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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Sep 04. 2020

저질체력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다.

달리기 5일 차 : 평균 페이스 08'07"

 새벽부터 비가 요란하게 쏟아졌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2주째, 오늘은 5일 차 달리는 날이다. 아침이 되어 빗줄기가 약해지긴 했지만, 하늘에 잔뜩 낀 먹구름들은 비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비가 오더라도 달려야겠다는 생각에, 점심때부터 기회를 엿봤다.




 어릴 때부터 내 발은 쥐가 자주 났다. 유독 심하게 쥐가 나던 중학생 시절에는 집에서 10분 거리인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열 걸음 걷고서 발가락에 쥐가 날 것 같아 멈춰서는 일을 반복했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쥐가 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지만, 그 후로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쥐가 찾아왔다. 계곡에서 튜브를 타고 노는 중에, 교회 찬양단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중에, 등산을 하고 하산하는 길에, 심지어 장거리 운전을 마치고 집 앞에 주차를 하다가도 쥐가 났다. 발에 쥐가 자주 나는 탓에 한창 멋을 부릴 20대에도 굽이 높은 구두를 잘 신지 않았고, 발이 차가워지는 겨울에는 특히나 신경이 쓰였다. 유일하게 관심을 갖었던 운동인 수영도 자유영과 배영만 겨우 배우고 그만둬야 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혈액순환장애, 마그네슘 결핍, 미네랄 불균형 등 말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아도 정확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한 의사가 말했다. 예를 들어 100미터를 걸어서 쥐가 나는 몸이라면, 쥐가 나더라도 계속 100미터 걷고 300미터 걸어서 500미터를 걸어도 괜찮을 몸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의사의 말대로라면 나는 그런 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쥐를 만나야 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차라리 100미터 걸어야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내게는 더 쉽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35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최대한 몸을 사리며 살아왔다. 네 바퀴가 달린 문명의 혜택을 적극 활용했다. 편리했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 30대 후반이 무르익어가던 어느 해였다. 이곳저곳 몸이 아팠다. 손가락 관절염, 어깨 석회 건염, 장 마비 등 별의별 탈이 다 났다. 하체의 힘도 빠지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는 어르신들이 왜 바닥에 손을 짚고 엉덩이를 먼저 추켜올리는지가 몸소 이해되던 어느 날,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엄살쟁이 몸을 어르고 달래기만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내 몸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는 막연했다. 다만, 그동안 내 몸이 얼마나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걷기. 가벼운 산책부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꾸준히 걸었다. 걷는 것이 기분 좋은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게 될 무렵, 지인이 달리기 어플을 추천해주었다. 달리기? 내 몸이 달리기를 한다고? 어림없는 소리였지만, 문득 궁금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 작가가 달리기를 예찬하는 이유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달리라고 외치는지 궁금했다. 휴대전화에 어플을 설치했다. 그리고 며칠 가지 않아 포기했다.


 삭제했던 어플을 다시 설치한 건, 몇 주 전이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들었을 때, 달리기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일주일에 3번씩, 약 30분 간의 달리기로 8주를 이어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첫 주, 3일 차 달리기는 1분 달리기와 2분 걷기를 6세트 반복했다. 첫 주를 완주하고 나서 거짓말처럼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 가벼움이 비록 아주 미묘했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욕심이 생겼다. 8주를 모두 채워보고 싶었다.


 빗방울이 투둑 투둑 떨어지는 창밖을 보며 잠시 갈등했다. 이런저런 핑계가 하나 둘 달라붙어, 달리려는 마음을 붙잡고 늘어지기 전에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생각보다 빗방울이 굵었다. 슬슬 걷기 시작했다. 몸이 데워지기 시작하자 천천히 달렸다. 달리기 5일 차, 오늘은 1분 30초 달리기와 2분 걷기를 6번 반복한다. 비가 오는 공원은 사람들이 없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없어서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마음껏 들이쉴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았다. 달리고 걸었다. 걷고, 걷다시피 달렸다. 4번째 달리기를 할 때부터 빗줄기가 후드득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세 옷이 다 젖었다. 땀인지 빗물인지 몰랐다. 온몸에 와 닿는 빗줄기가 시원했다. 빗줄기를 가르며 마무리 걷기까지 이어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의 그 기분이란, 참 좋다!


 달리기는 어떤 면에서 삶과 많이 닮은 것 같다.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완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혼자만의 싸움이라는 점도 닮았다. 마침, 계획하고 다짐했던 마음들이 도통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요즘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달리는 것에 달리기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아 달렸다. 단단히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마음을 달리기라는 구체적인 행동에 슬쩍 실었다. 달리기와 내 마음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했다.


 "꾸준한 달리기는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어플의 내레이션이 외친 말을 철석같이 믿어보겠다.


 @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나타난 몇 가지 불편한 증상들에 대하여

 -05일 차: 달리기를 마친 후, 오후 내내 오른쪽 배(배꼽 옆 즈음)가 지속적으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

 -06일 차: 달리기를 마치고 30분쯤 후, 왼쪽 가슴(심장 부위)이 담에 걸린 듯 뻐근.

 -달리기 시간이 늘어나던 어느 날: 정강이 부근에 찌릿한 약한 통증. (하루 쉬니, 없어짐.)

 달리기 14일 차, 몸의 불편한 증상들은 사라졌다. 3분 달리기 2분 걷기를 반복한다.

 내 다리가 점점 듬직해지고 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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