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의 욕구 사다리를 중심으로
로컬 창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형태는 지역의 농수산물을 활용한 F&B 상품개발이다. 이 시장은 진입 장벽이 낮아 보여 많이들 덤비지만 창업가가 어떻게 운영해 나가는가에 따라 죽음의 시장이 될 수도, 숨겨진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도 있는 곳이다.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 시장 점유율을 확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점, 경쟁이 과열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지원금을 받고 오픈한 지역의 수많은 로컬 푸드 기반 음식점들이 1년 만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 죽음의 시장인가 싶다가도 성심당, 우무 푸딩, 강릉 커피집 등 지역의 앵커 스토어를 보면 이 시장에 제대로 진입했을 때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의, 식, 주이다 보니까 외부인을 대상으로 하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든 F&B 상품이 없는 지역은 없다.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음식 상품들은 모든 지역 곳곳에 다 있다. 크든 작든 지속적인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중 크게 성공을 지속적으로 일궈나가는 가게는 몇 군데 없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소소하게 먹고 살 정도에 만족하며 그친다.
지역에서 F&B 창업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째, 지역 주민들을 가장 우위에 두고 사업을 진행하는 방법, 둘 째, 지역 자원의 가치를 알아줄 만한 사람들을 우위에 두고 사업을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 이 두가지 방법을 선택하는 기준은 그 지역의 인구 및 소비 행태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전에 있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빵 장사를 시작했던 성심당은 지역 내에서 주민들에게 크게 사랑받으며 점차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주민들에게 사랑받다 보니까 교통의 중심지였던 대전에 들리는 출장자, 관광객들이 입소문을 듣고 방문을 하게 되면서 시장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이곳은 내수 시장이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데에 지장 없이 인구가 꽤 있다는 점, 그리고 ktx가 지나가는 곳이기에 장거리 원정 때 들릴 수 있다는 지역의 특성이 있었기에 이러한 사업 확장 전략이 가능했다. 반면 제주의 우무 푸딩은 지역 자원(우뭇가사리)의 특징에 반응할 만한 관광객을 타겟하며 사업을 확장하였다. 이는 관광객 수요 시장이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며, 제주도 내에서 관광객들이 대부분 렌트를 하며 움직여 이동성이 좋다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전략이었다.
대전이나 제주는 사실 내,외수 시장 기반이 나름 탄탄한 곳이기 때문에 어떤 전략을 선택하든 나름의 소구력이 있지만 인구가 5만 이하로 내려가는 군 단위의 지역에서는 내외수 시장 규모가 훨씬 작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전략을 유사하게 사용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더더욱 진입하고자 하는 시장의 특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들어가야 한다. 시장에 진입해 있는 경쟁사, 고객의 구매력, 고객의 접근성 뿐만 아니라 이 시장에서 움직이는 고객의 근원적인 니즈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접근해야 한다. 근원적인 니즈를 분석하게 되면 그들의 구매력을 예측할 수 있다.
고객의 근원적인 니즈는 매슬로의 욕구 단계에 빗대서 분석할 수 있다. 매슬로는 인간이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 자존욕구,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하고자 한다고 보았다. 가장 하단에 있는 욕구가 가장 우선시 되며, 가장 상단에 있는 욕구는 삶의 의미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보았다.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도 이 욕구의 피라미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올라간다. 칩 콘리의 '매슬로에게 경영을 묻다' 라는 책에서 분석한 호텔 방문객의 욕구를 살펴보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호텔 고객의 욕구가 생성된다고 보았다.
- 자아실현 욕구: 정체성 환기
- 존경의 욕구: VIP 로 대접받는 기분
- 사회적 욕구, 소속 욕구: 고객의 마음을 읽는 직원 서비스
- 안전 욕구: 밝은 주차 시설, 전동 잠금 도어
- 생리적 욕구: 편안하고 청결한 침대
투숙객의 생리적 욕구는 깨끗하고 편안한 객실과 침대를 찾는 것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조건이 충족되면 고객의 욕구는 피라미드 위쪽 단계로 이동한다. 고객들의 안전에 대한 욕구는 주차장 시설, 객실 키의 형태, 호텔이 위치해 있는 지역의 분위기나 성향이 어떠한 것인지 등등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충족된다. 사회적 욕구 및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친절한 직원에 의해, 그리고 투숙객들이 서로 동질감을 느낄 때 충족되며 존경의 욕구는 VIP 처럼 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고객의 이름을 기억, 룸 업그레이드 등) 충족된다. 마지막으로 투숙객의 자아실현 욕구가 충족되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신선한 환기'가 있을 때라고 보았다. 저자는 이렇게 고객의 욕구와 니즈를 단계별로 분석함으로써 고객이 입소문을 내게 하고, 높은 재구매율을 달성하였다. 이는 F&B 시장을 분석할 때도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안에서 부싯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디딤돌은 부안에 아동 가족 관광객들이 즐길 만한 체험 요소들이 많다는 지역 자원의 특징을 잡아 아동가족관광객을 타겟 고객으로 삼았다. 이들은 타겟 고객이 기존에 즐겨 먹는 디저트를 분석하고 아이와 부모의 디저트에 대한 니즈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한계를 발견했다. 부모 관광객의 욕구는 다음과 같다.
