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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Sep 21. 2020

방향지시등을 켜주세요.

: 도로 위, 운전자들의 약속입니다.

 운전대를 잡은 지, 올해로 만 14년이 넘었다.

 수동변속기의 매력에 빠져  자동차를 수동으로 선택했다. 일명 '스틱(Stick)' 11 몰았다. 이후 자동변속기 차량을 운전하면서 왼발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클러치(Clutch) 부재=왼발의 자유.


 초보운전 때는 빨리 달리고 싶어도 그럴 실력이 되지 않아, 자연스레 거북이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구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왔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밟는 대로 속도가 나는 느낌이 좋아, 과속을 즐겼다. 운전을 시작한  3 차부터는 운전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 '이제 운전  한다.'는 자만에 빠졌다. 민첩한 생쥐처럼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운전에는 타고난 감각이 있는  같았다. 나름 동네에서 '베스트 드라이버(Best Driver)' 소리를 들었다. 운전은 절대 자만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다 운전 7~8 ,  번의 아찔한 경험을 하고서야 조금 겸손해졌다. 운전은  혼자 잘한다고 되는  아니란 것도 깨달았다. 운전 경력이 쌓일수록 자동차가 가진 양날의 , 편리함과 위험을 생각하게 된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운전자가 생각해야 할 책임의 무게를 기억한다. 이제야 운전이 조심스러워진다.




 평소에도 느긋하지 못한  성격은, 운전대만 잡으면  급해진다. 타고난 성격을 바꿀  없지만, 그런 운전 습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에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운전 중에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스스로에게 브레이크가 될만한 생각들을 떠올렸다. 초보운전자 뒤를 따라가면서 '초보 때는 뒤에서 누가 빵빵거리면  당황했지.' 생각하며 인내심을 쥐어짰다. 어쩌다 좌회전이나 우회전 차선을 가로막고 있는 차량을 만나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생각하려 했다. 합류지점에서 길게 꼬리를 물고  있는 차량들 틈으로 얌체같이 새치기하는 차량조차도 '무슨 급한 일이 있나 보다.' 이해해보려 했다. 물론  안됐다. 마음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 때는 경적을 울려댔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추스른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앞차는 엄마 차다, 옆에서 끼어드려는 차는 언니 차다,  차에서 아빠가 지켜보고 있다, 등등 상상도 가지가지했다. 회사 근처에서는 혹시 모를 민망한 상황(예를 들면 상대 차량이 동료직원, 혹은 상급자가  차량일지도 모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경적 사용을 자제했다. 장거리 주행 시에는 빠른 템포의 음악을 피했다. 7 8기의 의지로, 나름 '바른 운전자'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정말 참기 힘든 상황이 있는데,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끼어드는 "불법 차선 변경 차량"이다. '사정이 있겠지.' 상상해보려 해도, 그런 상황이 납득될만한 사정이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도로 위, 운전자들이 지키기로 한 최소한의 약속을 어기고,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반복하는 운전자들에게 그것이 분명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 운전 철칙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끼어드려는 차량은 절대 양보해주지 않는다."이다. 똥고집을 부리다가 험한 욕을 듣기도 하고, 보복운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뜻을 굽힐 수 없었다. 단지 기분이 나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생명이 위협당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왕복 6차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신호가 켜지자, 나는 천천히 좌회전을 했다. 교차로를 지나, 편도 1차로에  들어서려는 찰나!! 모퉁이에 정차해있던 자동차  대가 불쑥 내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순간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하마터면 사고가  뻔했다. 경적을 울릴 틈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자동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저만치 가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뒤따라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앞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당시 도로는 왕복 2차로(편도 1차로)였다. 근처에 재래시장이 위치한 탓에 갓길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이 많았다. 앞 차 역시 갓길에 정차를 하려고 빈자리를 찾던 중, 적당한 공간을 발견하자 아무런 신호 없이 브레이크를 밟아버린 것이다. 뒤따라가던 나도 덩달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순간, 머리 뚜껑이 펑! 열렸다. 동시에 거의 반사적으로 내 손이 경적을 사정없이 눌렀다. 빠앙!!!!!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낯짝인지 확인을 해야 했다. 갓길에 정차를 마친 문제의 자동차 옆에 멈춰 섰다. 우측 창문을 내리고, 눈에  힘을 실어 사정없이 운전석을 쏘아봤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찌릿!!!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몹시 당황했다. 열린 운전석 창문으로 40대 후반 즈음 보이는 아주머니가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있었다. 분명, 미안하다는 의사 표시였다. 황당했다. 웃고 있는 얼굴이 지금 상황과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표정이 얼마나 해맑던지.... 쏘아보고 있던 내가 오히려 무안해졌다. 멋쩍은 마음으로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내 운전 경력 14년을 통틀어 가장 황당한 에피소드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궁금증이  가지 생겼다. 잘잘못을 떠나,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눈초리를 향해 어떻게 그토록 환한 웃음을 지을  있었을까? 지금도 아주머니의 속을 모르겠다. 다만, 그날 아주머니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아 두 번이 사고가  뻔한 일에 대해서, 깜빡이 켜는 일을 깜빡할 만큼 급한 사정이 있었겠거니 생각한다. 불법을 일삼는 난폭운전자가 아니라, 원래는 선한 사람일 거라 상상해본다. 그래야 아주머니의 얼굴을 설명할 수 있을  같다. 타인의 실수를 맹렬히 쏘아보던 눈초리를, 되려 미안하게 만든  해맑은 얼굴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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