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개인적 사유와 공존의 이유

by 질그릇

작년 가을에 정혜신님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나를 멘토라 불러주는 분이 선물해 줘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줄을 긋고 마음에 새긴 몇 문장을 나누고자 합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영역에서 인간은 공평하게 허기지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절름발이 같은 도구적 삶에서 벗어나 드디어 '나'와 만난다. 삶의 축복이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우리는 서로에게 환자이면서, 또 치유자 입니다. 환자로서 환자를 치유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한 회사의 대표가 잠깐 집 근처로 찾아 왔습니다. 회사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 얘기 나누고, 조언을 구하러 오겠다고 해서 그러시라고 하고, 저의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얘기 도중에 개인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를 하길래 그에 대해서 제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마음의 무게가 대표님을 힘들게 하는 것 같다.'는 취지로 얘기했습니다. 이에 그 대표가 울컥하고 눈물을 훔치는 데 '아 정말 힘들구나. 그 마음에 포개고 들어 주는 사람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평소 조언하고, 충고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인데, 그 날은 아무 말도 더하지 않았습니다.


정혜신 작가님의 책을 읽다가 얼마 전에 겪은 이 일이 떠 올랐습니다. 객관적인 스펙으로 보면 제가 그 대표보다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다만 저는 그 자리, 그 순간에 그저 그 '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평소의 제 행동으로 보면,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요즘 저는 Mentor를 찾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Mentor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한 스펙일 필요 없습니다. 인격적으로 훌륭할 필요도 없습니다.-측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남들이 엄청나게 인정하는 사람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이 확신이 더욱 가슴 속 깊이 새겨 집니다. 그저 세상의 그 누구에게 그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악의가 없어도 얼마든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공감은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저는 20년 가까이 경영, 전략, 인사관리, 인재성장의 영역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물론, 틈틈히 문학, 심리, 역사와 관련된 책도 읽었지만, 대부분은 소위 주전공에 집중해서 학습하고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경영 전략 인사 관련 책을 읽을 때는 중요한 부분의 경우, 줄도 그어가면서 책의 여백에 저의 의견도 쓰고, 포스트잇에 주석도 달아 붙이면서 이렇게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심리학 등 인문 관련 서적은 그렇게까지 읽지 않았습니다. 꼭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멘티가 멘토인 저에게 최근에 선물해 준 이 책은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님의 조언대로 정말 천천히 꾹꾹 눌러 가면서 그 동안의 저의 삶과 태도, 다른 사람과의 - 특히 아내와 아들 - 관계를 돌아보면서 아니, 처절하게 반성하면서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동안 작가가 의사로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면서 치열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온몸으로 부딪히며 느낀 그 아픔을 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실 속에, 때로는 치사하고 억울하고 더럽고 역겨운 그 삶 속에서 깨달은 내용입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은 갓 지은 밥 같은 것이다. 잘 지은 밥이 있으면 간장 하나만 가지고도 든든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밥이 기본이라서다."


"자신과 자기 상황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을 때까지 묻고 공감하고 또 묻고 다시 공감해 주는 일을 반복해 주는 것이 옆에 있는 공감자가 해야 하는 일이다. 자신을 또렷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곁에 함께 있으면서 주저앉으면 함께 주저앉아 있어주고, 그 과정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등 엉뚱하게 해석하면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다시 묻고 들어주고 또 그 마음을 공감해 주면서 함께 가는 사람이 공감자다."


"타인을 구심점으로 오롯이 집중하지만 동시에 자기 중심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아야 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자기 보호를 잘해야만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처 입은 존재들이다. 예외가 없다. 공감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을 내게 묻는다면 단연코 자기 보호에 대한 민감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책을 쓰고 마지막 검토를 마칠 때까지는 저자의 몫이지만, 책이 출판되고 독자의 손에 넘어오면 그 순간부터는 독자의 몫이다. 나는 나의 몫을 천천히 감당하려 한다.




요즘은 성별, 나이,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가 힘들다. 깊은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도 많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이제는 힘에 겨운 사람들도 많다. 전에 들었던 누구의 말처럼 그림자처럼, 투명인간처럼 사는데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계속 고민하면서 산다. 10~20대는 학교에서, 30~40대는 직장에서, 50~60대는 가정에서 그림자이고, 투명인간이다. 각자 아픔을 끌어 안고 산다. 이제는 고민하면서 동일한 현실을 반복하는 것도 지겹다. 4차산업혁명, 새로운 기술로 인한 삶의 풍요, OECD 국가로서 위상.. 내가 이런 환경에서 사는 게 맞는지 이제는 신경 쓰지도 않는다.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내가 힘든데 다른 사람의 아픈 얘기를 들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듣다가 내가 폭발해 버린다. 내가 더 아프고 지겹다고 소리치고 싶다. 가족, 친구, 회사, 사모임의 모든 관계가 나를 얽어 매는 올가미일 뿐 나에게 어떤 위안도 되지 못한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나만 이렇게 사는 것 같고 내가 최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저 무감하게 사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다. 이렇게라고 하면, 일단 겉으로는 잘 사는 듯 보일 수는 있다.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처럼. 하지만, 감정적으로 힘들어 감정을 배제하고 사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은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모두 아픈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이해해 주고, 보살펴 줘야 한다. 그게 우선이다. '내가 나를 치유의 첫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내가 스스로 나의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보지도 못하고, 나를 끌어 안아 주지도 못하는데 상대방이 누구일지라도 그 사람을 이해해 주거나 공감할 수는 없다.


'당신'이 세상을 구할 필요는 없다. 먼저 '당신'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의지하는 그 소중한 사람에게,,


'당신'은 비로소 오롯이 '그 한 사람' 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