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 아름다운 세상

: 어떤 현실보다 더 진솔한, 그 작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by 이막내작가

✽ 가든백화점은 1980~90년대 중반까지 광주광역시 충장로에 위치해 있던 백화점이다. 당시에는 화니백화점과 양대산맥을 이루며 광주를 주름잡았다. 꼭대기층인 7층에는 널찍한 야외 공간이 있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1~2학년 즈음이었다. 언니와 함께 아빠 손을 잡고 가든백화점 7층에 갔다. 그곳에서 내 생애 첫 연극 관람을 했다.

특별한 무대 장치가 있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간에 관객들로 둘러싸인 동그란 무대가 만들어졌다. 그 작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열연 중이었다. 사람들 틈 사이로 키 작은 난쟁이들이 얼핏 얼핏 보였다.

'뭐지? 뭐지?'

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공연을 봤다. 연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렸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분명 백설공주도 있었을 텐데, 백설공주를 봤던 기억은 없다. 그저 난쟁이가 신기했다. 진짜 키가 작네. 신기하다. 귀엽다. 등의 감상평을 하며 난쟁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배우들이 관객들과 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하나 둘 흩어질 무렵이었다. 난쟁이 한 명이 일어섰다.


누.. 구..?

적잖은 충격이었다.

심지어 우리 아빠보다도 키가 컸다.



두 번째 연극은 고3 때였다.

어느 날 저녁, 친구와 함께 작은 소극장을 찾았다. 말 그대로 정말 작은 극장이었는데, 2명의 배우를 포함해 관객들까지 스무 명 남짓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공간이 작은만큼 바로 눈앞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 마치 코앞에 앉아 있는 관객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무대 위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한 시간 반 가량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세계에 푹 빠졌다. 그 조그마한 공간은 현실세계와 완전히 분리된 작은 우주였다.


세 번째는 연극이 아닌 뮤지컬이었다. 2005년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이었다.

당시 서울에 살던 친구 두 명과 광주에 살던 친구 두 명이 만났다. 한 친구가 큰맘 먹고 뮤지컬 티켓 4장을 구매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대학로 소극장에 들어갔다. 캄캄한 극장 안, 조명이 비추는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노래를 했다.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 극장 안을 꽉 채우는 배우들의 노랫소리에 온몸을 전율하기도 했다. 공연 마지막에는 무대 앞 천장에서 빗줄기를 연출하는 물이 떨어졌다. 물줄기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퍼지던 냄새와 소리는, 어쩌면 무대 위 세상이 진짜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음이 벅찼다. 엄기준 배우가 남자 주인공으로 열연했던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였다.


이후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공연을 찾아다녔다.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연극, 뮤지컬을 보러 다녔다. 그때마다 나는 그 작은 세상에 매료되었다. 모두가 그러하듯이 그 공간에서 특별한 에너지를 느꼈다. 공간이 크든 작든, 출연하는 배우가 많든 적든, 관객이 많든 적든, 무대는 온전한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그 허구의 세계가 어떤 현실보다도 더 진솔해 보였다. 어느 누구도 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해주고, 현실이 감추고 있는 진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충격적이었던 난쟁이의 실체만 빼면, 나는 무대 위 세상이 우리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작고 완벽한 세상을 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이란 허구의 세상을 통해 현실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는 외면받기 쉬운 이야기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당연히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려울수록 더 잘 쓰고 싶었다. 50년,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반짝이는 소설들을 읽으며, 경이로운 만큼 좌절했다. 그런 소설은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 모르겠다. 여전히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렴풋할 뿐이다. 사람들 틈 사이로 얼핏 얼핏 모습을 보이며 나를 궁금하게 만들던 난쟁이의 모습처럼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 하늘을 올려다보면 떠 있는 하얀 구름이 그랬고, 소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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