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첫 여행 (1)

오십 아들이 팔십 아버지께

by 질그릇

-동생의 전화-


"형, 내가 생각해 봤는데.."


나하고 두살 터울인 동생이 주중 아침에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다. 서로 각자 업무로 바쁘기도 하고, 둘 사이에 그렇게 급한 일이 없는 터였다.


"올해 아버지 팔순이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뭔가 좀 하려고 하는데, 가까운 데는 그렇고 제주도에 모시고 갔다오면 어떨까 하고.."


나는 7시까지 출근을 한다. 오랜 습관이다. 하루 할 일을 미리 기획하고, 정리한다. 이미 전화를 받을 때는 업무를 시작한지 2시간이 넘은 시간이었다. 이미 내 머리의 모드는 '업무형' 이었다. 그러나, 그 때 동생의 음성과 제안은 귀가 아니라 나의 마음으로 깊숙히 들어 왔다.


'네가 형보다 낫다. 고맙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시도때도 없이 마음이 뭉클하고, 가슴으로 찔끔찔끔 눈물이 난다. 형이 머뭇거리는 동안에 많은 생각을 했나보다. 동생이 그 다음에 하는 말들은 같은 부모와 30년 가까이 나와 함께 살았던 자만이 할 수 있는 '공감을 깨우는' 말들이었다. 그 말들은 공학도이며, 매사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박사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놀아 달라고 나를 따라다니던 그 어린 동생이었다. 그 동생이 이제는 그 나이의 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너도 많이 깊어졌구나'


당연히, 바로 동의했다. 같은 직장생활을 하지만, 동생이 나보다는 일정을 빼기가 조금은 낫다. 동생은 나를 걱정했다. 그러나 인생에 머뭇거려서는 안 되는 때가 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인생의 장면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였다. 팔순을 맞은 나의 아버지가 지금처럼 잘 걸어 다니실 때 꼭 해야만 한다. 바로 회사에 일정을 공유했고, 대표께서 흔쾌히 승인해 주셨다. 지금 내가 자리를 빼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더욱 감사드린다.


-아버지와 두 아들의 여행-


이번 제주 여행은 아버지를 모시고, 아들 둘만 간다. 오롯이 아버지를 위한 여행이다. 엄마-어머니라는 단어는 어색해서 쓴 적 없다-께는 죄송함 그 이상이다. 엄마는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하셔서 함께 하시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여행 결정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죄송하다고.. 이 상황이 너무 마음 아프지만, 80 평생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가보신 아버지의 삶을 따뜻한 시선과 마음으로 쓰다듬어 드리고 싶다.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동일하게 살아 가고 있는 우리 아들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한참을 통화하고, 끊었다. 그 후에 바로 엄마께서 톡을 주셨다, 잘 다녀오라는 말씀이셨다.


"감사합니다. 엄마."


이번 여행 때는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다닐 생각이다. 마치 천안역에서 잠깐 기다리라는 아버지가 눈에 안 보이자 펑펑 울었다는 그 때처럼, 아버지와의 유일한 기억인 '84 태권브이'를 보러 인천시민회관 앞에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던 아이처럼.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보고 느끼는 아름다운 풍경과 아버지와 함께하는 장면 장면 하나하나를 나의 상념과 감정의 흐름과 함께 몇 회의 글로 적고자 한다. 이는 십수 년 후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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