- 자아실현의 욕구: 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부모
- 존경 욕구: 고급 포장지로 대접받는 기분
- 사회적 욕구, 소속 욕구: 지역 특색이 담긴 디저트,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디저트
- 안전 욕구: 가게의 청결, 아이를 고려한 접근성
- 생리적 욕구: 맛있는 디저트
부모 관광객의 생리적 욕구는 아이와 함께 먹을 만한 맛있는 디저트를 찾는 것으로 충족된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고객들은 가게가 아이들과 접근하기 좋은지, 가게의 청결도는 어떠한지, 가게가 위치해 있는 지역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등등을 살펴보며 안전 욕구를 충족한다. 사회적 욕구 및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지역 특색이 담긴 디저에 의해 이 지역 문화에 동화될 때, 다른 가족 관광객들이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을 때 충족된다. 존경 욕구는 작은 디저트지만 고급 포장지로 대접받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충족된다.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의 욕구는 '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부모가 된다는 기분이 들 때 충족된다.
이미 다수의 가게들이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를 충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디딤돌이 주목했던 포인트는 사회적 욕구부터 자아실현의 욕구까지였다. 부모의 경우 색다른 지역에 놀러온 만큼 지역의 특색이 담겨있는 '이색적인' 디저트를 먹고 싶어한다는 니즈가 있었다(이는 사회적 욕구, 소속욕구에 기인한 것이다). 아이의 경우 기존의 자신이 좋아하던 맛에 새로운 식감 등 약간의 새로움이 가미된 디저트를 좋아했다. 부안에 있는 기존의 디저트 집들은 구매자인 부모의 니즈에 초점을 맞춰 생산하고 있었다. 개성주악, 곰소소금찐빵 등 지역의 특산물을 전통적인 디저트에 가미한 생산물들은 구매자인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제품들이다. 이 디저트들은 '관광지에 왔으니 이곳에서의 소속감을 느끼고 싶다'는 사회적 욕구, 소속욕구를 잘 분석하였기에 어느 정도 꾸준한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부안 관광객 디저트 시장을 더 깊게 파본 결과 이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부안이 만약 제주도처럼 불특정 다수의 관광객 시장에 접근하는 입장이라면 '지역 특색이 들어간 디저트를 먹고 싶다'에서 끝날 수 있었다. 더더욱 이색적이고 더더욱 지역적인 전통 디저트를 개발하여 접근성이 높은 곳에 내놓는 것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안에 오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영유아를 동반한 30대 초중반 부모들이었고, 이들은 아이를 동반한 지역 여행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디저트에 조건을 하나 더 붙인다. 그건 바로 '아이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라는 전제 조건이었다. 이는 인터뷰를 하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사실이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특별하게 시간을 내서 온 가족이 아이와 여행을 한다는 점,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아이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점, 아이들이 신나게 놀아 오후에는 배고프고 힘들어서 짜증내고 칭얼거린다는 점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자아실현의 욕구에 해당하며,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기억을 선사하는 여행을 만들어준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자아실현 욕구가 근간에 있었다. 가족 여행인 만큼 아이와의 행복한 시간이 더 우선시되기 때문에 아이의 입맛, 경험을 더욱 상위 조건에 두고 있었다.
이는 디딤돌이 실제로 베타테스트를 진행했을 때도 일치하는 사실로 나왔다. 부안의 유명 호텔에서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디저트를 실제로 판매해 보았는데, 이때 디딤돌은 네 가지 맛을 준비했다. 디딤돌은 디저트의 모양을 부안의 문화재를 본떠서 만들어서 지역 특색을 살리는 조건은 기본적으로 다 충족했고, 거기에 추가적은 특산물까지 넣으면서 특색을 강화하였다. 특산물을 넣은 부안 뽕잎말차 초코, 부안 곰소 솔티카라멜, 부안 오디베리, 그리고 쿠키앤크림 이렇게 네 가지 맛을 준비했다. 지역 특산물이 들어가지 않는 쿠키앤크림을 넣어야 되냐 마냐에 의견이 매우 분분했지만 그래도 아이들 인터뷰 당시 가장 인기가 많은 분야가 초코였기 때문에 넣어보자는 의견으로 이렇게 4가지 맛이 편성되었다. 팝업 바로 전 주에 돈을 받지 않고 진행한 시식회에서는 부안 오디베리가 아이들도 좋아하고, 부모의 니즈(지역 특산물)도 충족하면서 인터뷰했을 때도 가장 인기가 많아 판매할 때도 1위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구매가 이뤄지는 현장에서는 결과가 달랐다. 네 가지 맛 중 지역 특산물이 들어가지 않은 쿠키앤크림이 앞도적으로 많이 팔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하나씩 시식을 해보고 자신들이 평소 가장 좋아하고 익숙한 '쿠키앤크림' 맛을 골랐다. 그러면 부모들은 그 맛은 기본으로 다 넣고 다른 지역 특색이 담긴 맛을 추가적으로 골랐다. 고급 포장지로 아이에게 선물하는 기분을 내게끔 만든 것(존경의 욕구)이 구매를 촉진하는 또 하나의 요소였다. 소비자들의 근원적인 니즈를 파헤쳐, 전제 조건을 하나하나 다 확인함으로써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테스트였다.
이처럼 로컬 기반 F&B 시장은 그 규모가 작은 만큼 시장의 특성을 정말 명확하게 분석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불편함을 따로 말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인터뷰를 통해서 끊임없이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힌트를 발굴해야 한다. 시장의 특성은 소비자들의 불평, 불만에서 파악할 수 있다. "엄마, 이거 맛없어!" "애들이 먹을 만한 디저트는 없나요?" "초코 맛은 따로 없는 건가요?" 하는 질문이나 투덜거림 속에서 시장의 특성을 조금씩 정의해 나갈 수 있다. 이렇게 시장의 특성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우리의 제품, 판매 전략, 판매 문구들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도 훨씬 쉽게 감을 잡을 수 있다.
오늘도 집에 앉아 왜 우리 고객은 이 제품을 사지 않을까 고민만 하고 있다면 당장 소비자를 만나러 가라. 소비자를 만나서 그들이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라. 거기서 시장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