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딴짓을 합니다.

<자의적 퇴직공무원> 14.

by 이막내작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보고자 기상청을 나온 지, 1583일. 아직 글이 업이 되지 못했다. 공모전에 한 번씩 얼굴을 내비친 이후 꽁꽁 숨어버린 5편의 설익은 단편소설과 1편의 동화, 그밖에 아직 끝을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노트북에 쌓여가는 지난 4년 4개월 동안, 나는 틈틈이 딴짓을 했다. 그때마다 우연히 봄이었고, 이러다가 '봄에는 으레 딴짓을 해야 하나 보다.'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긴 하다.


딴짓을 할 때마다 꺼내놓는 글귀가 있다. 마치 방문 앞에 걸어놓은 '잠시, 외출 중'이란 푯말처럼. 혹은 딴짓을 하는 동안에도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정표이자, 또... 위로이기도 하다.

"몇 번을 다른 길로 돌아갔어도,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중에 나오는 이 구절을 붙잡고 있는 동안, 나는 조금은 안심한 채 딴짓을 한다.


첫 번째 딴짓은 2019년 봄이었다.

뜻밖의 인연을 시작으로, 어느 청소년 합창단에서 준비 중인 창작 칸타타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4개월 동안 약 10개의 노래를 하나의 스토리로 잇기 위한 작업이었다. 2시간씩, 총 6번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칸타타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에 맞게 10곡의 노래에 가사를 지어 넣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아이들에게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위해 썼다. 아이들이 쏟아낸 다양한 이야기들을 고르고 엮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완성된 결과물이 조금 유치하긴 했지만, 우리가 만든 이야기와 가사가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 오를지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2020년 크리스마스 공연이 목표였던 칸타타는 아쉽게도 코로나 19로 인해 준비하던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더불어, 그 만남을 계기로 나에게 글쓰기 동지가 생겼다.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중2 여자아이인데, 장편 분량의 판타지 소설을 뚝딱 써내는 힘을 가졌다. 그렇게 완성된 글을 가끔 내게 보내준다. 올해도, 어느새 고1이 된 아이의 글 한 편을 받아보았다.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나는 그저 놀랍다. 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나보다 한참 어린, 내 동지의 미래가 진심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 딴짓은 2020년 봄이었는데, 정말 '딴짓'에 가까웠다.

그 해, 그러니까 작년, 엄마의 70세 생신을 기념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유럽여행을, 더 늦기 전에 실행하고 싶었다.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로 비행기 표를 미리 예매하고 나니, 여행을 가기 전까지 남은 6개월 동안 딴짓을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무슨 고집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의 돈이 아닌 내가 번 돈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때마침 내 마지막 근무지에서 7~8개월 동안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가 왔다. 참 시의적절한 기회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유를 불문하고, 돌아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고마운 기회를 고사하고 결국, 진짜 딴짓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편이 미리 내준 비행기 값과 앞으로 들어갈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다. 글 쓰기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고심 끝에 고른 것이 홈쇼핑 고객센터 파트타임 5시간 알바였다. 비교적 일복이 많은 편이었던 나는, 하필이면 골라도 판매 1위 홈쇼핑을 골랐다. 2주 간의 교육을 마치고 하루 5시간씩 목이 찢어져라 전화를 받았다. 그곳에서 새삼, 세상에는 참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는 걸 배웠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하루 걸러 하루, 목소리들이 날아와 내 뺨을 때리고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알바 후유증으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서워졌다.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은 목소리도 있지만, 코로나 19 같은 목소리도 있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해야 했다. 말을 할 때마다 입안에서 못생긴 두꺼비가 튀어나올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의외로 수다쟁이들도 많았다. 어느 아주머니와의 통화는 30분을 훌쩍 넘겼다.

"체리가 얼마나 맛있어요~ 우리 아저씨랑 나는 체리를 정말 좋아하는데, 체리 얘기만 해도 아유~!! 지금도 맛있는 침이 입안에 고여요!"

당초 계획했던 5개월 알바는 4개월 만에 끝났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면서 여행 목적지였던 국가의 입국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의 여행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알바가 끝난 후 약 4kg 감량이라는 뜻밖의 성과를 거뒀다. 진상 고객들 때문에 밥맛을 자주 잃어서였다.


올봄에도 나는 세 번째 딴짓을 시작했다. '올봄에도 딴짓을 해볼까?' 작정을 한 건 아니다. 올 초, 보고서 작성에 관한 짧은 강의가 계기가 되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어쩌다 보니 딴짓을 또 시작했다. 이번에는, 딴짓을 하면서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물론, 아직은 시간 분배에 시행착오를 거치는 중이다.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해진다면 가능한 일이다.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 다른 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의미에서 '딴짓'이라 생각했다. 딴짓 덕분에 생각하게 되는 것들도 참 많지만, 가끔은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날이 있다. 성큼성큼 내딛던 발걸음이 갈 길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을 때가 있다. 하지만, 몇 번을 다른 길로 돌아가도 별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한 곳을 향해 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딴짓을 하게 된 나름의 이유들이 있지만, 글에 진심인 마음만큼은 조금도 딴마음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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