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막내작가 Sep 23. 2020

덕분에 살았어요!

: 파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무실로 한 여자가 다급하게 뛰어 들어오더니, 내 책상 옆에 와 섰다. 여자의 숨이 아직도 가빴다.

 "죄송한데, 혹시 이거 출력 좀 할 수 있을까요?"

 내게 USB를 내밀고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네~ 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10부만 부탁드려요."

 잠시 후, 출입문 옆에 놓인 프린터기에서 출력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여자를 대신해, 나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출력물을 들고 돌아왔다.

 "여기....."

 "아, 네! 감사합니다. 혹시... 스템플러 좀 쓸 수 있을까요?"

 "네, 여기......"

 "감사합니다."

 여자는 간이 테이블 위에 출력물을 펼쳐놓고 페이지를 맞추기 시작했다. 대여섯 장의 출력물을 순서대로 묶어 10부를 만들어야 하는 듯 보였다. 아마도 추측컨대 회의시간은 임박했고, 회의자료 출력하는 것을 깜빡했거나 급하게 추가된 자료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건네주었던 스템플러를 다시 집어 들었다. 여자가 페이지를 맞추는 동안, 완성된 출력물을 스템플러로 찍었다. 찰칵! 찰칵! 10부를 완성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여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몇 차례 더 남기고 떠났다.

 여자의 신원을 모른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별 일이 아니었다. 회의 참석 차, 외부에서 온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급히 출력할 곳을 찾다가 회의실 맞은편에 위치한 우리 사무실로 들어왔고, 출입문에서 자리가 가까웠던 내가 당첨되었을 거라고.


 그 날 오후, 잠깐 자리를 비운 후 돌아왔을 때였다. 내 책상 위에 무언가 올려져 있었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하얀 종이 위에 두 줄로 적힌 작은 글씨들, 그 옆에 올려진 커다란 파이! 세상에나! 정체불명의 여자. 출력물. 스템플러. 후다닥. 그녀가 두고 간 것이다. 글씨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마침표. 덕분에 살았어요, 느낌표! 그러고선 내 하루의 안녕까지 빌어주다니! 그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은 파이가 커서, 파이가 맛있어 보여서가 아니었다. 나 때문에 누군가 '살았다'니,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별 일 아니었던 행동에 큰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쪽지가 마음에 쏙 들었다. 연필로 소박하게 적은 글씨체에 여자의 고운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두 줄의 문장과 파이가 놓인 구도도 왠지 마음에 들었다. 별 게 다 마음에 들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카메라에 담았다.


 4년 전 사진을 발견했다. 4년 전 누군가를 살렸다던 나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내 덕분에 누군가 '살았다!' 한 시름 덜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살펴본다. 내 코도 석자인 녀석이 누구를 살릴 수 있을까?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본다. 시름을 덜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안겨주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데... 나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걸까?

: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다.

: 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거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혹여 점심으로 먹은 김치찌개 국물이 입가에 묻어있진 않나 살펴보는 용도의 거울 말이다. 그런 거울을 지나치게 자주 들여다보면 과도한 자기애(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 같고, 입가에 뭐가 묻었든 개의치 않는 사람 역시 보기가 좋진 않다. 거울을 통해 내 흉을 발견하고 고칠 수 있는 정도의, 딱 그만큼의, 나를 평가해주는 타인의 시선이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때로는 무시해야 할 시선도 있고, 그런 시선들로부터 나를 지켜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말이다.

 되돌아보면, 직장생활을 하는 10여 년 동안 내가 사람들에게 받은 평가는 반반이었던 것 같다. 뒤에서 내리는 평가야 알 수 없으니, 앞에서 들은 평과 옆에서 엿들은 평을 합하여 극과 극으로 나눠보자면... 누군가에게는 싹수가 없었고, 누군가에게는 진국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큰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어떤 날은 소주 한 잔이 생각났고, 어떤 날에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가끔은 '그래, 내가 잘못했네.' 반성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나를 조금이라도 다듬을 수 있었던 계기들이었다.

 퇴직을 하자, 사람들을 만날 일이 확연히 줄었다. 자연스레 타인에 의해 평가를 받는 일도 줄었다. 더구나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원치 않아도 들리는 얘기들이 있었지만, 바깥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누가, 어디서, 누구에게 나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는지 알 방도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남편이 내려주는 평가에 90% 이상 의존한다. 그저 '오냐, 오냐.' 해주는 남편 덕에 버르장머리가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혹여 점심으로 먹은 김치찌개 국물이 입가에 묻어있진 않는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들여다볼 거울이 없어서, 휴지 한 장을 꺼내 들어 입가를 잘 닦아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향지시등을 켜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