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3월의 안부인사. 그리고 소설 합평 후기입니다.
지난 2월, 소설 합평 수업에 처음 참석했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느 현직 작가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였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혼자 글을 쓰면서 자꾸 같은 자리에서 넘어졌다. 계속 부딪히는 벽이 있었다. 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중에,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 사다리를 발견했다. 어쩌면 내 앞에 버티고 있는 벽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다리. 그 사다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나는, 영상 속 작가가 운영하는 2시간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왕복 3시간을 달려 서울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7주가 지났고, 앞으로 5주가 더 남았다.
그러는 동안 일을 하고, 장을 보고, 밥을 먹고, 청소와 빨래를 했다. (그나마 재택근무여서 감사했다.) 브런치 이웃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어느 이웃 작가님의 따끈따끈한 출간 책도 구입해 읽었다. 수업에서 합평할 소설을 읽고 숙제를 하는 사이, 3월이 왔다. 어느새 집 앞 공원에 봄까치꽃이 피고, 후투티(3월에 우리나라로 찾아오는 여름철새)가 왔다. 그리고 7주째 수업, 내가 쓴 소설을 합평받는 시간도 왔다.
잘 쓰인 작가의 작품을 합평하는 것이, 잘 차려진 음식을 음미해 먹어보고 '이 음식은 이러이러해서 맛있네요', '각기 다른 재료들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니 잘 어우러지네요', '개인적으로 조금 더 부드러운 식감이면 좋겠어요' 정도였다면... 아직 작가가 아닌 문우들의 글을 합평하는 건, 결이 다른 얘기였다.
내 글을 예로 들자면, 나는 크랜베리 스콘을 만들어갔다. 그런데 한 덩어리로 뭉쳐지지 못하고 조각조각 부스러진 스콘과 흩어져버린 크랜베리를 들고 갔다. 그것이 내 소설이었다. 하나로 뭉쳐지지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문우들 사이에서는 '반죽의 비율을 다르게 해 보면 어떨까', '만들려는 스콘의 크기를 작게 해 보면 어떨까', '그래도 반죽의 간은 잘 맞는 것 같다' 등의 조금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합평이 오갔다.
내가 쓴 소설의 완성본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것은 남편을 제외하고 처음이었다. 서로의 얼굴과 이름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15명의 사람들, 그마저도 마스크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소설과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이유로 모인 그들이, 내 글을 열심히 읽어주고 분석해서 의견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참 감사하고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왜 이것에 이토록 진심인지 새삼스럽게 궁금해졌다.
문장을 쓰고, 문단을 쌓고, 이야기를 꿰어나가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나눌 수 있는 시너지가 이런 것이구나.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글은 스스로 직접 써보면서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다만, 잘 가고 있는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고민하고 점검해보는 시간도 분명히 필요하다는 믿음이 추가되었다.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한 지 30여 분,
"전망대로 가려면 이쪽으로 계속 가는 게 맞나요?"
지나가는 이에게 묻는다.
"네, 이쪽으로 쭉 가세요.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계단길로 올라가셔야 전망대가 나와요."
혹은,
"저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까 입구에서 본 등산로 지도상에는 이쪽이 맞는 것 같아요."
라고 누군가 얘기해주는 기분이었다. 외롭지 않은 기분.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백지를 맞대고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가는 외로운 일을, 외롭지 않게 계속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위안. 몇 번 더 실패해보면 괜찮은 크랜베리 스콘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용기.
합평의 후폭풍도 있었다. 합평 시간에 받은 의견들을 머리로는 잘 알겠는데, 그래, 그건 알겠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금세 다시 눈앞이 깜깜해졌다. 기분이 복잡 미묘해서 며칠 동안 약간의 마음앓이를 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내 크랜베리 스콘을 더 잘 만들어보고 싶어서, 더 제대로 맛을 내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경이로움과, 복잡 미묘한 기분과, 위안과, 용기, 그런 것들이 어우러진 2022년의 봄이 나를 자꾸 조급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여름이다. 벌써 내 마음은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다.
내 뒤를 지나가던 남편이 후투티 사진을 보고,
"어! 오늘은 후투티 이야기야?"라고 묻는다.
아니다. 후투티 이야기 아니다. 그냥 며칠 전 찍은 후투티 사진이 신기해서 올리는 거다.
여름철새라고 여름에 오는 줄 알았더니, 봄부터 미리 와서 여름을 난다는 사실이 기특해 올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