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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Jul 25. 2022

혼자 남았습니다 / 고양이의 보은

: 타닥타닥 제주에서 4주 차

22일, 혼자 남았습니다


 남편이 육지에 갔다. 한 달간 마음 편히 쉬려고 내려온 제주에서, 먹고사는 일을 준비하느라 육지를 오간다. 벌써 두 번째 육지행이다. 짠하다. 그의 어깨가 자꾸 쳐진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무더위에 지쳐, 처진 어깨가 자꾸 쳐진다.

 제주도에서 산다는 게 뭔 줄 알아?

 일 보러 육지 나갔다 오는 일, 그게 진짜 제주도에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이지.

 그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 볼 심산으로 헛소리를 내뱉은 내게는, 3일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무얼 할까?

 청소년 시절 어쩌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딱히 할 일이 없는데도 신이 났다. 그가 나의 부모님이 아님에도, 온전히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에 무얼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들떴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철이 없을 수도 있구나.


 16년 전 내 허전함을 채워주던 서귀포시 동문로터리 떡볶이집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소시지를 튀겨서 넣은 김밥집(같이 포장해주는 김치가 그렇게 맛있었다)도 생각났다. 그러다... 그 시절의 젊은 내가 떠올랐다. 서귀포기상대 관사에서 혼자 살던 때, 젊은 나는 뭘 했지? 야근을 마치고 아침에 퇴근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냈다. 늦은 오후에 일어나 산책을 나가곤 했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틈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걸었지. 차를 몰고 중산간도로를 달리고, 가끔은 혼자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기도 했지.

 그 시절의 나를 만나 같이 놀고 싶어졌다. '젊은 나'를 만나 '늙은 내가' 밥도 사주고, 차도 마시고, 시간이 되면 한라산도 함께 올라가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제주에 내려오면서 한 가지 생각했던 게 있다.

 얌전히 있다 가자.

 만나면 무척 반가울 사람들과 보고 싶은 사람들이 떠올랐지만, 여행은 흔적 없이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SNS 프로필 사진에는 제주도 사진을 떡 하니 올려두었다. 프로필에 올려진 신도리 바닷가 돌고래 푯말 사진을 보고서 제주도에 사는 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지금 제주야?"

 첫 발령을 받아 제주도에 왔을 때에 엄마처럼 나를 데리고 다니며 도와주었던 고마운 지인과 또 다른 지인. 제주 토박이인 두 사람에게 신세를 많이 졌었다. 그 둘을 만났다. 두 사람 중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마지막으로 서로를 보았으니까.. 10년도 넘었다.


 그런데 어쩜 이리도 똑같을까.

 변한 게 있다면, 우리들의 몸무게와 어느새 딸 둘 아들 둘의 엄마가 되어 있는 그녀들, 또... 한 지인의 쌍꺼풀이었다. 쌍꺼풀 수술을 한 지 6일 차에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얼굴로, 냉찜질을 해야 할 시간에 나를 만나러 나와준 동생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하하하. 

 오랜만이었다. 아무런 꾸밈없이 웃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 각자의 이유로 고단하고 힘든 삶이,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함께 나누는 동안에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마법을 경험한다. 그렇게 한바탕 웃어넘기고 나면, 삶의 고단함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그 좋은 시간이 참 짧게 느껴져 아쉬웠다.

 장래희망이 작가여서, 내게 무언가 궁금한 게 있었던 듯한 지인의 첫째 딸에게 '미안하다. 이모는 아직 작가가 아니고 6년째 작가 지망생이야.' 양해를 구하면서, 우리의 다음 만남은 '언제가 될지 모를 나의 작가 등단 이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두 동생들의 퇴직 이후가 되지 않을까. 혹은 지금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또 각자의 자리에서 내일을 살아갈 거다.

22일 차에는 제주도에 강풍특보가 내려졌다. 파도가 뒤집힌다. 다행히도 비행기는 끄떡없이 뜨고, 날고, 착륙했다.


23일, 고양이의 보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여는 소리에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밖에서 야옹야옹 운다. 앞 동 지붕 아래 사는 그녀다. 오늘은 야옹야옹 소리를 들으며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고 너스레를 떨다가 뒤늦게 현관문을 열었다.

 야옹! 야옹! 반갑다옹! 잘잤다냥?

 고양이와 인사를 하고, 마당을 둘러보다가... 

 헉!! 저게 뭐다냥?!!!!!


★ 주의: 임산부와 노약자, 비위나 심신이 약하신 분은 아래 사진을 빠르게 지나치세요!


 내가 잡아왔다냥! 먹어 보라냥!

 하아...


 고양이의 보은을 처음 받았던 건, 대략 10여 년 전 즈음이다.

 새끼 고양이들을 키우는 어미 고양이였는데, 어느 날 우리 집 계단 위에서 마주쳤다. 화들짝 놀라 새끼들을 화분 뒤로 숨기기 바쁘던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워서 계단 위에 먹이를 두어 번 놓아두었다. 사람을 많이 경계하는 고양이라, 먹이를 놓고 가면 잠시 후에 새끼들과 함께 나타나 먹이를 먹고 갔다.

 그런데 며칠 후 아침, 먹이를 주던 그 계단 위에 죽은 쥐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누가 봐도 보란 듯이 계단 한가운데 떡 하니...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괘씸한 고양이! 먹이까지 챙겨줬는데 이런 걸 갖다 놓다니!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들어 담벼락 너머 풀숲으로 던졌다. 자신의 선물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을까? 고양이는 다음날 또 다른 쥐를 잡아다 놓아두었다. 그것이 고양이가 내게 주는 선물이란 걸 알게 된 건 한참 후였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심심해서 잡아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그 쥐들이 고양이의 보은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양이가 기특했다.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생생한 쥐 시체를 목격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야옹아, 난 저런 거 안 먹어. 이제 잡아오지 마."

 고양이가 알아들으려나 말려나 알 수는 없지만, 한참 동안 반복해서 얘기했다. 

 "야옹아, 저것도 네가 도로 가져가."

 돌아서서 현관문 안으로 사라지는 나를 향해 고양이가 계속 야옹거렸다. 마치 선물을 가져가라고 재촉하는 듯.

 집게와 비닐과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왔다. 기온도, 습도도 높은 여름이니까 서둘러 치우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야옹아, 이런 거 가져오지 마! 나 이런 거 싫어해."

 쓰레기봉투에 정성스레(?) 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니, 고양이는 내가 그녀의 선물을 감사히 받았다고 여길까?


 야옹아, 나는 우리 관계가 조금 더 쿨했으면 좋겠다. 주고받는 관계 말고, 계산 없이 순수하게. 응?


고양이는 저 현관문과 지붕 사이 틈에서 산다. 매일 아침 저곳에서 자다가 막 일어난 모습으로 내려온다.


24일, 어느새 단짝


 어느 TV 드라마 장면에 내가 머물고 있는 신창리 해안도로가 나왔다.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비주얼의 남자 주인공이 혼자서 차를 몰고 신창 해안도로를 달린다. 독백이 이어진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다. 

 '네가 없으니 이 아름다운 바다도 석양도 지겹다!'

 나도 그렇다. 네가 없으니, 이 아름다운 제주도, 바다도, 하늘도 심심하다.

 어느새 너와 나는 단짝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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