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억누르는 방어기제
방어기제는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그에 방해가 되는 정신적인 생산물을 다루는 마음의 작업이다. 여기서 정신적인 생산물이라 함은 기억, 생각, 감정, 충동, 이미지 등이 있다. 기억을 다루는 것, 감정을 다루는 것, 충동을 다루는 게 약간씩은 맥락이 다르다.
대표적인 방어기제는 억압이다. 이는 프로이트가 맨 처음 발견, 제안한 방어기제이자 유일한 방어기제였다. 그 후 억제, 격리 등의 여러 가지 방어기제가 추가되었고, 나중에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방어기제를 더욱 체계화했다. 방어기제 기제가 늘어나고 체계화되는 것은 프로이트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쌓은 경험을 통해서 점차 확장시켜 나갔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순수한 개념적인 이론을 먼저 정리하고 그에 맞는 방어기제를 채워 넣은 것이 아니라 이 환자에서 나타나는 방어기제를 항목에 추가하고, 다른 환자 보면서 알게 된 방어기제 추가하는 식으로 되었다. 그래서 사실은 방어기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방어기제가 형성되었을 당시의 사례를 알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개념적인 설명만 보고 심리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건 매우 어렵다.
위의 여러 가지 정신적인 산물 중에서 감정을 억누르는 메커니즘의 방어기제가 몇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격리이고 그 외에 주지화/이지화/지식화(intellectualization), 합리화 등이 있다.
방어기제는 기본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감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어기제가 많다. 물론 다른 방어기제들도 감정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특히 격리는 그중에서도 특히 감정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는 방어기제이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관련된 감정을 의식에서 떼어 내려는 과정으로 고통스러운 사실은 기억하지만 감정은 억압되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고통스러운 기억은 의식 세계에, 이와 관련된 감정은 무의식 세계에 각기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억압이나 억제가 기억과 감정 모두를 의식에서 내 보낸다고 한다면, 격리는 기억은 의식에, 감정은 무의식에 보내는 것이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기억은 그 사람의 심리 세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기억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와 연결된 불편한 감정을 달고 나오니까 괴로운 것이다. 그런데 기억이 의식으로 올라왔는데 불편한 감정이 없다면 그 기억은 감당할 만한 게 되어 버린다. 일단은 불편한 감정이 안 올라오니까 당장은 더 편하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다른 감정까지 다 의식에서 몰아내 버린다. 뇌라는 게 그리 정교하지가 못해서 자기가 불편한 감정만 콕 집어서 무의식으로 보내기 힘들다. 기억의 내용까지 의식에서 쫓아내지 못한 마당에 그걸 뻔히 기억하면서 그 감정 하나만 골라서 의식 밖으로 보내지 못하니, 모든 감정이 다 억눌린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무덤덤한 사람이 된다. 감정의 기능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중요한 것이 동기부여이다. 머리로만 안다고 뭐가 될까? 필 받아야 뭘 하지 않겠는가? 머리로는 아는데 필이 없는 사람이 되니, 시키는 일만 꾸역꾸역 하며 산다. 원래 이 격리라는 방어는 강박증 환자의 사례를 통해서 정리되었다. 강박증인 사람들은 감정이 너무 불편한 사람들이라서 감정을 못 느끼고, 그러니 조심스럽게 잘 하긴 하는데 에너지는 없다. 두 번째는 이렇게 억압된 감정은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니 중간중간 나타나서 사람을 괴롭힌다. 그런데 억압되어 있으니 다룰 수도 없는 게 더 큰 문제이다. 회사로 치면 골칫거리 직원이 조퇴를 해버렸으니 야단을 칠 수 없는 식이다.
이런 환자들은 자기도 답답하고, 상담하는 사람도 같이 답답하다. 비싼 돈 내고 상담하러 왔는데, 매번 와서 겉도는 얘기만 하다가 간다. 그렇다고 그만두지도 않는다.
격리보다는 발달된 형태로서, 감정과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그것들을 직접 경험하는 대신에 그것들에 대한 생각만 많이 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하나는 인과관계나 규칙성을 알고 싶어 하고, 다른 하나는 설명을 원한다. 아마도 이해하지 못할 일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지화는 감정과 충동이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즉 일상적인 상태에서는 문제를 이해하는 것 같고 해결된 것 같지만 방어가 약해질 만한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그 문제가 반복된다. 이해하는 것 같고, 다루어진 것 같은데, 상황이 발생하면 원상 복구된다.
격리보다는 스스로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지적인 작업이 동반되기 때문에 인지발달이 더 이뤄지고 난 후에 나타나는 방어기제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아예 나타나지 않거나 초보적인 수준의 주지화만 나타날 수도 있다.
■ 20대 중반의 여자 ■
의존성이 심한 환자였다. 책을 많이 읽고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자신에게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던 경험 때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하였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스트레스가 주는 좌절을 견디지 못해 다시 의존적이 되었다. 자신의 의존성을 알아도 소용이 없다. 뭐가 불편해서 의존하게 되는지 알아야 근본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게 아니니 머리로 아는 지식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의존에 관련된 감정을 느끼면 이성적으로는 의존의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서적인 동기 때문에 의존하려 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심한 좌절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었다.
주지화는 피상적이나마 문제의 본질에 닿아 있다. 그런데 비슷한 방어기제인데 자기를 속이는 설명인 합리화는 문제의 본질을 피해 가고 자신을 속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신포도의 여우를 잠시 불러다가 얘기를 해보면,
주지화 : 네발 달린 포유류인 내가 나무 위에 달린 포도를 따 먹는 건 불가능해. 이건 내 잘못이 아니고 종의 특성일 뿐이야.
=> 그래도 먹고 싶은 포도를 못 먹어서 생기는 욕구 충족이 안 되어 생기는 좌절감은 해소되지 않는다.
합리화 : 저건 실 거야. 그래서 먹고 싶지 않아.
=> 포도를 못 먹는 좌절감에 대한 처리는 주지화와 같다. 하지만 주지화와 달리 자기 특성 때문에 포도를 먹을 수 없다는 점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인하고 있다.
주지화의 여우가 자기가 직접 포도를 따 먹을 수 없으니, 남이 먹다가 흘린 걸 먹거나, 뺏아 먹거나, 사 먹거나 할 텐데, 합리화의 여우는 시어서 먹고 싶지 않다고 자기를 속였으니 다른 방식으로라도 먹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