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사건 이후 나는 부지런을 떨어보기로 했다.
그동안 귀찮아서 또는 집안일을 더 하고 싶어서 등등 이유로 하지 않았던 사소한 것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서 육아와 집안일을 했다.
뭐 동요, CCM 다 치우고 진짜 내 취향의 곡들로만 음악을 들었다. 가끔 찬양도 들었지만, 들을 때 울어서 육아가 안 됐다. (상큼이에게 웃어줘야 하는데 울고 있는 엄마)
음악의 힘은 대단하다.
와- 기분이 단번에 나아지는데 기분이 캡숑 좋아짐을 느꼈다. 덩달아 상큼이를 보면서 에너지가 생겼고, 과거의 나와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래! 나 이 노래 좋아했지~~'
'이 곡은 지하철 탈 때 들으면 좋은데~~'
고작 이틀간 음악을 틀고 오전, 오후시간을 보냈는데 춤추며 빨래를 널고, 상큼이에게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상큼이도 내 재롱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껏 웃어줬다. 하루에 상큼이를 꼭 찍어야지 싶었던 것도 이제는 열심히 찍었고, 집안일도 미뤄버렸다.
오늘도 들었는데 후르츠바스켓 OST가 나왔다. 크- 또 보고 싶네. 빨래 돌리면서 생각한 건, '역시 나는 토오루는 못하겠다'였다.
혼자 추억여행을 하다가, 상큼이 보고, 집안일하고, 그러다 저녁이 된다.
남편과 저녁을 먹는데 문득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어봤다. '왜 사람은 성장이 더딘 걸까? 동물들은 냉큼 낳으면 바로 걷던데 신은 사람을 왜 그렇게 만드셨을까?'
현재 상큼이는 의자에 앉힐 수는 있지만 아직 척추를 세워 앉는 건 못하기에 하루의 변화는 빠른데 기고 서고 뒤집기는 뭔가 더딘 기분이 들었다.
'음... 오래 살라고'
남편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도 사람보다 먼저 간 게 생각났다. 아? 그렇네. 오래 살라고 주님이 이렇게 성장을 더디게 하셨구나. 아아- 갑자기 하나님이 사람이라는 존재를 정말 사랑하시는 거 같았다.
상큼이를 키워보니, 이 세상에 있는 성인들이 결국엔 상큼이 시절이 있었고 누군가(부모든 뭐든)의 보호를 받고 성인까지 컸다는 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물론 가정이 불안정해서 힘들게 큰 아이들도 존재하지만 일단 상큼이 시절에는 아무것도 못하기에 부모든, 할머니든 누구든 보호를 했다는 증거였다.
뉴스에 누가 살인해서 죽었다. 누가 자살했다. 등등 뉴스가 나오면, 마음은 아파했으나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지금은 뭔가 그 뉴스 자체를 보고 싶지 않고 아동학대 뉴스에도 불쾌함과 분노가 솟구친다. 아동학대한 부모가 뉴스에 나오면 진짜 그 부모 욕을 한 바가지를 한다. 예전엔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다. 마음 아팠다. 끝. 이거였는데, 애를 낳았더니 변했다.
보니까,
너도 나도 소중한 존재였다.
너도 나도 상큼이 시절에 함께해 준 보호자가 있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유품정리하는 직업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부모의 유품 중에 자식이 처음 탄 상, 배냇저고리, 사진 등이 있어서 그 유품을 원래 주인인 자식에게 전달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 유품을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했다. 그 인터뷰를 보고 자식이 이미 성인이 됐고 애기 때를 기억도 못하는데 왜 세월이 지난 꼬질꼬질한 옷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출산 후에 가만히 나를 보니 부모에게 자식은 정말 큰 선물이었다. 자식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남겨두고 싶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50세가 넘은 자식은 자신의 옛날 사진이나 배넷저고리가 굳이 필요하겠는가. 자식의 어릴 적 기억은 부모만 아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소중했기에 부모는 자식의 성장 기록을 남긴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봤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가 남겨놓은 재산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어서 인터뷰했는데
'웃기면서도 슬픈 건, 그 자식의 자식 것은 간직하고 있어요'
내리사랑처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그 자식을 사랑하고.
출산 초까지만 해도 나는 상큼이가 컸으니 배넷저고리를 버리려 했다. 그러다 100일이 지나니, 못 버리겠다. 참 신기하네. 못 버리겠다. 뭐 기록, 의미, 이런 걸 떠나서 너무 아쉽다. 옷이 아쉽다.
상큼이의 신생아 때를 그 옷이 기억해 주는 거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