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책쓰기, 다섯번째 글]
정보가 넘칠수록, 줄인 책이 선택된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받아들였다.
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의 나는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아직 더 설명해야 할 게 남아 있는 것 같았고, 사례 하나라도 빼면 허전했다. 독자가 오해할까 봐, 혹시 질문이 생길까 봐, 문단마다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그 결과 책은 두꺼워졌고, 나 스스로는 성실하게 썼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책은 팔렸지만, 선택되지는 않았다.
출간 이후 현장에서 만난 독자들의 반응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내용이 많아서 도움이 됐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이 책 때문에 방향을 정했다”는 말은 거의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도 다시 검색을 하고, 다른 책을 찾아보고, 결국 판단은 미뤄졌다. 정보는 충분했지만, 결정을 돕지는 못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아서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AI 시대에 들어서며 이 문제는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정보는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 정리된 설명, 비교표, 사례 요약은 버튼 몇 번이면 나온다. 이런 환경에서 두꺼운 책은 친절한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부담이 된다.
독자는 묻는다. 이 많은 정보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런데 책이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책은 참고자료로만 남는다. 자산이 되지 않는다.
나 역시 한동안 이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책을 쓸수록 더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전문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이상한 장면이 반복됐다. 얇게 쓴 책이 오히려 더 많이 언급되고, 상담과 강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겼다. 반대로 공들여 쓴 두꺼운 책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 차이를 만드는 요소를 추적하다가, 나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선택을 대신해 주는 책은 짧았고, 선택을 미루게 만드는 책은 길었다.
정보를 줄인다는 것은 요약하라는 뜻이 아니다.
나 역시 초반에는 이 두 가지를 혼동했다. 핵심만 뽑아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약은 정보를 압축할 뿐, 판단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줄인 책이란, 정보를 덜어내고 기준을 남긴 책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설명하는 대신, 저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를 드러내는 책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책은 아무리 잘 써도 참고서로 머문다.
내가 가장 크게 저지른 오류는 독자의 불안을 대신 떠안아 주려 했다는 점이다.
혹시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 사례를 모르면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그 걱정이 쌓일수록 책은 두꺼워졌다. 하지만 독자의 불안을 없애주겠다는 시도는 오히려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독자는 더 조심스러워지고, 결정을 미룬다. 결국 책은 읽혔지만, 선택되지는 않는다.
줄이기 시작한 건 용기가 필요했다.
이 정도는 꼭 써야 하지 않을까 싶은 문장을 지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나의 노력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동안 쌓아온 지식이 과소평가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줄이기 시작하자,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문장이 가벼워졌고, 책의 속도가 빨라졌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책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망설임이 줄어들었다.
지금도 원고를 쓰다 보면 줄이지 못해 머뭇거리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장이 독자의 판단을 돕는가, 아니면 나의 불안을 덜어주는가. 후자라면 과감히 지운다. 그렇게 남은 문장들은 대부분 불편하다.
단정적으로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과격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책을 선택하게 만든다. 동의하지 않는 독자도 생기지만, 동의하는 독자는 더 분명해진다.
정보가 넘칠수록 줄인 책이 선택된다는 말은, 적게 쓰라는 조언이 아니다.
책임질 문장만 남기라는 뜻이다. AI가 대신 쓸 수 있는 설명을 걷어내고, 저자만이 책임질 수 있는 판단을 남기는 일이다. 이 작업을 거친 책은 두껍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독자는 그 책을 다시 펼치지 않아도, 저자의 기준을 기억한다.
책을 쓰며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이 정도로 적어도 괜찮을까요.
나는 이제 이렇게 답한다. 적은지가 문제가 아니라, 남긴 문장을 책임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정보는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지만, 판단은 쉽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줄인 책이 선택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독자는 더 많은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 더 분명한 방향을 원한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마 책에 넣을 내용을 더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번 반대로 질문해보길 바란다. 이 책에서 반드시 빠져야 할 문장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책은 훨씬 선명해진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줄인 책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줄임의 끝에서 비로소 전문가의 책이 된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