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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탈리스트 Mar 24. 2022

퇴사확신

퇴사 후에 깨닫게 된 퇴사 결심의 이유와 행복

 퇴사 이야기를 담은 글을 반드시 쓸 줄 알았다. 꼭 그러리라 다짐도 여러 번 했던 것 같은데, 퇴사해서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기보다는 퇴사 후에 맞이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자연스레 그리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고픈 많은 이야기들은 나도 브런치에 꽤 많이 읽어 봤었던 것 같아서 꾹꾹 눌러 담아본다. 지금 퇴사 그 후를 돌아봤을 때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일들에 대해서만 간략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퇴사 후 리빙 편집샵을 오픈했다는 사실이 친했던 동료들을 통해서 회사에 알려지면서 많은 격려와 응원, 그리고 격려와 응원을 가장한 우려를 받았다. 퇴사를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직장인들의 호기심에서 일까, 지금 와서 나의 사업장을 다녀간 동료를 떠올려보니 하나의 과장도 없이 30팀은 넘는 것 같다. 삼삼오오 조를 맞춰서 방문하기도 하고, 다녀간 동료가 또 다른 소그룹으로 다시 방문하기도 했으니 실제 다녀간 인원은 그 세 배수를 훌쩍 넘기리라 추정해본다. 




 동료들 이외에도 많은 지인들이 다녀갔더랬다. 그렇게 여러 팀의 축하인사 자리를 가진 후에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지인들 중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의 궁금증과 질문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일치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수십, 수백 번의 비슷한 패턴의 퇴사 상담 아닌 퇴사 상담을 겪으면서 알게 된 점이다. 


1. 어떻게 퇴사를 결심하게 됐나요?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왜 퇴사를 결심했는가?'를 묻는 질문도 많았지만 '어떻게'를 붙여서 물어보는 분들은 꽤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고 실행에 목전까지 혹은 그 정도의 갈망을 느끼는 분들이었다. '왜'에 대한 답이야 각자의 환경이 다르니 단순히 궁금해서 묻는 경우들이었지만, '어떻게'를 묻는 질문에서는 그들의 고민의 깊이가 느껴졌다.

 

 나도 당연히 퇴사를 고민할 때는 '왜 퇴사를 해야 하는가'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퇴사 후에 '어떻게 퇴사'할 용기를 내었는가?' 하는 질문을 수없이 마주하면서 나는 어떻게 과감하게 7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꽤 진지하게 오랫동안, 여러 번 고민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용기를 내어서'퇴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남아 있을 용기가 없어서' 퇴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름의 철학과 기준으로 회사에 기여하겠다는 충정으로 정신없이 보낸 시간들을 뒤로하고 어느덧 회사에서도 과장 진급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10명이 넘는 팀에서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져 있었다. 열정 넘치지만 마냥 부족하던 시절에는 회사의 결정에 의문이 드는 점이 생겨도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따랐다.(적어도 노력은 했었다)

 점점 맡아가는 책임과 역할이 늘어나면서 소위 머리가 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담당자로써 회사 내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던 일들이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로 어이없는 방향으로 결정됨을 겪어가면서 나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리, 실무자 입장에서 화도 내 보고, 어필도 해보고, 고집도 피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조직에 불만이 많아진 상태로 조직에 계속 남는 것도 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안 좋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관리자 단계로 넘어갈수록 실무보다 조직관리나 회사 관점에서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당시에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 투성이 인데 내가 과연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옳고 그름에 대해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거나 실무적 관점에서도 좀 더 날이 서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선택지는 완전한 투항과 복종, 퇴사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했다. 그리고 이어질 두 번째 질문 앞에 놓였다. 




2. 행복하세요? 

 '왜'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하다 보니 이유가 너무 많았다. 반대로, 퇴사하면 당장에 마주하게 될 현실적인 문제들도 그 이상으로 많았다. 이러다가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론을 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지 않았던가. 그래서 스케치북 정도의 종이를 꺼내 들고 퇴사를 해야 하는 이유, 하면 안 될 이유를 두서없이 써보았다. 역시 너무 많아서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당장 다음 달 카드값] 같은 것들부터 하나씩 지워보았다. 마지막에 남은 질문이 바로 '나는 행복한가'였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는데, 저 질문을 보는 순간 거짓말처럼 명쾌해졌다. 실제로 1,2초 정도 걸렸을까? 아니라고 온몸의 세포들이 소리 질렀다. 진정하자. 조금 더 냉정하게 고민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5년 뒤에는 행복할까?' 이번엔 7초 정도 걸렸다. '모르긴 몰라도 아닐 확률이 높다' 그렇게 나는 행복에 대한 기대보다는 당시의 행복을 기준 삼아 퇴사했다. 


 퇴사 후 상당기간 수입이 없이 새로운 커리어를 준비했었고, 실제로 창업을 하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안정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었다. 나름 대기업의 안락한 시스템 속에서 안정적인 급여(당시에는 부족하다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꽤 많았던)를 받으며 생활하다가 수입이 전혀 없을뿐더러 사업 초기 비용과 생활비가 순수하게 마이너스로 찍히는 생활을 하니 실질소득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아,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는데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행복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곧바로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왜냐면 실제로 행복하기 때문에. 


 삶의 가치가 바뀌는 것을 경험해왔달까. 더 안정적인 시절에 나름 부족함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은 하고 사고 싶은 것들은 사보고 했었지만 지금은 그런 부분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이 예전 같지 않다. 물욕이 없어졌다거나, 삶을 진정한 행복을 깨달았다는 거창한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단지 회사 다닐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알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일상의 행복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가구들로 꾸며진 공간, 흘러나오는 음악, 커피 한잔, 그리고 그동안 밀렸던 책 읽기. 이 모든 것들을 햇살이 내리쬐는 시간에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굉장한 사치이자 행복으로 다가왔다. 


 지금 느끼는 행복도 언젠가는 무뎌지고 색이 바랜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고, 감사한다. 앞으로 더 불안정할지도, 사업상 더 어려운 일들이 닥칠지도 모르지만 나의 오늘은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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