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창 씨의 막내딸 편> 2.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가장 먼저 당신의 투박한 손이 떠오릅니다. 거칠고 마디가 굵은 손을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풍족한 살림이 아니었습니다. 외식은 물론이고 군것질거리도 많지 않았지요. 그래서 당신이 가끔 만들어주는 간식은 참 특별했습니다. 당신의 손은 요술방망이처럼 멋진 간식을 뚝딱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냄비 안에서 이제 막 쪄낸 말랑말랑한 쥐포를 당신이 꺼내 들 때면, 쥐포의 감칠맛 나는 냄새가 온 방 안으로 퍼졌습니다. 나는 입안에 고이는 침을 꼴깍 삼키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당신의 두 손에 집중했습니다. 냄비에 물을 넣고 채반을 얹어 쥐포를 살짝 찌면, 쥐포는 물기를 머금어 약간 도톰해집니다. 먹기 좋게 말랑말랑 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구웠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윤기와 쫀득함이 생깁니다.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들처럼 당신만 바라보고 있는 언니와 내게, 당신은 열 손가락으로 쥐포 살을 먹기 좋게 찢어주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냄비 안에는 알이 꽉 찬 굵은 밤들이 채반 위에 얹어졌습니다. 밤이 푹 익으면, 당신은 손놀림이 서툰 어린 자식들을 위해 뜨거운 밤을 반으로 가른 후, 노란 속살을 찻숟가락으로 긁어내 밥그릇에 담아주었습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당신의 손은 늘 바빴습니다. 과일을 쓱쓱 깎아 언니와 내 입에 넣어주고, 열 손가락으로 생선의 가시를 정성껏 발라주었습니다. 말 그대로 당신의 손이 나를 먹여 살렸습니다.
언니와 나는 토실토실 살이 쪄갔습니다. 수많은 계절을 보내며 키가 훌쩍 자랐고, 세상에는 찐 쥐포나 밤보다 더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하나 둘 보일 무렵, 우리 가족은 가끔씩 외식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외식이라고 해봐야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값비싼 고깃집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어느 모임에 나가 먹어본 짜장면이나 국밥이 맛있어서, 기어이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다시 찾은 식당들이었습니다. 당신이 가족들에게 꼭 먹이고 싶을 만큼 맛있다고 여겼을 음식들은 참으로 소박한 것들이어서, 그것들을 떠올리면 나는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그날의 콩나물 해장국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모처럼의 외식이었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며 당신이 데리고 간 어느 조그마한 식당,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 가족은 콩나물 해장국 4개를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 눈앞에 놓인 콩나물 해장국에 나는 실망했습니다. 국은 뜨겁게 끓어오르려다 만 것처럼 미지근했습니다. 마치, 아침에 한솥 끓여놓은 국을 손님상에 다시 데워내기가 귀찮아, 그대로 대충 한 그릇 떠 온 것 같았습니다. 해장국의 맛을 설명하자면, 물에 매운 고춧가루를 풀고 콩나물을 한 줌 얹은 뒤, 화학조미료만 잔뜩 넣은 맛이었습니다. 내가 숟가락을 국그릇에 몇 번 담그는 시늉을 하는 동안, 당신은 내 맞은편에서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가며 콩나물 해장국을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그날 나는 열일곱의 나이에 난생처음으로 당신이 측은해 보였습니다. 형편없는 콩나물 해장국에 화가 났고, 그런 콩나물 해장국을 맛있게 먹던 당신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멍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가슴 아프게 기억되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날의 모습이 지금도 문득문득 괜스레 떠오릅니다. 그때마다 퍼렇게 멍이 올라온 살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꾹 누르듯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
잊고 있던 당신의 투박한 손이 못 견디게 그리워진 건, 몇 해 전 결혼식이었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가야 했을 결혼식장을, 나는 당신의 손자, 열두 살 내 조카의 손을 잡고 갔습니다. 조카의 작은 손을 붙잡고 서른 걸음 남짓을 걸어가는 동안, 이제는 두 번 다시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당신의 부재는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아름다웠을 자리에, 가장 슬프게 와 닿았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 오면, 나는 당신의 투박한 두 손을 꼬옥 잡겠습니다. 나를 먹여 살려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토닥거려준, 내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당신의 손을 오랫동안 잡아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