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전날 우리만 썼던 병실은 한 팀이 와서 이제부터 자유롭게 수다 떨 수 없었다. 조용조용히 속삭이며 얘기했고 옆쪽 부부도 조용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옆쪽부부는 자연분만이어서 하루 일찍 들어온 나보다 먼저 퇴원했다)
글로만 접했던 제왕절개 수술.
내 수술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꿀잠을 잤는데 임신기간 동안 걱정했던 걱정이 정작 다가오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병원의 안전함 때문인가…)
외래 때 교수님께서 나는 척추마취로 진행한다고 했고, 말로만 듣던 척추마취가 뭐일지 궁금했다.
의식이 있는 채로 수술을 받고 애기를 본다…? 상상이 잘 안 됐다.
간호사선생님이 나에게 아홉 시쯤 수술방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드라마나 브이로그 보면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가족들에게 응원받고 들어가던데…
여기는 그럴 수가 없었다. 산모도 못 볼 거라 했고 출산 후 나오는 신생아를 어르신들이 볼 수 있는 시간도 지나가는 복도에서 삼초…? 밖에 안된다고 했기에 친정, 시댁 모두 오지 않으셨다.
가족들에겐 그저 카톡으로 실시간 응원을 받았다.
현장엔 오로지 남편과 나뿐.
안내받은 수술시간이 넘었는데 말이 없었다.
간호사선생님한테 물어보니 앞 수술이 부인과 수술이어서 오래 걸린다고 했고, 우리는 예상 수술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폰으로 출산 후에 뭐 입을지 고민하며 옷을 고르는 나에게 남편은 ‘너무 아무렇지 않아 해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남편은 긴장한 것 같았다.
드. 디. 어
‘ooo 님 내려가실게요’
라는 말과 함께 딱 한 사람 만한 넓이의 이동 침대가 병실에 왔고 누우라고 해서 누웠다. 그렇게 수술실로 이동했다. 남편은 ‘잘하고 와’라는 말과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고, 나는 손을 흔들어줬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하는데, 드라마에서만 보던 천장샷이 이런 거였구나를 경험했다. 의학드라마 덕분인지 미칠듯한 긴장은 없었고 ‘오… 진짜 드라마와 비슷하네?’를 생각하면서 고개 들고 주변을 봤다. (너무 재밌었음)
나를 수술 대기실에 데려다 놓으셨고 난 잠시 대기실에서 누운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엔 다른 수술 환자들이 나란히 대기하고 있었다. 다 같이 이동침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는 모습에 기분이 묘했다.
시간이 되어 어떤 분이 나를 수술실로 이동했고 수술실엔 진짜! 드라마에서 보던 의료진들이 와다다 계셨다.
수술침대 옆으로 나를 옮기더니 나에게 조심히 옆으로 굴러 옆 침대(수술침대)로 이동하라고 했다.
누운 수술용 침대는 이동침대처럼 넓지 않았다.(옆으로 돌면 바로 떨어질 거 같았다)
수술을 분주하게 준비하는데, 실제로 보니 진짜 의료진 분들 너무 멋지고 나와 애기를 위해 이 많은 의료진들이 준비한다는 것 자체에 감동이었다. 수술 후기들 중에 수술실이 너무 추워서 바들바들 떨렸다는 글을 봤지만, 나에겐 으슬정도? 손이 덜덜덜 떨진 않았다.
시간은 오전 11시 2분이었다. 떡하니 내 앞에 전자시계가 있었고 위를 보니 드라마, 다큐에서 보던 조명이 보였다. 조명사이로 내가 보였는데, 수술장면 보이려나 생각하면서 비친 나를 봤다.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진 않음)
한분이 오시더니 옆으로 누워 구부리라고 했고 난 직감적으로 그 말로만 듣던 척추마취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척추마취(하반신마취) 수술 후기로 뭐 아프다 어쨌다 수많은 글과 말들을 들었는데, 다행히 나는 주사를 무서워하진 않다 보니 그렇게 두려워하진 않았다.
