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이막내작가입니다.
안녕하세요.
2022년에도 진짜 작가가 아닌, 작가 지망생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이막내작가입니다.
오늘은 올해로 6년 차 작가 지망생인 제 소개를 뜬금없이 해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나간 5년이란 시간이 거짓말 같습니다. 시간에 비해 이뤄놓은 게 없는 걸 보니, 거북이처럼 몹시도 느릿느릿 걸어왔나 봅니다. 저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벌써 첫 번째 목표지점을 통과한 토끼님들도 계실 텐데요.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그 부끄러운 것을 글 위에 내려놓으면 '부끄러움뿐'이 아닌, 또 다른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에 2022년 지금의 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저는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과 같은 소설이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입니다. 제 필명은 '이막내작가'이고요. 작가 소개란에도 쓰여 있듯이 주민등록상에 올려진 제 이름 석자를 놔두고 유난히 저를 그렇게 불렀던 한 사람, 저희 아버지가 불러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으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중학교 1학년 겨울에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12월, 제 생일이었습니다. 3살 많은 친언니로부터 일기장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저에게 '일기'란 초등학교 시절 방학 내내 미루고 미루다가 개학을 며칠 앞두고 몰아서 해치우는 아주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중학교 1학년 생일 선물로 일기장을 받은 일은...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일기장은 하드커버지로 만든 케이스 안에 끼워져 있었습니다. 꽃잎이 그려진 케이스는 촉감이 무척 부드러웠습니다. 같은 무늬와 같은 재질의 일기장을 꺼내 펼치자, 종이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났습니다.
'우와, 고급지다..!' 순전히 일기장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좋아서 거의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일기장 안에는 사춘기 시절의 질풍노도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고, 짝사랑하던 남자가 몇 명 등장하기도 합니다. 유치함으로 일기장을 한 권, 두 권 채워가는 동안 '쓰는 행위'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우연이었다면 정말 우연히, 그 시절에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그 두 권의 책은 단숨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읽을 때는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갈수록 남겨진 책장이 몇 장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이 참 멋지다'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이후로 책을 열심히 읽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나중에 커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열심히 일기를 쓰고,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받고, 가끔은 땡땡이도 치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과학(지구과학, 생물)을 좋아해서 이과에 진학했고, 한동안 춤에 빠져 지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고 축제와, 대학교 1학년 학교 축제에서 무대를 휩쓸던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하.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고등학교 내신 점수와 수능점수에 맞춰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시절은 누구보다 철없고 생각 없이 지내다가,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제 삶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구과학을 좋아하고 유일하게 잘할 수 있으며,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볼 때마다 자주 가슴이 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찾고, 애쓰다가, 기상청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제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집에서 독립을 하고, 새로운 도시들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배우고, 돈을 벌고, 수영을 배우고,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생활이라 불리는 갖가지 일들을 겪는 동안 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이는 말고... 조금, 아주 조금 철이 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는데, 어느 날 문득 제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 보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들어간 곳이었지만, 머지않아 하늘보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날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곳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저에게는 '직장'이었기 때문에 일 이외의 것들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았습니다. 실망과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가던 어느 때부터 싸이월드에 이런저런 글들을 긁적였습니다. 그리고 제 글을 본 지인들로부터 이런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너는 작가 돼라!', '너는 직업을 바꿔야 해.'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날아가는 그 말들을 붙잡아다가 제 마음속에 심고, 물을 주고, 정성껏 길렀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글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1년, 3년... 하다 보니, 어느새 '언젠가 기상청 그만두고 글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사소한 계기들(예를 들면 TV 프로그램,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해서 '당신에게 남은 삶이 단 3일이라면?' 이란 질문을 받고 그들이 3일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이 하나 둘 쌓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박 2일 워크숍을 마치고 몹시 침울했던 30대 후반의 생일날 오전, 동네 목욕탕에서 때를 밀다가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입사 10년 6개월 만에 이제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보겠노라며 퇴직을 했습니다.
