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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맴맴 Jun 23. 2016

가시,

지켜주지 못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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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고발





한 번은,

믿음이라는 단어로 의사 선생님과 상의 없이 약을 무작정 끊었던 적이 있었다.

내심 불안도 했지만, 괜찮을 거란 확신을 갖고 그렇게 끊었다.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픔은 일주일도 안돼서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마치, 오랜만이라며 반기라는 듯이 고통은 배로 다가왔으며 내가 꿈꿔왔던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이뤄지는 기적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어느 날은,

버스에 내리다가 갑작스러운 아픔에 발이 꼬여, 계단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다.

이럴 때마다 기도했던 건, 사람들이 제발 날 몰라주길 바라는 기도였다.

난 내 모습을 사랑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믿음은 진짜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엔 두려워도 말고, 진짜로 믿고 끊어보자. 라며 도전했고 난 또 약을 끊었다. 괜찮겠지, 하다가도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약봉지를 봤고, 하루를 끝낼 때마다 약봉지를 봤다. 예전의 경험이 불안으로 변질되어 찾아왔다. 결국엔, 아프기도 전에 약을 선택했다. 쌓여 가는 약들이 내 속에서 녹은 만큼 나도 모르게 중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적은,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내가 아무리 믿고 자시고 해도, 그 믿음은 가짜였는지, 어쨌는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침 받는다'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음은, 깊은 원망의 뿌리를 뽑고 싶기 때문이겠다. 나의 존재, 그 무언가를 회복하기 위해선, 이 문제를 절대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겠다. 나는, 꼭, 나아야만 했다. 그래야 모든 것이 풀릴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날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 상태가 괜찮은 거 같으니, 약을 끊는 건 어떠냐는 대답이었고,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무리 남이 나를 받아준다 해도, 이상하게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도대체가 나는 날 받아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도무지 용납이 안되는데, 네가 가능하다니 말도 안 돼' 이겠다. 나 자신을 용납하는데 걸린 시간은, 이 정도면 되겠지 생각하는 순간, 무너지는데 아주 단순하게, 한방에, 반항도 없이 무너졌다. 그때 괜스레 초라해지는데, 그 초라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기저기 기적을 바라보게 된다. 문제는 바라보는 초점이 흐릿해진다는 거다. 믿음은 선물이라던데, 그 선물, 왜 나는 주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불만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말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들었고, 괜찮다는 말도 들었다. 나보다 심한 사람도 존재한다고 들었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말도 들었고, 아무튼. 많은 말들을 들었다. 문제는. 그 어떤 것도 내가 약해지는 그 순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불편'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불편'하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감사'는 하지만 불만이 더 커질 때가 많아진다 이 말이다. 이때 버틸 수 있는 하나의 정신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야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괜찮고, 심한 사람도 존재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고, 아무튼 많은 말.


짊어지고 가라는 건지, 아니면 '고침 받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살면 되는 건지.

어떤 생각을 품으며 살아야 하는가.





201606


걷다가, 갑자기 전조증상이 나타났다. 옛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올 쯤이었다. 순간, 아프면 안 돼가 아닌,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어왔다.


그래, 아플 수도 있지.


나는, 아플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피하고 싶고, 기도를 하고, 약을 억지로 끊고, 어쩌고 난리를 쳐도. 나는, 아플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 아픔에서 피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인정하기 싫은데, 인정을 해버린 기분이었다. 이제야 내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인정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불안하고, 긴장하는 삶을 사는 사람 같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아플지 모를 그런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한동안 아프지 않아왔고, 잘 걸어 다녔고, 그래, 왔던 거다.


알고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약 없는 기적을 바라보며 그렇게 기적을 경험 한셈이었다. 나는, 매일매일을 아프지 않게 살아왔다. '건강'이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갑자기 찾아온 증상 소식에, 나는 어제를 쉬었고, 오늘을 쉬었고, 그럼에도 내일에 대한 외출을 기대했다.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두려움 속에서, 마음이 (이상하게)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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