뭔가 손가락으로 주사 넣을 곳을 찾듯 척추를 만지시더니 마취바늘이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쫘악 뭔가 퍼지는 느낌이 들었고 점점 다리가 저리면서 열감이 느껴졌는데 그간 다리에 혈액순환이 잘 안 됐던 나는 오히려 열감이 따뜻해서 혈액순환이 되는 기분이라 나쁘지 않았다. 마취과선생님이 마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내 명치 쪽과 팔뚝에 번갈아 차가운 솜을 묻히며 마취상태를 체크하셨다.
‘여기 차가우세요? 여기 차가우세요?’
나는 ‘차가워요, 아니요’를 말하면서 마취가 되고 있는 걸 체험했다.
마취가 다 됐는지 내 다리를 의료진분들이 움직였고, 난 내내 다리가 저릿한 기분이었다. 다리를 벌리는구나 하는 감각이 느껴지길래, 급하게 마취과선생님한테 이거 느껴지는데 괜찮은 거냐고 물었고 마취과선생님은 아프진 않은데 당기거나 어느 정도 감각은 느껴질 거라고 해서 나는 순간 두려움에 칼 대는 감각도 느껴지냐 물어봤고 아프진 않을 거니 괜찮다고 걱정 말라며 나를 다독이셨다. 그러더니 한 분이 ‘많이 떨리시나 봐요. 애기 태명이 뭐예요?’라고 물었고 나는 냉큼 ‘상큼이요’라고 말했다. 고작 태명 물어본 건데 긴장이 풀렸다.
의료진 세분이서 내 환자 번호와 아기에게 채울 띠에 적힌 번호를 동시에 말하며 번호가 맞는지 체크를 했고 어느새 양쪽 팔이 묶여 있었는데, 이 팔을 묶는 게 가장 두려웠던 나는 정작 팔을 묶는다는 생각이 안들정도로 어느새 묶여있었다. 그리고 천을 덮었는데 드라마와 다르게 아예 얼굴 위까지 덮어서 위 조명도 안 보이고 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 진짜 수술이다.
의료진분들은 분주하게 뭘 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고 미세하게 ‘시작할게요’라는 음성이 들렸다. 교수님이셨다. 멍 때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수술이 이미 시작됐다고 말해주셨다. 내 몸이 갑자기 옆으로 흔들리고 배를 누르고 당기고를 반복했다. 흔들리고 당기고 누르고까지는 느껴지는데 정말 아프진 않았다. 혼자 신기해하는데 이상하게도 수술을 받는데 자꾸 졸렸다. 마취 때문인가... 졸음을 참고 버티다가 몸의 흔들거림과 배 누르는걸 몇 번 더 반복하더니 또 미세하게 ‘안 보여 석션’ ‘애기 나와요’ 흔들 ‘애기 나왔어요’
‘응애’
오전 11시 33분 남아.
오?! 순식간이었다. 애기가 금방 나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진짜 순식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드라마 속 응애 소리와 실제 나온 응애 소리는 좀 달랐다. 뭔가... 더 앵앵거리는 소리랄까…? 드라마에선 응애 듣고 엄마들이 울던데, 난 눈물은 안 나왔다. 그저 진짜 드라마에서 본거랑 너무 비슷해서 의료진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이 뿜뿜 했고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터트려준 상큼이에게 정말 매우 고마웠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땡큐 갓“을 속으로 외쳤다. 그저 감사함과 기쁨이 압도적이었다.
