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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Jan 19. 2021

'사용자 중심' 믿음

사랑과 말씀에 매이다

오늘날 세상을 부정하는 그리스도인은 무척 드물다. 세상으로부터 물러서 있을 만한 사막도 드물고 게토(ghetto) 역시 구식에 속한다. 우리는 사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적당히 어울리는 존재가 되려고 열렬하게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현대의 '믿음 없는 자'들에게 '사용자 편의적인' 복음을 들고 나가면서 복음을 '멸시하는 교양인들' 의 존경을 얻으려는 모양이나 그저 이 시대의 안락함을 즐기는 모양으로 나타난다. - 『소명』, 오스기니스, 343페이지.


*게토(ghetto)는 소수 인종이나 소수 민족, 또는 소수 종교집단이 거주하는 도시 안의 한 구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빈민가를 형성하며 사회, 경제적인 압박을 받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세기에 유럽에서 설치한 유대인 강제거주지역, 나치 독일이 만든 유대인 강제수용소, 미국에서 흑인 등이 사는 빈민가가 게토에 속한다. (위키백과)




난 신학을 모른다. 거창하고 체계적인 이론으로 무장한 종교적 해석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길이 결코 순탄하거나 쉬운 것이 아님은 안다. 다른 종교도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방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안식을 약속하는 종교는 있지만, 그 안식에 이르는 길이 쉽고 편한 종교는 없다. 만약 그런 종교가 있다면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내가 아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삶에 순종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뿐이다.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 어떤 사용자 중심의, 사용자 편의적인 방법은 없다.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들 각자의 부와 지위와 학력과 바램에 따라서 맞춤형 재단으로 믿음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변형되고, 적응(?)해 가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우리 삶은 어떠한가? 기준과 원칙, 공의,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공정함이 있는 "가치 중심의 삶" 인가? 아니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내가 편한대로 살아가는 "사용자 중심의 삶" 인가? 이 질문은 종교에 속한 질문이 아니다. 각자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인간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이미 갖고 있다.  


"이에 내가 나에게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고, 나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나만을 의지하고, 나의 목표만 좇아 살아가면 된다."


자기개발 서적이나 강연에서 많이 듣는 내용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방식에 동의한다면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 보편적인 방식을 따르는 것이 참 편하기는 하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다. 몇 권의 자기개발 서적이 나의 삶의 지표가 된다. 여기에 인간으로서 우리의 욕망이 불을 지피면 된다. 활활 타오르는 그 불 속에서 스스로가 타는 것만 경계하면 될 것이다.


는 그 불 길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에 부족한 사람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새까맣게 타버린 재더미 속에서 찾아낸 나의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무엇을 권면할 자격이 없다.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은 또한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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