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전, 검증된 전·현재 구성원분들이 회사의 리뷰를 남기곤 합니다. 많은 리뷰들을 잡플래닛이나 블라인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간혹 내용을 보다보면 우리 회사는 방어적이다라거나 보수적이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보통은 회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남기는 표현들이 많은 편인 것 같습니다.
조직문화는 대표의 생각을 그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이 받아들이면서 만들어갑니다. 그 결과가 의도치 않게 방어직인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방어적인 환경에서는 흔히 말하는 Bottom-up이 어렵습니다. 구성원분이 자신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실행시키는 것이 어렵고 주어진 업무만을 잘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 됩니다. 설령 Bottom-up을 원하는 분이라도 이 환경에서는 그런 행동이 이상하게 여겨지곤 합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며, 책임감을 갖고 움직이는 조직을 꿈꿉니다. 하지만 현실은 자주 다릅니다. 시간이 자나면서 어느새 구성원들은 조심스러워지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자기 일 외에는 선을 긋는 문화가 자리 잡습니다.
문제는, 이런 조직은 누군가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생긴다는 것입니다. 딱히 큰 갈등이나 위기가 없어도, 조직은 자연스럽게 점점 더 방어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이 글은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 안에 어떤 구조와 심리가 숨어 있는지를 하나씩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방어적 조직이 어떻게 ‘정상화’되어 버리는지, 나아가 그걸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방어적인 조직 = 실패에 대한 두려움 + 소통 단절 + 책임 회피 구조
경직된 업무 환경
경직된 업무 환경에서는 구성원들이 실패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말 한 마디가 추궁처럼 들리고, 협업 중 발생한 실수가 비난의 대상이 되면 사람들은 ‘필요한 말만’, ‘정답일 것 같은 말만’ 하게 됩니다. 팀 내, 또는 타 부서와 협업하면서 본인이 만든 실수로 인해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워하곤 합니다. 어느 정도 완전성을 갖추기 전까지는 업무나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지 않게 됩니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는 ‘완벽’을 요구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불완전한 정보와 늦은 대응만을 남깁니다.
회의는 조용해지고, 문서는 늦게 공유되며, 실제 문제가 되는 순간엔 “아무도 몰랐다”는 말만 반복됩니다. 업무 유관자는 답변을 받거나 업무를 전달받을 때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리거나 재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는 결국 업무 생산성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비효율을 유발하게 됩니다.
경직된 업무 환경은 심리적 안전(Psychological Safety)이 깨진, 즉 실패를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믿지 못하는 조직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현상입니다.
사일로 현상
운영팀 매니저가 “이번 프로모션 변경안에 대해 마케팅팀과 이미 조율된 줄 알았는데, 왜 전달이 안 됐죠?”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마케팅팀 담당자는 “우린 그런 얘기 들은 적 없어요. 저희 쪽엔 공유된 게 없었어요.”라고 답합니다.
회의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대화 장면입니다.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고, 이후 진행된 회의는 두 부서 모두 방어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건 바로 기능조직 간 벽이 생긴 후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조직은 아직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니는 듯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필요한 정보는 쉽게 공유되지 않으며, 정보 공유는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무언의 인식이 퍼집니다. 이처럼 사일로는 조직 내 신뢰를 침식시키며, 결국 협업의 기본인 “공유”와 “조율”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정보의 비공유와 왜곡
사일로가 깊어진 조직에서는, 정보를 숨기는 게 ‘기본값’이 됩니다. 필요한 문서가 공유되지 않고, 요청은 늦어지고, 심지어 “그거 우리 일 아닌데요?”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어떤 팀은 중요한 변경사항을 다른 팀에 알리지 않고, 어떤 팀은 자기 부서의 리스크를 다른 부서 탓으로 돌립니다. 더 나아가면 “일부러 틀린 정보”를 흘리거나, 퇴사 직전에 핵심 자료를 삭제하고 가는 일도 생깁니다. 이건 단순히 “정보를 안 주는 문제”가 아닙니다.
조직 간 신뢰가 무너졌다는 증거이며, 정보가 권력인 환경에서 일어나는 자기 방어적 생존 전략입니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신입 구성원, 그리고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다른 부서’입니다.
조직 상하위간 생각과 비전 불일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회사가 의도적으로 방어적이거나 보수적으로 업무를 하도록 유도하지는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그런 환경은 부정적이며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방해한다고 다들 인식하고 있습니다. 회사 경영진이 열려 있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히 상하위 간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대부분, 비전과 문화가 전달되지 않은 데 있습니다.
