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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Jan 06. 2021

질투와 죄

사랑과 말씀에 매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첫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교만함' 에 있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먹음직도 하고 보기에도' 좋은 선악과를 나눠 먹게 된다. 그리고는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첫 인간들의 원죄와 그 대가로 치르게 된 벌에 대한 얘기는 우리 모두 아는 얘기다.


이후에 인간이 낳은 첫 인간이 탄생한다. 바로 가인이다. 그리고 가인의 동생 아벨이 태어난다. 가인은 인간을 죽인 첫 인간이 되고, 아벨은 인간의 손에 죽은 첫 인간이 된다. 인간 사이에 저질러진 첫 죄가 살인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아직도 충격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이렇게 성경의 첫 몇 장에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걸맞지 않는 죄들이 있다. 창조주에 대한 교만함, 불순종, 배신이 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질투, 그리고 그로 인한 살인이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죄의 씨앗은 '교만' 이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된다.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죄의 씨앗은 '질투' 였다. 이로 인해 가인은 아벨을 죽이게 된다. 창조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죄다.   




창세기 4장 4절 ~ 5절

4절 : 아벨은 자기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절 :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현대 사회에 질투는 만연되어 있다. 드러나지 않게 잘 숨어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어서 남들이 알아채기 어렵다. 더 무서운 사실은 자신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겨우 자신의 남에 대한 질투심을 알아챈다해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자신을 바닥없는 구덩이로 밀어 버리는 것과 같다.  


평소에 내 속에 숨어 있던 질투심은 언제든지 나를 죄로 밀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나를 충동질하고, 마구 흔든다. 그러다가 일정 시점에서 질투심이 성공과 만나면, 교만과 허영심이 된다. 질투심이 실패와 만나면, 자기비하, 좌절, 분노가 된다.

  



"질투는 다른 이가 잘 되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질투는 '남들이 즐기는 것을 나는 왜 즐기지 못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내가 즐길 수 없는 것을 왜 남들이 즐겨야 하는가?' 라는 고압적인 물음으로 끝난다." - 도로시 세이어즈



이 질투심을 스스로 없애고 다루기는 어렵다. 내 경험상 그렇다. 언제든지 내가 범죄하도록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항상 이를 경계하고 신중히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홀로 벽면수도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친구와 만나서 얘기나누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낫을 수도 있다.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현대사회는 '나 자신'에게 오로지 집중하라고 모든 처방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얘기하는 세상이다. 마치 내가 '다(all)' 인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물론, 각자의 물음에 대한 '답'은 각자의 몫이다. 


오늘 나의 답은 '평생'의 답이다. 아니 솔직히 고백컨대, 그러기를 바란다. 나의 죄와 그 씨앗을 들여다 보는 것이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의 답은,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그 분 앞에 나의 질투심들을 하나씩 내려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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