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소명과 직업에 대한 기존의 사고방식, 우리에게 당연한 듯 요구되었던 관습적 행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나의 생각을 쓰고자 한다. 우선, 소명과 직업 모두 인간의 삶에 각각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소명은 일편단심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에 대한 변함없는 추구다. 삶의 목적이고, 살아 가는 가운데 내가 맡아야 할 역할이고, 과업이고, 책임감이다. 또한 북극성의 나침반이다.
직업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이다. 인간은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일을 해야만 한다. 일이 삶의 보람이든, 죄의 대가든 간에 인간은 직업이라는 것을 통해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아 삶을 유지한다. 나아가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하기도 한다.
직업이 소명은 아니다.
직업은 그 자체로 인정되면 된다. 직업은 다른 것으로 여겨질 필요가 없다. 직업으로 인해 삶은 때론 어렵고 지루하기도 하다. 때론 일을 하는 것이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직업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게 하고, 때론 삶 자체를 보람차고, 윤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빛과 그림자의 양면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직업은 다른 것일 필요가 없다. 그 자체로 인식하고, 삶 속에 함께 하면 된다.
이것이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는 '고귀한' 생각보다 직업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나는 오히려 이 '고귀한' 생각이 훨씬 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본다. 직업을 우상화해서 소명이라 칭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현혹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유혹자들이 현실적인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끌어 올리려 노력했다. 대중 선동가들은 빠짐없이 그랬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수 많은 일반인들이 치렀다. 그들의 희생과 죽음이 있었다.
변화와 속도의 시대, 그에 대한 적응력이 어느 시대보다 요구되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3~5개의 직업을 갖는 것이 문제인가? 소명의 큰 흐름 안에서 우리는 두 개 이상의 직업과 직장을 가질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직업을 바꾸고, 직장을 옮기는 것은 하나의 커리어 개발 전략이 될 수 있다. 전혀 문제 없다. 이것은 사회가 요구하고, 한 개인의 생존전략이 된 지 오래다.
직업의 우상화를 경계한다.
소명의 순수성을 직업(일)이라는 껍질로 과대포장하는 일은 자본주의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 계급사회에서 일은 지배계급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근대로 넘어 오면서 각색되고 우상화된 것이다. 우상화는 항상 한 사람 또는 일부 계층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직업을 소명으로 강제로 일컫는 자들의 불순함이 직업을 우상화해 왔다.
직업(일)에 필요한 것은 우상화가 아니라, '프로의식' 이다. 즉,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탁월하게 해 내고자 하는 열망과 지속적인 학습, 통찰력을 얻기 위한 사고의 노력들이다. 프로답게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소명은 아니다. 과격하게 얘기하면, 나는 직업에 소명의식을 요구하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명은 본질, 직업은 그릇
소명은 방향이고, 절대적이다. 하지만 직업은 삶의 방식이고, 상대적이다. 소명은 결단코 지켜내야 하는 것이지만, 직업은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바꿔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둘을 혼용하거나 악용하지 않아야 한다. 절대 누군가에 의해서 당해서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소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삶의 본질과 방향을 잃지 않는다. 직업은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한 각자의 방식이고, 본질을 담는 그릇이다. 본질을 담는 그릇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
소명이 행방불명된 시대,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와 밥상머리 가족에만 집중하는 시대, 원하는 직업을 갖기 힘든 시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부족한 시대다. 이런 시대에 오늘 나의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내내 맴돈다.
하지만, 누군가는 고민하고, 말하고, 공유하고, 토론하고, 논쟁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