2017년 1월 1일 자, 저는 인생의 제2막을 시작했습니다.
'1막'은 제게 참 감사하고 부족함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이곳에는 다 쓰지 못한 '1막'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습니다. 다 들려드리지 못한 '1막'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만큼이나 '2막'도 그저 호락호락 얻어지는 삶은 아닌 듯합니다.
10년 넘게 저를 '이주임'이라 불러주던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다가, 이제는 제가 누구인지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바깥세상에서 살아갑니다. 퇴직 이후에는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뒀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고, 제 스스로는 작가 지망생으로 열심히 걸어왔지만 공식적으로는 백수였습니다. 특별히 저희 엄마가 사는 동네에서는 저를 '멀쩡한 직장 때려치운 00이네 둘째 딸'로 정의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점점 제 스스로도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 지금 맞게 가고 있나?' 1년, 또 1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조금씩 지쳐갔습니다. 어떤 날은 초라해졌고, 어떤 날은 씩씩했습니다. 남편에게 미안해지던 날도 있었고, 혼자 속상해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루하루가 지겹다 느껴지던 2021년 봄, 딴짓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돈을 벌고 소소한 성취감을 느끼며, 그동안 글이 써지지 않아 답답했던 마음을 달랬습니다. 쪼그라들던 숨이 조금 쉬어졌습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어딘가에 내 역할이 있다는 것,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잡다한 생각들을 깊이 할 겨를이 없다는 것, 글을 쓰지 못해도 댈 수 있는 핑계가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습니다. 일을 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로 작은 전자책도 발간했습니다. 제가 쓰려는 책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제 이름 석자가 적힌 책을 발견하고 설레었다는 지인의 메시지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나름 뿌듯하게 2021년을 마무리하면서 '그럼, 나 잘하고 있는 거 맞나?'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숨겨두었던 답변을 들었습니다.
제 마음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혼자 불안에 떨고 있는 진짜 내가 있습니다. 다른 무언가에 기대 잠시 숨을 돌릴 수는 있어도, 스스로 채워야 하는 '2막' 인생의 숙제가 있습니다. 방학 내내 밀어놓은 일기처럼 숙제는 이전보다 훨씬 더 커다랗게 몸집을 불린 채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써야지.', '이번 생애에 기필코 내가 해내야 할 일인 것이지.'
올해는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는 뭔가를 써내고야 말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많이 기대되고, 또 많이 걱정됩니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한동안 '잘하고 있다'며 용기 나는 날들을 징검다리 삼아, 두려운 날들을 건너가겠지요.
그럼에도... 제게는 가장 열렬하게 저를 응원해주는 만큼 언젠가 제 덕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남편이 있고, 제가 쓴 브런치 글을 돋보기를 쓰고서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해주는 엄마가 있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글만 골라 '좋아요'를 누르는 냉정함이 있지만 진심으로 제 글에 공감해주는 언니가 있고, 잊을만하면 "이모! 글은 잘 쓰고 있어?"라고 물어봐주는 첫째 조카(남자, 올해 고등학생이 됩니다)가 있고, "나는 이모가 기상청 다니는 것보다 글 쓰는 게 더 좋더라. 이모 글 읽는 게 진짜 좋아."라고 응원해주는 둘째 조카(여자, 올해 중학생이 됩니다)가 있고, 아직 작가 지망생인 저를 '작가'라고 미리 칭하며 우대해주는 친구들이 있고, 저의 소식을 묵묵히 기다려주시는 지인들이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응원해주시는 이웃 작가님들도 있고, 무엇보다 제 안에 여전히 쓰고 싶어 안달하는 제가 있습니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글로 쓰는 이야기이든, 삶으로 쓰는 이야기이든, 우리가 하루하루 써나가는 이야기들로 2022년 한 해가 가슴 뛰고 행복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같은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실지 모를 작가님들 모두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소)
- 2022년 1월 21일 새벽, 이막내작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