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창 씨의 막내딸 편> 3.
당신이 외출 준비를 할 때면, 나는 재빨리 당신의 오토바이에 올라타 앉았습니다. 혹여, 나를 데리고 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던 거지요. 껌딱지처럼 당신을 따라다니는 일은 일곱 살 나의 가장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당신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달리던 날들을 떠올립니다. 오토바이의 탄탄한 흉곽과도 같던 그 자리는 (금속 재질이라;;) 무척 뜨겁기도 했고, 무척 차갑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앉아 있던 어떤 날의 기억에는 오토바이의 배기가스 냄새가 나고, 어떤 날의 기억에는 우두두두! 오토바이의 심장이 뛰는 진동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얼마 전, 운전대를 잡고 정지신호에 멈춰 서 있을 때였습니다. 오토바이 한 대가 커다란 엔진 소리를 내며 옆 차선으로 들어왔습니다.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봤습니다. 오토바이 위에는 헬멧을 쓴 남자 뒤로 여덟, 아홉 살 남짓으로 보이는 아이 둘이 타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등에 차례대로 붙어 앉아 서로의 허리춤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오토바이였습니다. 무언가를 배달하기 위해 물건을 싣고 달리는 오토바이야 하루에도 수없이 보지만, 아이들을 태운 오토바이는 오랜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언니와 내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줏빛 오토바이가 생각났습니다.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우리는 당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계곡으로, 바다로, 산으로 놀러 다녔습니다. 당신의 등 뒤에는 언니와 엄마가 앉았고, 나는 당신의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조그만 오토바이에 네 식구가 올라타 앉았으니 얼마나 위태로웠을까 싶지만, 그때는 자줏빛 오토바이가 참 듬직했습니다. 그 시절의 당신처럼 젊고 튼튼했습니다. 전국 어디든 못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 추억에는 오토바이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다 자줏빛 오토바이가 기억에서 사라진 게 정확히 언제 즈음이었지는 모르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와 나는 중·고등학생이 되었고, 우리 자매는 사춘기 아이들답게 굴었습니다. 당신을 따라다니는 일이 드물어졌고, 당연한 결과로 그 무렵 당신과의 추억은 뜸합니다. 그럼에도 그 시절 어느 여름밤의 추억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당신과의 추억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습니다.
무더위에 잠을 쉬이 이룰 수 없었던 어느 여름밤이었습니다. 한밤중에 돗자리 하나 집어 들고서, 집 근처 도립공원 산 중턱까지 올라갔습니다. 언니와 나, 그리고 당신은 돗자리 위에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목격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어.. 어!" 소리를 지르려는데, 손가락을 들어 밤하늘을 가리키기도 전에 별똥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날 밤, 하늘에서는 신기하게도 별똥별이 떨어지고 또 떨어졌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뉴스나 신문을 통해 별똥별이 떨어진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서 우리를 데려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런 것이었는지, 당신이 살아 있을 때 한 번쯤 물어볼 걸 그랬습니다. 그랬다면, 당신도 분명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겠지요? 그 아름다운 밤을 어떻게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깜깜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반짝이던 별똥별 아래에서 당신과 두 딸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여름밤을 말입니다.
햇볕은 아직 뜨거운 여름인데, 공기는 벌써 선선한 가을입니다.
당신이 떠난 지 11년이 지났습니다. 그리움은 시간 시간 사이를 참 잔인하게 파고들지만......, 당신이 채워주고 간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내 밤하늘에서 별들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고단한 어느 날에 그것들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웃습니다. 눈물이 흐를 때도 있습니다. 반짝이는 추억들은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는지 잊지 않게 해주는 증거이고, 또 당신이라는 존재가 내 곁에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막내야~ 사랑한다."
그대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거리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