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의성에 가서 살게 됐어.
의성행이 확정된 후 연락하는 사람,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소식을 알렸다. 제주나 속초살이 경험이 있었지만 ‘산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먹고 사는 일을 하기 위해 의성으로 내려가야 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지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의성에 가서 무슨 일하는데? 농사일해?”
“의성? 들어는 봤는데, 어디 있는 곳이더라?”
"의성? 아, 의성마늘햄!”
생면부지인 곳에 가서, 살면서, 일까지 한다니. 당연히 궁금하고 의아한 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한두 차례 찾아본 얕은 지식을 가지고 의성에 대해 가볍게 브리핑하고 나면, 의성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는 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방법을 고민하고 환경을 만들고 힘을 보태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답은 주로 두 분류로 나뉘었다.
“왜 그런 일을 하고 싶었는데?”
혹은 “우와, 멋있다!”
두 답변 모두 괜히 긴장하게 만드는 답변이었다.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쪽과 멋지게 바라봐주는 부담을 견뎌야 하는 쪽. 둘 다 진심 어린 관심과 응원의 마음에서 말해준 것일 텐데...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건 아무래도 의성으로 오는 것에 멋지고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성에 내려오기 전, 속초에서 한달살이를 했다. 한달살이라 하면 대부분 무언가를 하며 한 달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에는 숙소와 숙소 앞 바닷가, 마트만을 오가는 한 달을 보냈다. 제주도 스탭생활이나 여행으로 여러 지역을 갔던 경험과는 확연히 달랐다. 관광지가 아닌 거주지로서의 지역은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고 일상의 환경이었다. 그 안에서 관광이 아닌 삶의 리듬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는 모습이 더 뚜렷이 보였고, 관광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옛 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낭만으로만 그려낸 지역이 아니라,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터전,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현실임을 자각하면서부터 내 안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피어올랐던 것 같다. 종종 어딘가로 떠나기를 좋아하는 내가 지금껏 낭만 가득한 편견 어린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보았구나 싶었다. 그리고 계속 여행을 떠나기 위해선, 이 지역들이 아름다움을 계속 보존하기 위해선 지역 주민들의 삶 역시 안정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역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알고리즘을 타고 타고 흘러오다, 의성에서 할 일을 만드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런 기나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일은 부담스러웠다. 아마 듣는 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래서 간단히 줄이자면, 자연을 사랑하는 내가 언젠가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으려면 모두가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니까, 그러니까 결국 의성으로 와서 할 일을 만드는 것은 나를 위한 선택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멋지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 나와 함께 의성에서 할 일을 만드는 동료들, 각 지역에서 할 일을 만들어가는 멋진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려주고 싶다. 농촌라이프, 전원생활, 리틀포레스트… 어쩐지 낭만 가득한 단어들 대신, 먹고 사는 일을 선택한 사람들. 무엇이든 치열하게 골몰하는 그들과 함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본격적으로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