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자괴감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안함은 이력서를 수정하게 만든다.
엄빠의 얼굴을 보고 수정하고, 가족 분위기 보고 수정하고, 나름대로 앞날을 계산해보고 수정하고.
몇 번의 수정을 해보아도
결국에는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림으로 도망을 친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건,
내가 그나마 잘하는 건,
내게 그래도 남아있는 건,
'이거'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발해서 열심히 뛰었는데, 현실의 얼굴에 부딪혀
이력서를 수정하고.
그래도 다시 다잡고 뛰려고 했을 때 현실의 다른 얼굴이 나에게 다가와 그러지 말라고 했을 때
나는 이력서를 다시 수정한다.
자기 소개서를 쓰며 스스로에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되묻기도 하고
그래도 잘 살았다고 자신에게 격려하기도 한다. (안 그러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곤 한다)
꿈을 향해 펼쳐보라 말하고 너는 잘될 거라 말하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라며 추천을 해보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꿈을 펼치지 못 하는 사람이자 시도하지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걸까
프로의 세계는 달콤하고 멋지지만
한편으론 내가 그 세계를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있기에 선뜻 나서지도 못하는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 것은 아닌지.
내 스스로 열정이 있다고 말할 수 없음은, 시도를 펼치지 못하는 내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력서를 쓰면서,
지겹도록 한 곳에 있지 않았지만 나는 쉬지 않고 일 했고 그럼에도 항상 불안했던 나를 떠올린다.
지금의 '나'는 잘 걷고 있는 것인가
취업의 길은 항상 열려있었지만 내가 가기엔 좁았고 치열했다. 남들이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포기할 수 없었고 남들이 할 수 있는 능력들이 나에게는 부족했다.
사람들의 인정과 시선은,
보이는 것이 다였고,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설득하기엔 설명이 부족했다. 내가 가는 길에 스스로 확답을 얻고 싶었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고 수 많은 가설들에 내 이야기를 끼워 맞춰 나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인생 조언은 자신의 일이 아니어서 쉽게 할 수 있었고 나는 그 조언을 바보같이 철썩 믿었다. 아니면 반대로 깊은 곳에서는 '설마'라는 불신이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그림을 봐줄 '언젠가'를 기다렸고,
기다리는데 현실의 문턱에서 항상 쓰러지고 말았다.
그럴 때면 이력서를 다시 수정하고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자소서도 수정하게 되었다.
이력서를 작성하다가 포트폴리오 첨부를 하고 작품 설명을 쓰는데 갑자기 허무함이 밀려왔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선택한지 1년에 준비기간 1년도 안된 나에게 그래도 작가라 불러주는 사람들과 내 그림을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또 선택의 기로에 서버렸고, 나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며칠 뒤에 나는 또 현실에 대한 시선을 못 참고 이력서를 수정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취업자리를 알아보고 급한 마음에 이력서를 어느 회사에 내밀지도 모른다.
공백기간이 있는 나를 받아줄지는 모르지만 이력서를 내밀며 사회에서 그래도 나를 받아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림을 계속 그리되 거대한 수입 없이 살고 그래도 현실의 문제들과 싸우며 나만의 인생 이야기를 써내려 갈지도 모른다. 그러다 내가 정말 원하는 훗 날 누군가에게 내 선택으로 인해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말해줄지도 모르겠다.
둘 중에 어느 쪽이든,
나는 나를 만들어가며 나 스스로를 사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