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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Sep 10. 2020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 하루하루를 주워 담는 마음으로

지난 3년 8개월의 시계열  ㅡ_ㅡ ;;


 D+1349. 퇴직 후, 3년 8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몇 번의 공모전에 원고를 투고했다. 아직 긴 호흡의 글은 자신이 없어, 200자 원고지 80~100매 분량의 단편소설을 썼다. 4편의 단편소설과, 틈틈이 노리던 수필 7편을 투고했다. 떨어졌다.


 첫 탈락의 기억은 강렬했다.

 세상에 내놓은 내 첫 원고가 냉정하게 내팽개쳐졌을 때의 기분을 뭐라 말해야 할까? 탈락은 당연히 예상한 결과였음에도, 정작 그것을 맛보았을 때의 기분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아쉽게도 이번 공모전에서 탈락했습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계속해서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지나가는 개미라도 외쳐주었더라면 상심이 조금 덜 했을까? 내 원고가 쥐도 새도 모르게, 소리 소문 없이 탈락했음을 나는 그저 뒤늦게 알아차릴 뿐이었다.

 상심해있는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거인(남편)이 말했다.

 "좋은 디딤돌 하나 놓은 거야. 이제 시작이야."

 그렇다. 내 앞에 하나씩 놓아가는 디딤돌이었다.


 처음 1년 8개월 동안은 '일단 무엇이든 써보는 것'에 집중했다. 쓰다가 지치면 읽고, 읽다 보면 다시 쓰고 싶어 졌다. 쓰면 쓸수록 내 글이 부끄러웠지만, 계속해서 썼다. 내 글은 항상 부족해 보였고, 부족함은 앞으로도 영원히 채워질 것 같지 않았다. 완성되지 않은 채로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고 좌절했다. 그럼에도 쓰고 싶은 것들은 여전히 늘어만 가서 나는 또 썼다. 그렇게 한 번 시작한 도전을 두 번, 세 번 이어갈 수 있었고, 나는 실패하면서 디딤돌을 하나씩 놓아가는 중이다. Failure가 아니라 Not yet일 뿐이니, 나는 오늘도 고군분투 중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 아직, 대외적으로 널리 알릴만한 좋은 소식이 없으니, 공식적으로 나는 백수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안 심심해?"

 > 나, 엄청 바빠.

 "글을 쓰고 있긴 한 거야?"

 > 밥 먹고 맨날 써.


 그리고 백수는 자주 우울해졌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은 날들이 쌓였다. 툭툭 털어내고 글을 쓰다가, 또 한숨이 쌓이는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덧 3년 8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불어난 숫자에 흠짓 놀랐다. 그 많은 날들이 다 어디로 흘러가버렸을까? 자취도 없이 사라진 내 하루하루가 아까웠다. 주워 담고 싶었다.

 무언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자, 마음을 움직여줄 계기들이 하나 둘 모였다.


어느 날 내 동거인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겠다며, 퇴근 후 며칠 밤 공을 들여 글 쓰는 모습에 자극을 받던 차, (이후, 그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탈락했다. 테마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중이다. ㅡ.ㅡ;;)

일주일에 한 편씩 완성된 글을 써내라는, 절친의 채찍질과....

다른 사람의 브런치를 보면서 내 생각이 났다는 지인의 카톡을 받았다.

몇 해 전, 포털사이트에 내 이름 석자를 검색해보았다던 또 다른 지인도 떠올랐다. 좋은 소식이 생기면 먼저 알리마 약속했었는데, 2년이 되어간다. 또 검색해볼까 걱정스러웠다.


 '디딤돌을 놓는 중'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어제가, 오늘이, 또 내일이 너무나 아까워서... 보잘것없는 내 하루들에게도 의미를 담아주고 싶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내 글을 보여주고 싶었고, 부족한 글이지만 나누고 싶었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입에서 웃음이 픽 세어 나오거나, 마음이 시큰해지는 순간이 있기를 바랐다. 내 소식이 문득 궁금했을 누군가에게 아등바등 나아가는 부끄러운 이야기라도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버리기에 아까운 하루하루를 주워 담는 마음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 시작 소식을 몇몇 지인들에게 전하면서, 혹여 내가 그들의 바쁜 시간을 뺏어 일방적인 내 이야기만 재잘대는 건 아닐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재밌지도, 감동적이지도, 훌륭하지도 않을 내 글을... 그럼에도 찾아와 한 글자 한 글자 읽어주는 고마운 마음들 덕분에 나는 오늘을 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진심, 고맙습니다.

요 녀석들은 왜 떨어졌을까? 생각하기에는 부끄러운 내 글들. 어제 쓴 글도 부끄러워하는 오늘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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