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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Aug 27. 2020

쌍둥이의 탄생

<사춘기 조카 편> 1.

 "이모! 이모는 몇 살이야?"

 다섯 살 조카가 물었다.

 "이모? 이모는 서른다섯 살이야."

 "응??"

 조카의 눈, 코, 입이 모조리 커졌다.

 "다섯 살?! 나랑 똑같네?!"

 이번에는 내 눈, 코, 입이 커졌다.

 "으응? 그.. 런가? 그렇네. 너는 다섯 살, 이모는 서른다섯 살. 둘 다 다섯 살이네?"

 "그럼, 우리 쌍둥이네?!!"


 다섯 살 조카와 서른다섯 살의 나는 그렇게 쌍둥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진짜 쌍둥이처럼 서로 없으면 안 되는, 죽고 못 사는 사이였다.


 "쌍둥이~ 언제 와? 보고 싶어."

 "쌍둥이~ 지금 나랑 통화해줄 수 있어?"

 "쌍둥이~ 오늘 학교에서 (어쩌고 저쩌고)..."

 결혼 후, 타 도시에 살고 있는 내게 조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쌍둥이 조카의 전화를 놓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재잘대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에게 세대차이라는 것은 없었고 취향도 비슷했다. 소위 말하는 찰떡궁합이었다. 서로의 스케줄에 대해서도 가족들 중, 제일 잘 알았다. 동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붙어다니기로 유명한 조카와 이모였고, 조카의 어린이집 선생님도 내 존재를 궁금해할 정도로 나는 조카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그 작은 아이가 날 그렇게 소중히 여겨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조카가 초등학생이 되고 제 또래의 친구들이 생겨도 여전히 조카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였다. 그러니까 딱 6개월 전까지만 그랬다.


 나보다 30년 늦게 태어난 쌍둥이는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이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빠른 '요즘 아이들'이더니, 사춘기도 빨리 시작했다. 작년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부터 조카에게서 걸려오는 전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올여름이 시작될 즈음부터는 내가 먼저 전화를 걸지 않으면 조카와 하루에 한 번 통화하기도 힘들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느껴졌다. 코로나 19로 인해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한 탓이겠거니 생각했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조카를 만났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와 키가 거의 비슷할 것 같은 사춘기 조카가 씨익 웃고 있었다. 훌쩍 자란 키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의 키만큼,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온몸을 던져 내게 안기거나, 보고 싶었다며 작은 체구로 나를 꼬옥 안아주던 쌍둥이는 없었다. 조그마한 고사리 손을 꼼지락거리며 색종이를 접고 놀던 조카는, 더 이상 색종이 따위 가지고 놀지 않았다. 색종이를 떼고, 클레이를 떼고, 슬라임을 뗐다. 어느덧 화장품을 가지고 놀았다. 내가 집에 와 있을 때면 친구들과의 약속도 모조리 취소하던 조카였는데, 이번에는 얄짤없이 친구들과 놀고 오겠다며 나를 집에 남겨두고 나갔다. 제 방에 들어갈 때에도 방문을 꼬박꼬박 닫고, 친구들과는 깔깔깔 거리는 녀석이 가족들 앞에서는 새침해 있는 것이...... 여지없이 사춘기였다. 말을 걸어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대답하기 일쑤였다. 분명 조카가 눈앞에 있는데, 내가 알던 쌍둥이는 없었다.


 나로서는 가장 친한 단짝 친구를 잃은 기분이었다.

 "쌍둥이, 이거 생각나? 일곱 살 때 생일이었잖아."

 외장하드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더니, 이어지는 조카의 대답이 대단했다.

 "에이~ 이건 너무 옛날 사진이다."

 고작 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 옛날 사진이라니......

 사춘기 조카의 변화를 머리로는 알겠으나,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가 쌍둥이가 되던 그때부터 나는 줄곧 같은 자리에 서 있는데, 아이는 성큼성큼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조카에게 다가가는 길은 이제 없어 보였다. 초콜릿 과자 한 봉지만으로도 조카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시절은 끝났다. 문득 다섯 살의 쌍둥이가, 일곱 살의 쌍둥이가 눈물 나게 그리웠다.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네.'

 말 그대로 옛날이 되어버린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섭섭한 마음이 절로 중얼거려졌다.


 기적 같은 일은 며칠 후에 일어났다.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한밤중에 혼자 깨어 있던 조카가 문득 무서웠는지, 자고 있는 나를 가만히 깨웠다. 잠결에 조카를 침대에 올라오게 했다. 둘이서 좁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소곤소곤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까르르르 쌍둥이가 웃었다. 재잘재잘 쌍둥이가 떠들었다. 그 웃음소리가, 재잘거림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정말 오랜만에 조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날 사춘기 조카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눈을 맞추며 얘기하고, 크게 웃었다. 예전처럼 장난을 걸어오고, 관심거리를 내게 보여주었다. 친구들과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자기 방으로 나를 자주 초대했다. 밤을 새워 놀다가, 새벽에 함께 계란말이를 해 먹었다. 조금씩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마지막 날, 새벽에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잠들어 있는 조카를 살폈다. 잠버릇은 여전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 침대에서 곧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번쩍 안아 반듯하게 눕히기에는 조카가 너무 무거워졌다. 어쩔 수 없이 조카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쌍둥이~~ 쌍둥이~~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와."

 곤히 자고 있던 조카가 내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아직 꿈속과 현실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눈빛이었다. 잠에 취해 허공을 맴돌던 눈빛이 나를 발견하더니 활짝 웃어 보이는 순간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조카의 얼굴에서 나는 다섯 살 쌍둥이의 얼굴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너, 여기 있었구나.'


 열두 살 조카 안에는 여전히 다섯 살, 일곱 살의 쌍둥이가 있었다. 까르르 잘 웃고, 재잘거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장난꾸러기에, 사랑이 많은 아이다. 문득,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춘기라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변화 앞에서 가장 당황스러웠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아이 자신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새침한 모습 속에 숨어버린 걸 수도 있다. 그 혼란스러운 마음을 먼저 살펴주지 못하고 그저 섭섭하게만 생각했던 것이 못내 미안해졌다.

 섭섭해하던 마음들을 털어냈다. 대신 묵묵히 지켜봐 주고 변함없이 사랑해주겠단 다짐을 채워 는다. 내면으로 골똘히 들어가 앉아 자기만의 세계를 열심히 구축하고 있을 쌍둥이의 사춘기를 응원해주기로 한다. 그게 30살이  많은 쌍둥이가   있는 가장 좋은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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