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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Sep 29. 2020

사랑한다는 말

<사춘기 조카 편> 2.

 내게는 두 명의 조카가 있다.

 세 살 터울의 남매인데, 둘째는 이미 소개된 바(쌍둥이의 탄생 편) 있는 여자 아이다.

 그리고 첫째 조카, 올 해로 중학교 2학년인 남자아이가 있다.




 첫째 조카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사랑한다는 말을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하는 아이."

 덧붙일 수 있는 설명으로는,

  : 2년 전까지만 해도, 못 말리는 개구쟁이 초딩이었고,

  :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이모가 정말 제 또래 친구인 줄 알았던 녀석.

  : 미래 꿈이 너무 많아서 월, 화, 수, 목, 금요일 돌아가며 직업을 바꾸겠다던 아이였지만, 

  : 사춘기가 되면서 모든 의욕을 상실한 듯 보이고,

  : "나는 안 먹어."라고 말하고서, 항상 엄청나게 먹는 녀석.

  : 기저귀 차고 나를 쫓아다니던 녀석이, 지금은 나보다 키가 더 커버렸고,

  : 제 동생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동생의 시종을 드는 중2 오빠, 등이 있다.


 아이의 능력을 처음 발견한 것은 4살 때였다.

 어느 날, 언니(그러니까, 첫째 조카에게는 엄마가 되는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깔깔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 조카는 한창 말이 늘던 때였는데, 엉뚱한 말들로 주위 사람들을 폭소케 만들곤 했었다. 이번에도 이야기를 듣자 하니, 언니의 웃음소리가 이해된다.


 [언니] : 00야, 엄마가 사랑해.

 [조카] : 나도 사랑해.

 [언니] : 얼마만큼 사랑해?

 [조카] : 음...... 트랙터만큼 사랑해!


 첫째 조카의 모든 관심이 자동차에 있던 시절이었다. TV에서 인기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향해 일일이 손가락질해대는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 중에서도 특히 특수차나 중장비차가 지나가면 좋아서 펄쩍펄쩍...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그런 녀석에게 시골 할아버지 집에서 본 트랙터는 사랑 그 자체였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번쩍 안아 올려 트랙터 의자에 앉혀주던 날부터이지 싶다. 조카는 세상에서 트랙터를 제일 사랑했다. 하필 그 시기에 엄마를 얼마만큼 사랑하냐는 질문을 던졌으니, 하늘만큼 땅만큼을 기대했던 언니는 트랙터만큼이란 대답을 들었야 했다.

 '응? 이거 좋은 거지?'

 곧이어 우리는 난리가 났다. 사랑의 크기를 어떻게 트랙터에 비교할 수 있느냐고, 천재인 것 같다고!


트랙터만큼 엄마를 사랑한다던 첫째 조카의 여섯 살 시절 작품


 사랑의 크기를 세상에 유일무이한 표현으로 비유하던 첫째 조카는, 사랑한다는 말을 유독 잘했다.

 작은 몸을 꼭 껴안아줄 때마다, 이모에게 비싼 장난감을 삥 뜯은 날에도(ㅡ_ㅡ;), 학교 앞 교문을 들어서면서, 워터파크 슬라이드를 막 미끄러져 내려가는 순간에도...

 "이모 사랑해!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야, 사랑해! 으악!!!!!!!!" 

 이상하게도 첫째 조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면,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아이가 날 사랑해주고 있구나 하는 믿음 같은 게 느껴진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나는 감히 확신한다미사여구 없이 "사랑해"라는 한 마디를 이토록 진솔하게, 이토록 덤덤하게, 아무 꾸밈없는 한 단어에 마음을 온전히 실어 내뱉는 사람을 나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갓난아기였던 첫째 조카는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심장판막질환 판명을 받았었다.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심장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젖을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젖을 빨다 말고 힘없이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갓난아기를 보면서 온 가족이 속을 태웠다. 고민 끝에 젖병 대신 숟가락으로 떠 먹이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숟가락을 일찍 텄다. 제 몸이 안 좋으니, 짜증도 많았고 잠투정도 심했다. 감기에 걸려 열이 조금이라도 나는 날에는 해열제와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열이 나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너무 어려서 수술을 하지 못하니, 4살이 되는 해에 수술을 하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언니는 울었다. 그 어린 가슴에 어떻게 칼을 대냐고. 아이가 자라면서 다른 엄마들이 조기교육을 생각하던 시기에 언니는 그저 조카가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랬다.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기도했다. 첫째 조카가 4살이 되던 해에 심장판막이 정상적으로 닫혔다. 간혹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정말 감사했다. 언니의 바람대로 올해 중2인 첫째 조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공부가 뭐람?' 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마법 같은 선물을 나눠주는 멋진 아이가 되었다.

 "사랑해."

 

 조카는 중2, 사춘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는 지금도 기운이 빠지는 날이면, 첫째 조카에게 전화를 건다. 보통은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있느라 곧바로 받는 법이 없지만, 이내 전화가 다시 온다.

 "어, 이모 왜?"

 "심심해서." 혹은 "뭐해?"

 늘 이렇게 시작되는 대화는, 또 늘 이렇게 끝난다.

 "이모, 사랑해!"

 "응 이모도 우리 ♡♡,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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