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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앞집 배려 요청 커뮤니티 글, 당신의 생각은?

『知彼者 心安也』 열 번째 글

by 멘토K


#10. 앞집 배려 요청 커뮤니티 글 사례, 정당한 문제 제기일까?, 황당한 요구일까?


최근 한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장의 메모 사진이 화제가 됐다.


내용은 이렇다.


“앞집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인기척이 있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주세요ㅠㅠ

이 정도는 서로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이라 생각합니다.”


커뮤니티


누군가의 현관문 앞에 붙어 있었던 쪽지 한 장. 누리꾼 사이에서는 순식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배려를 요청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쪽과 “이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한 요구다”는 주장이지만 다수는 황당한 요구라는 쪽이 다수인거 같다.


이 짧은 쪽지 한 장은 요즘 아파트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심리적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어졌다.


서로의 존재를 ‘불편함’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도시인의 단면이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부탁 같지만, 문제의 본질은 ‘개인적 불편함을 사회적 규범으로 만들려는 시도’에 있다.


“조금 기다렸다 나와 달라”는 요구는 사실상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의도가 ‘배려’든 ‘불편함의 해소’든, 타인의 일상 패턴을 바꾸려는 순간 관계는 불균형해진다.


비슷한 사례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층간소음 문제로 “밤 10시 이후엔 화장실 물을 내리지 말아달라”는 요청, 공동 현관 앞에 “엘리베이터는 2층 이상만 타달라”는 안내문 등.


모두 불편함을 줄이려는 의도지만, 한편으로는 ‘배려의 강요’가 되어버린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행동은 통제 불안(control anxiety) 에서 비롯된다.


내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마주침이나 소음, 타인의 행동이 일어나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예측 가능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에게, 타인의 자유로운 행동은 곧 ‘위협’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공동주택은 철저히 ‘공유된 공간’이다. 내 편안함이 누군가의 불편함 위에 세워질 수는 없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감정이 불편하다고 해서 상대의 행동을 제한할 권리는 없다.


진짜 배려는 상대의 자유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한편, 일부이지만 댓글 중에는 이런 반응도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메모라도 남겼으면 용기 있는 사람 아닌가요?”

“공감한다. 나도 갑자기 문 열리면 깜짝 놀란다.”


이 반응에서 또 다른 현실을 읽을 수 있다. ‘공동체 피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살다 보니, 사소한 자극에도 피로가 누적된다.


현관문 여닫는 소리, 엘리베이터 앞 대화, 택배 박스 쌓이는 풍경… 이 모든 게 타인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결국 사람들은 ‘나만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점점 예민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공간의 경계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공용공간에서는 ‘불편함’이 아니라 ‘공존’을 전제로 해야 한다.


복도나 엘리베이터, 주차장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다.


서로 마주치는 순간은 피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이다.


둘째, 불편함을 표현할 때는 ‘요구’가 아닌 상대의 입장을 고려한 ‘소통’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

요구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떻게 느껴질 것인가?


나의 권리주장이 상대방의 정당한 자유를 억압하지는 않는지 역지사지로 생각 한 후 필요하다면 정중한 소통이어야 한다.


셋째, 완벽한 편안함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도시생활에서 ‘완벽한 배려’는 불가능하다. .


대신 ‘참을 수 있을 만큼의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로 조금씩 불편을 감수해야 공동체가 유지된다.


“知彼者 心安也.”


앞집 문 소리에 신경 쓰인 그 마음도, 그 쪽지를 보고 불쾌했던 마음도 결국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


모두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다.

하지만 상대를 통제하려는 방식으로는 평온이 오지 않는다.


상대의 불안을 이해하되, 내 일상을 지키는 선을 분명히 하는 것. 그것이 진짜 평온을 만드는 길이다.


살다 보면, 불편함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이해로 바꿀 수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불편한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


결국, ‘배려의 한계’를 아는 것이 진짜 배려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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