바로 애기 몸무게를 쟀는지 2.8kg라는 말이 들렸고 마취과선생님이 후처치 때 수면마취 할 거냐고 물어봤다. 나는 수술이 아프거나 무섭진 않았다 보니 괜찮다 했고 의식 있는 채로 후처치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어차피 애기 얼굴 봐야 해서 지금은 수면마취 안 한다며 애기 얼굴 본 후에 다시 물어보겠다고 했고 조금 기다리니(이미 후처치 중인 것 같았다) 태어난 상큼이를 보여주셨다. 처음 본 상큼이를 보며 난 이상하게 묘한 웃음이 나왔고 내 배에서 머리카락이 자랐다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기 잠깐 보여주고 이동하는 거 같은 소리가 들렸다. 다시 마취과 선생님이 수면마취 할 거냐고 물으셨고 난 괜찮다고 했고 후처치 받는 동안 멍 때리는데 뭔가 따끔따끔하길래 무서워서 다급히 ‘선생님!!! 재워주세요!!!’라고 외쳤다.
정신이 들어 눈떠보니 천장이 보였고 나는 이동침대에 누워 회복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정신은 있는데 이게 뭔지 오락가락했고 주변을 보니 양 옆에 수술을 한 환자들이 주르륵 있었다.
누군가가 와서 내 혈압을 체크했고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건지 누군가가 와서 나를 이동했다. 이동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편 실루엣이 보였고, 남편은 괜찮냐고 연달아 물어보며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땐 아픔이 느껴지진 않았다 보니 괜찮다고 대답했고 그 사이에 병실에 도착했다. 단체로 나를 들어 올려 병실 침대로 옮겼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피를 흡수할 패드를 깔고(오로가 나옴) 남편에게 무언가를 설명했던 거 같다.
잠들었는지 다시 깨어났고 나는 진짜 병실이었다. 주변을 보니 나는 처음으로 소변줄이라는 걸 차고 있었고 팔에는 여러 줄로 연결된 진통제 링거를 맞고 있었다. 남편은 깨어난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고맙다며 태어나자마자 본 상큼이 사진을 보여줬고 그 사진을 보며 얘가 내 배에서 놀았다니..? 너무 신기했다. 상큼이는 태어나자마자 벌써 눈을 뜨고 있었고 가족들에게 카톡으로 보여줬더니 눈을 벌써 떴냐며 놀라시면서 기뻐하셨다.
애기가 진짜 나온 건가 싶었고, 내 몸이 어떻게 된 건지 비몽사몽이었다. 왜냐하면, 내 배는 아직 불러있었기 때문이다. 애기 나오면 쑥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간호사선생님이 진통제 사용법(스위치를 누를 때만 진통제가 들어감)을 알려주고 나는 엉덩이 주사는 못 맞는다고 했다. 이 주사를 맞고 뇌전증 증상이 나온 사례가 있다며.. 인터넷에 엉덩이 주사 꼭 맞으라고 했는데 나에겐 해당이 안 됐다ㅠㅠ. 그리고 8시간 금식하라고 해서 아무것도 못 먹은 채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중간에 간호사선생님이 패드를 갈러 오셨는데 패드에는 내 피가 많이 묻어있었다. 오로다. 출산 후 나온다던 그 오로를 경험했다.
제왕 때 빠른 회복을 하려면 움직이라고 해서 발가락부터 꼼지락거리고 다리도 움직여보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을만한 통증이었음)
여섯 시간이 흐른 후 소아과에서 상큼이를 보여주러 오셨다.
수술방에서 들었던 상큼이 몸무게와 달리 적힌 정보는 2.9kg로 되어있었다.(정신 혼미해서 잘못 들었나..) 애기 보겠다고 모션배드를 최대 각도로 올려서 찍었다. 상큼이를 제대로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뱃속에서 머리카락이 자랐다는 게 그저 신비하고 신기했다.
‘발차기를 그렇게 하더니 그게 너였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반가우면서도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놀랐다. 이 작은 아이를 내가 남편과 키워야 한다니… 내 평생을 너와 함께 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수술 당일날은 오히려 컨디션이 제일 좋았고 사람들 가족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컨디션이 좋은 이유가 마취가 덜깨서였다는걸 다음날 알게 됨..) 다음 날 지옥이 기다리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수술? 할만한데? 라며 섣부른 둘째 계획을 짜고 앉아있었다.
... 미쳤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