 존재조차 몰랐는데 갑자기 퍼진 코로나 19처럼 전염병이 돌든, 보이스피싱처럼 기상천외한 사건사고에 휘말리든, 우리는 언제 어느 때라도 재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그 재난에 잘 대처할 수 있을는지 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만, 지금껏 그랬듯 생존을 위해 애쓸 것입니다. 


 기껏 산꼭대기로 올려놓으면 또 바위가 굴러 내려오는 시지프스의 형벌 같지만, 쳇바퀴가 돌듯이 반복되는 고난들에 맞서 해결방안을 찾고 또 찾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겁니다. 어쨌든 해결방안을 찾는 그 찰나에 제가 살아있는 건 확실하니까요.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신랑과 아들도 살아남게 만들어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딱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저의 인생을, 어느 누구보다 가치 있게 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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