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의 시간
간호사선생님께 새벽마다 너무 아프다고 말해서 진통제를 추가로 맞고 걷고 먹고 반복하다가 간호사선생님이 처치실로 오라고 했다. 어기적 어기적 처치실로 갔더니 상처를 봐주고 소독해 준다고 했다.
자연분만했던 사람과 나처럼 제왕절개했던 사람이 처치실에 힘겹게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분만했던 사람은 도넛 방석을 들고 있었고 제왕 했던 사람은 나처럼 링거걸이 또는 남편에게 의지하고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 죽겠는데 대기시간이 있었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난 처치실 의자에 힘겹게 앉았고 수술 후 병원에서 해준 복대가 있었는데, 그 복대를 벗기는 순간 자동적으로 소리칠 정도의 통증이 밀려왔다. '흐아아아앜' 그래도 뭔가 복대 덕에 참을만했던 건가 싶을 정도로 너무 아팠다. 그래도 교수님께서 수술을 정말 잘해주신 거 같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다.
수술된 부위 붕대? 테이프 같은걸 새 거로 바꿔주고 내가 너무 아파하니 더 걸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덜 걸었나 싶어서 그때부터 아파도 걸었다. 신기하게도 걸을수록 통증이 옅어졌다.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니 열심히 진통제를 눌렀다. 그래도 수술당일날 진통제 부작용으로 팔에 두드러기가 났었는데, 이젠 괜찮아졌다.
이틀째인가에 새벽에 너무 아팠는데, 남편이 옆에서 코 골고 자고 있었다. 안타까워서 깨우지 않고 참고 있었는데, 통증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 진통제를 더 달라고 하고 싶은데 배에 힘이 안 들어가니 일어설 수가 없고... 간호사 부르는 버튼도 못 누르고 미칠 노릇이었다.
'여보'를 부르는데 코 고는 소리에 내 소리가 묻혔다. 그때 정말 남편......
다인실이라 큰소리도 못 내고 망설이다가 아파 죽겠는데 다 무슨 소용인가 본능적으로 '여보!!!!'를 외쳐서 깨웠다. 남편이 간호사선생님을 불렀고 진통제를 추가했다.
반복되는 걷기 운동을 하고, 상큼이는 중간중간 소아과에서 수유하실 거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산후도우미 신청을 안 할 거라 아파도 수유하겠다고 했다.
남편도 같이 수유하는 방법을 배웠고, 소아과에서 상큼이의 상태를 알려주셨다.
냠냠 잘도 먹는 상큼이...
우리는 이제 다음날이면 퇴원하는 날이 되었고, 남편은 그 사이 집도 다녀오고 이것저것 준비를 했다.
입원 첫날부터 물어봤던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간호사선생님께서 신경과에 문의했지만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았다는 말 뿐이었다.
다음 날 교수님께서 회진 오실 때도 신경과에서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았다는 말을 남기시고 내 상태를 체크하셨다. 그러다 퇴원 전날 산부인과 교수님이 오전 회진 때 신경과에서 모유수유를 할 때 약의 성분이 소량 나가지만 수유를 해도 된다는 말이 왔다고 했다. 그런데 산부인과 교수님이 더블체크로 찾아봤는데, 소량이어도 약의 영향으로 애기가 쳐질 수 있다는 논문이 있었다고 했다. 선택은 우리 보고 하라며 쿨하게 가셨다.
나는 남편과 모유수유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러다 남편이 내 성격상 애기가 잘못되거나 조금만 아파도 모유수유한 걸 후회하고 많이 자책할 거 같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런 사람이기에 내가 수유하고 싶은 것보단, 아이를 위해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분유수유로 하기로 했다.
나는 아직도 뇌전증으로 제한되는 여러 상황들로 인해 아직도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느꼈다.
저녁 회진 때 우리는 모유수유를 안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차피 상큼이는 신경과에서 답변이 늦어서 분유를 이미 먹고 있긴 했다. 마음이 많이 속상했고 가족과 몇 지인들에게 말했더니, 같은 말을 했다.
'요즘 분유 잘 나와~ 너무 속상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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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이 지나 퇴원날이 되었다.
퇴원 당일에 나는 처치실에서 마지막 처치를 받았고 다음 예약날을 잡았다.
드디어 이 신생아랑 조리원에서 쉬러 간다는 생각과 이제 셋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