왜 이 방향으로 가는지,
구성원들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지금의 방식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는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말하더라도 공감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위에서는 “문화가 유연하다”고 믿고, 아래에서는 “우린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적합한 리더십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리더십의 부재가 90% 이상의 원인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어떤 원인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직 간 신뢰
회사가 바라는 유연하고 협력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조직 간 신뢰’입니다. 서로 신뢰하지 않는 기능조직들은, 동일한 목표를 향해 일하고 있음에도 다른 조직처럼 행동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타 부서를 ‘위협’이나 ‘방해물’로까지 인식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업무 목적이 공유되지 않았고,
맥락이 전달되지 않았으며,
불필요한 방어심이 강화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조직 간 신뢰는 ‘같은 목적을 위해 일한다는 확신’에서 시작합니다. 이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리더의 역할입니다. 리더는 단순한 승인권자가 아니라, 각 부서의 맥락을 연결하고 번역해 주는 문화적 중개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쪽 팀의 이슈를 다른 팀이 이해하도록 적절히 설명하고,
각 조직이 가진 제약과 배경을 투명하게 공유하며,
일의 목적과 방향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상위 직급일수록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갈등의 씨앗이 생기기 전에 맥락을 연결해주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흐름이 반복될 때, “이 부서랑은 협업이 편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조직 간 신뢰는 ‘개인의 성향’이 아닌 ‘조직의 문화’가 됩니다.
소통을 통한 상하위 얼라인
조직 안에서 리더는 항상 위와 아래를 잇는 다리에 서 있습니다. 위로는 경영진의 전략과 비전, 아래로는 구성원의 고민과 실행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다리가 막히거나 끊기면, 조직 내 상하 간에는 생각의 간극이 생깁니다. 겉으로는 같은 목표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기준과 기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런 단절이 반복되면 구성원은 “왜 이걸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업무를 수행하고, 리더는 “왜 이 정도도 안 되는지”를 의아해하게 됩니다. 결국 작은 오해가 누적되어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소통입니다.
리더는 회사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고, 지금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구성원의 일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연결고리를 자주 말해주어야 합니다.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고, 단순한 피드백이 아닌 ‘공유와 개선’의 과정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소통은 단지 말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정렬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리더십의 핵심 도구입니다.
엄격하고 유연한 조직문화 지향
방어적이지 않은 사람도, 방어적인 문화 안에 오래 노출되면 결국 그 분위기에 물들게 됩니다. 조직문화는 결국 환경의 힘이고, 시스템의 결과입니다. 많은 조직이 ‘애자일’이나 ‘자율’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언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는 자율이 아닌 혼란, 유연성이 아닌 책임 회피로 이어집니다.
저는 워터폴 방식이 꼭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절차’로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각 기능조직의 역할과 책임(R&R)을 명확히 하고, 그 범위 안에서 집중할 수 있도록 하면 일은 굴러갑니다.
다만 아래와 같은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조직이 작고 프로세스가 명확하지 않을 때,
일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구성원이 자주 교체될 때,
더 나은 방법이 발견되거나 외부 상황이 급변할 때
정해진 역할만 고수하는 시스템은 회색지대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회색지대는 방어적인 태도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엄격한 규율과 유연한 실행, 그 둘의 병행입니다.
엄격함은 책임감을 줍니다. 기본을 지키는 힘이고, 조직이 흔들릴 때 중심이 됩니다.
유연함은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합니다. 회색지대를 메우고 주도성을 키워줍니다.
리더는 이 둘을 균형 있게 요구해야 합니다. 단순히 “알아서 해”가 아니라, 기본은 지키되 판단은 맡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유연한 조직문화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과, 이를 운영할 규율이 함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작동합니다.
실패에 대처하는 자세
방어적인 조직문화는 결국 구성원이 만들어내는 실수나 실패에 대해 조직이 어떤 태도로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실패는 일정 지연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사후에 반복적으로 이슈가 발생하는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이 위축되지 않고 의견을 내고 실수를 공유할 수 있으려면, ‘심리적 안전’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Amy Edmondson) 가 제시한 개념으로, “이 팀에서는 내가 실수하거나 질문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뜻합니다. 심리적 안전이 낮은 조직에서는 실수가 곧 처벌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때문에, 구성원은 적극적 발언은커녕, 일상적인 정보 공유조차 회피하게 됩니다. 이는 방어적 태도를 강화하고, 결국 조직 전체의 학습과 혁신을 가로막습니다.
반대로, 리더가 “이건 왜 이렇게 되었지?”가 아니라, “이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뭘 배울 수 있을까?”라는 식으로 질문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실패를 ‘탐색’과 ‘성장’의 기회로 인식하도록 분위기를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어적인 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실패에 대해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리더십의 토대가 필수적입니다. 심리적 안전성이 확보된 조직에서는 방어 대신 개방이, 회피 대신 학습이 일어납니다.
저는 방어적인 조직문화를 실제로 경험한 바 있습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기업에서 적용된 워터폴 문화는 중심으로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이 문화를 바꾸기 위해 자주 1:1 면담을 시도했고, 상하위 간의 생각을 맞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동기부여가 잘 된 구성원들은 점차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저는 그들의 장점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칭찬했습니다. 반대로 방어적인 태도를 가진 구성원에게는 먼저 신뢰를 쌓은 후,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구성원은 협조적이고 주인의식을 가지는 방향으로 점차 변화했으며, 어떤 구성원은 끝까지 변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매니징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직과 구성원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더 쉬울 때가 많습니다. 나의 말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납득시켜 변화시키는 것은 큰 도전이지만, 그 변화를 점진적으로 만들어 가는 순간의 성취감은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게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