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AI 시대, 왜 책은 팔리고 경력은 남지 않는

[전문가의 책쓰기, 두번째 글]

by 멘토K



책은 팔리는데, 경력은 남지 않는 장면을 나는 너무 자주 봤다.

그리고 더 불편한 사실은, 그 장면 속에 과거의 나도 있었다는 점이다. 출간은 했고, 판매도 나쁘지 않았다. 강의장에서 책을 들고 사진을 찍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책은 서점 어딘가에 남아 있었지만, 나의 다음 선택을 앞당기지는 못했다. AI 시대에 이 현상은 더 또렷해졌다.

책은 쉽게 팔리는데, 저자의 이름은 더 빨리 잊힌다.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가 오면서 책의 진입장벽은 확실히 낮아졌다.

원고 속도는 빨라졌고, 구성도 그럴듯해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책이 많아질수록, 독자는 책이 아니라 사람을 더 빠르게 구분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내용의 충실도가 아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이 어떤 판단을 해온 사람인지, 무엇을 기준으로 일해왔는지가 보이지 않으면, 책은 소비되고 끝난다. 경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 역시 한동안 이 함정에 빠져 있었다.

AI가 없던 시절에도 비슷했다. 정보를 잘 정리했고, 사례도 풍부했다. 읽기 쉬운 책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상담이나 강연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이유를 몰라 한동안 글쓰기 실력, 마케팅, 제목을 의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문제는 단순했다. 책 안에 나의 기준이 없었다. 설명은 있었지만, 선택은 없었다. 독자가 나를 기억할 지점이 없었다.


AI 시대에 이 문제는 더 치명적이다.

정보와 설명은 AI가 더 잘한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친절하다. 그런데도 사람이 책을 사는 이유는 분명하다.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사고의 방향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버리는지, 어디까지는 단호하고 어디서 멈추는지, 그 판단의 결이 궁금한 것이다. 책에 그 결이 드러나지 않으면, 독자는 책을 읽고도 저자를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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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팔리지만 경력이 남지 않는 가장 흔한 이유는 책을 ‘성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출간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책은 역할을 멈춘다. 반대로 책을 기준 고정 장치로 설계한 사람의 책은 출간 이후부터 작동한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낸 뒤에야 이 차이를 체감했다. 어떤 책은 출간 후에도 계속 설명을 요구했고, 어떤 책은 책을 읽고 왔다는 말과 함께 질문이 달라졌다. 질문의 깊이가 바뀌는 순간, 책의 역할도 바뀌었다.


또 하나의 오류는 모든 독자를 품으려는 욕심이다.

AI 시대에는 이 욕심이 특히 위험하다. 모두에게 무난한 책은 AI 요약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다. 반대로 분명한 선을 긋는 책은 요약되더라도 저자의 관점이 남는다. 나 역시 한동안 반박이 두려워 판단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 결과 책은 안전해졌지만, 저자는 흐려졌다. 지금은 그 반대로 간다. 동의하지 않는 독자가 있어도 괜찮다는 전제로 쓴다. 그때부터 책은 나를 대신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AI를 활용한 책쓰기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AI를 어디까지 쓰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결정하지 않는 태도다. AI에게 맡겨야 할 것은 정리와 구조이고, 전문가가 직접 남겨야 할 것은 판단과 책임이다. 이 선이 흐려질수록 책은 팔려도 저자의 경력과 분리된다. 나는 지금도 이 선을 지키는 데 실패할 때가 있다. 원고를 쓰다 보면 다시 설명이 늘어나고, 판단이 뒤로 밀린다. 그럴 때마다 원고를 멈추고 묻는다. 이 문장은 AI가 써도 되는 문장인가, 아니면 내가 직접 책임져야 하는 문장인가.


책이 경력으로 남으려면 독자가 책을 덮고 나서 저자를 떠올려야 한다.

이 사람에게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 생각은 정보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준에서 나온다. 나는 왜 이렇게 판단했는지, 당신은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 묻는 순간이 생겨야 책은 자산이 된다.


AI 시대에 책은 더 이상 증명이 아니다. 선언에 가깝다.

나는 이런 기준으로 일해왔고, 앞으로도 이 선을 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 선언이 분명할수록 책은 오래 남는다. 반대로 선언을 피한 책은 빨리 소비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책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결정해야 한다.

이 책을 팔고 싶은지,

아니면 이 책으로 나의 다음 단계를 열고 싶은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달라지는 순간, 책쓰기는 완전히 다른 일이 된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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