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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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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맴맴 Nov 11. 2024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여태 심한 증상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임신 이후는 더 심했다.


아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나는 또다시 죽고 싶다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한번 증상이 나올 때마다 고독함이 몰려오고 언제 또 발생할지 모르는 외로움이 나를 몰아세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모든 마음이 해결되지 않는 스트레스는 나를 더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아기가 궁금했다.

증상이 아기한테 괜찮은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아기가 지금 심장이 뛰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아직 낮까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때 동네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발작이 일어났다고 말했더니, 대학병원에 가는 것을 권유하셨다.


하루가 지나, 증상은 낮까지 찾아왔다. 나는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서 급하게 신경과 예약을 잡았으나, 일주일 뒤였다. 일주일 뒤면, 내 증상이 더 나빠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불안함을 안고 병원 갈 날만 기다렸다.



하루가 지날수록 난 더 심해졌다.


하루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증상이 더 심하게 나올까 봐 노심초사하며 새벽을 지새웠다.

자면 깨고, 다시 자고를 반복해 깰 때마다 시간을 보니 난 한 시간마다 깨고 있었다.

깊은 수면에 들어가기 직전에 증상이 나왔고 비몽사몽일 때도 증상이 수차례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뻣뻣해지며 굳어짐과 함께 멈출 수 없는 떨림을 오롯이 느끼며 뇌가 죄여오는 듯한 느낌까지 함께하는 내 증상.



외로웠다.


마치 흰 눈 밭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 혼자 증상을 견디는 느낌이었다.

예전 선교단체에서 선교에 가서 증상이 나타나 걷지 못했었다. 그때 간사님이 수시로 증상이 나타난 내 다리를 움켜쥐고 ‘예수님이 함께하셔.. 같이 슬퍼하셔..’라고 말했다. 아픈 것이 고통이었던 나는, 예수님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가 궁금했다. 내가 예수님이라면, 날 고치고도 남았을 거라 생각했다.




난, 이렇게 살게 된 현실이 미웠다.



다시 아플 때면

마음이, 생각이, 감정이, 그때로 데려간다.

그때 예수님은 어디 있었을까.

(그러다 이내 깨닫는다. 사람을 통해, 주님은 계속 내 옆에 계셨다. 이 생각을 갖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증상이 심해지니, 날이 갈수록 우울해지기보단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좌절도 그 어떤 감정이 떠오르지 않고 그저 무기력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통제가 안 되는 몸을 보는 심정은 꽤, 슬프다.

몸의 모든 것은 뇌가 담당하는데, 뇌에 이상이 생겼으니 이걸 어찌 해결하겠는가.

남편과 기도하다가 문득, 유럽에 갔을 때 저녁약을 시차에 맞추기 위해 두 번 먹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삼일 후면 병원 가는 날이었는데, 이틀간은 그렇게 먹기로 했다. 난 급하게 약 용량을 늘렸다.

새벽 발작 빈도수는 줄었고 조금은 걸었지만, 여전히 화장실까지 가는 거리가 힘들었다. 고작 화장실, 바로 앞인데.



드디어 병원 가는 날. 난 불안한 걸음으로 병원에 갔다.

난 선생님께 증상에 대해 말했고, 약을 두 번 먹은 것도 말했다. 약에 의해 태아가 안 좋을까 봐 겁을 냈지만, 선생님은 별다른 말씀은 안 하셨다.

그리고 ‘부분발작은 태아에 영향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선생님, 제가 힘든데요 ‘라고 받아쳤더니,

‘네, 근데~ 태아에는 영향이 없어요~’라고 느긋한 답변을 하셨다.

긴장감인지 불안함인지 의사 선생님 앞에서도 증상이 나왔고, 그걸 본 교수님은 임신해서 불안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나타날 거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내가 힘든 게 싫다.’

명확한 내 소리였다.

태아? 아이? 내가 아픈데 태아 걱정할 여유 따윈 없었다.

난 엄마가 맞는 걸까.


아이가 태어나면 마음이 변하려나..?


난 약용량을 올렸고, 급할 때 먹으라는 약도 처방해 주셨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다시 보기로 했다. 약 흡수율을 보기 위해 피검사도 했다. 산부인과 인계를 해주셨고 긴급 예약으로 잡을 수 있었다.



태아에 영향이 없어서 다행인데, 이제 키울 때 어떡하나 우려가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검색을 했는데,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었는데, 잘만 낳고 잘 키우고 있다는 인터넷 글 여러 개 보았고, 희망적으로 말하는 글도 보았다. 끊임없이 주변에 좋은 말 긍정어들이 돌아다녀도, 내 깊은 곳 불안함까지 잡아주진 못했다.

이건 내가 증상을 받아들여도, 불안도를 늦출 순 없었다. 그만큼,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증상.



이 불안함을 어떻게 설명하랴, 어떻게 표현하랴, 나를 고독에게만 맡기지 않았다며 칭찬받기보단,

더더더 좋은 걸 생각하라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수없이 내가 했던 것보다 더 무언가를 하라고 하는 말을 듣는 기분을 어찌 표현할까.



타인은 안타까움이 전부일 것이다.


증상은 보통 길게는 이주, 보통 일주일이면 끝나는데, 증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너무 길다. 그동안 병원 갔을 때 외에는 밖을 나가보지 못했다.

햇빛도 바람도 날씨도 바깥에 있을 텐데,

살만 찌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증상으로 우울 끝을 달리고 있진 않다. 내가 드디어 증상에 익숙해서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의 한두 마디에 힘을 얻는다. 고맙고 감사하다.

이렇게, 마음을 또 다잡아 본다.




상큼아,

난 아직 내가 최고인 거 같아.

이런 내 몸속에 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나는 게 신기해. 너무 감사한 일이야. 내가 널 위해, 과연 희생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엄마’가 될까?

사실 나는, 희생이 싫어서 엄마는 하기 싫었어.

내 생각이 더 선하게~ 흐르도록 널 만드신 주님이 나도 너도 책임지시겠지. 뭐, 어쩌겠어.




내 몸아, 천국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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