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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Nov 23. 2022

매듭

 아빠와의 마지막 식사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은, 인사발령을 받은 막내딸의 관사에서 한밤중 짐을 나르고 있었다. 힘들고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맘때 즈음 아빠는 바빴고, 아빠의 막내딸은 철이 없었다. 아빠는 과수원 일 이외에도 마을 이장이라서, 감나무 작목반이라서, 축협 회원이라서 바빴다. 아빠의 막내딸은 일이 바쁘다고, 데이트를 한다고, 친구들과 논다고, 푹 쉬고 싶다는 핑계로 아빠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그 근래 어느 날엔가는 아빠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함께 밥을 먹었을 텐데. 분명 그런 날이 있었을 텐데 또렷하게 기억나는 날이 없다. 아빠와 밥 먹는 일은 너무도 평범해서 딱히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소중하고 기적 같은 순간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냈기 때문일 거다. 당연하고 당연해서 인지조차 하지 못한 어느 날이 내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내가 붙잡고 있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지난여름 이사를 하고서 엄마 집이 가까워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두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절반이 줄었다. 며칠 전 문득 엄마랑 점심을 같이 먹고 싶어서, 냅다 차를 몰고 달려갔다.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늘을 까고 있다는 엄마에게 점심 메뉴를 물었다.

 점심은 뭐 먹을 거야?

 오리탕 끓여놓은 거 있어서, 그거에 먹으려고.

 우와! 오리탕 끓였어?

 너는 뭐해?

 나는 열심히 달리고 있지!

 응, 조심해!

 엄마랑 점심을 먹으려고 열심히 차를 몰고 달려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막내딸이 운동삼아 달리기를 하고 있나 보다 했단다. 한 시간 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엄마가 놀란다.

 응? 아야! 네가 왜 들어오냐?!

 

 엄마랑 마주 앉아 따뜻한 오리탕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점심을 먹으며 엄마와 주고받은 이야기라고는 맛있네, 왜 갑자기 오리탕 끓일 생각을 했대?, 잘 끓였네 정도가 전부였다. 평범한 시간, 아니 평범해 보이는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서 별 거 아닌 이 날을 마음속에 매듭지어 놓는다. 지을 수 있는 매듭들이 이후로도 수없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의 아슬아슬함 사이를 지나간다. '언젠가'의 나는 이 기억의 매듭들을 하나씩 붙잡아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기에. 이 기억의 매듭들을 하나씩 붙잡고 시간을 거슬러 올 것이기에. 최대한 정성껏, 자주, 또렷하게 마음속에 붙잡아두려 애를 쓴다. 

  

 당신은, 보고 싶은 사람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아직 없다면 참 다행이다. 당신에게는 바로 오늘,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참 다행이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 선물 같은 시간이 아직 당신에게 주어졌으니 참 다행이다.


 내일 하루가 기이한 날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내일, 이 글이 브런치 메인과 포털사이트에 노출되어 조회 수가 5만이 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보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당장 달려가면 좋겠다. 갑자기 너도나도 회사에 연차를 쓰고, 가게마다 문 앞에 '오늘 하루 쉼' 메모가 걸리고, 평일인데도 고속도로에 교통정체가 생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달려가는 그 길이 무사하길, 당신의 하루에 결코 잊지 못할 따뜻하고 단단한 매듭이 지어지기를 바라겠다.


 만약 당신이 '나도 아는데, 바빠서 나중에.'라고 한다면, 당신에게 감히 묻겠다. 당신에게 '나중'이 있을 거라고 어떻게 그리도 당연하게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정말 시간을 낼 수 없는 당신에게, 정말 상황이 여의치 않은 당신에게... '나중'이 아주 오래도록 허락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혹여 당신이 이미 달려갈 곳을 잃었다면, 나는 그저 당신을 꼬옥 안고 하릴없이 당신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당신의 그리움을, 당신의 슬픔을, 나와 같을 당신의 마음을 함께 견뎌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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