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퇴직공무원> 13.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사진: 2014년, TED(Technology, Entertainmant and Design) 강연, 캐럴 드웩(Carol Dweck)
얼마 전, 강의를 제안받았다. 옛 동료의 지인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석사과정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연구 논문, 보고서 작성 방법에 관한 온라인 교육이었다. 총 5시간으로 구성된 강의는 주로 논문과 보고서의 내용을 다루는데, '내용을 담는 틀'에 대한 강의를 짧게 추가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하여 내게 주어진 주제는 어문에 맞는 글쓰기였다. 제안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글쓰기를 전공하지 않은 내가 강의를 맡아도 될지였다. 솔직하게 내 생각을 얘기하니, 연구보고서의 비문(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소개하는 정도면 된다는 답변이 왔다. 이공계 출신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 끝에 제안에 응했다. 10년 넘게 공문서와 보고서를 읽고 써온 경험을 붙잡아보기로 했다. 어쨌거나 퇴직을 하고서도 지난 4년 동안 매일같이 밥 먹고 한 일이 문장을 쓰고 다듬는 일이었으니까,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곧장 강의 준비를 했다.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대학교 시절에 일반선택 과목으로 들은 「국어학의 이해」, 「한글 맞춤법 교육」 책을 다시 읽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그사이 바뀐 내용들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음은 국립국어원에서 배포된 자료들을 보이는 대로 뒤적였다. 어찌어찌하여 강의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이제 예문으로 사용할 문장을 찾아야 했는데, 운 좋게 실제 대학원생들이 작성한 연구 보고서 초안 3편을 구했다. 보고서를 읽으며 눈에 띄는 비문들을 찾아 나섰다. 쓸만한 예문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도 하면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초안이라 하지만, 비문이 이렇게 많다고?!
주어와 서술어, 목적어와 서술어 간의 호응이 맞지 않은 문장, 심지어 주어가 빠진 문장, 능동과 피동이 잘못 쓰인 문장, 조사와 어미를 과하게 생략하여 뜻이 모호해지는 문장들, 불필요하게 중복된 표현들이 장신구처럼 여기저기 붙은 문장들...... 이 문장들을 석사과정 학생들이 쓴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쿠부치 사막은 한국의 주된 황사 발원지이며...」 문장대로라면 쿠부치 사막은 한국에 있어야 한다. 정작 이 문장이 하고 싶은 말은 "쿠부치 사막은 한국에 영향을 주는 주된 황사 발원지"라는 얘기였다. 혹은, "자연환경이 여러 요인들로 인해 심각한 고비를 맞이했다."는 얘기를 「자연환경은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서 심각한 고비를 맞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경향을 보였다."로 쓰면 간단한 문제를 「경향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끝맺음에 긴 꼬리를 달아놓은 경우, 또 이런 표현,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은 여러 개 중의 단 하나를 강조할 때 쓰는 수식어 '가장'의 역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문법적으로 분명하게 틀린 문장도 있었고, 아닌 경우도 있었다. 비문은 아니지만, 읽고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문장들도 잡아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몇 시간째 내 한숨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아직 많이 써보지 않아서 그래. 자꾸 쓰다 보면 좋아져."
석사과정 학생들의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이다. 문득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단언컨대 나의 20대 초·중반은 그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엉망이었다. 내 대학시절은 가장 형편없었고, 미팅이라면 삼삼오오 남녀가 만나는 것만 알던 시절, "오늘 연구실 미팅이 있다."는 선배의 말에 연구실 사람들끼리 단체로 나가는 미팅이라고 오해를 했다. 대학교 3학년 때 학과에서 학부로 바뀌면서 생식 세포학 연구실에 배정이 되었는데, 연구실에 대한 기억은 짧다. 아침 일찍 선배들이 도축장에서 가져온 돼지 난소에 주삿바늘을 꽂아 난자를 채취하면서 "직업군인 하고는 결혼하지 말라."는 남자 선배들의 조언 아닌 조언을 들었던 것이 유일하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을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 판단하는 무례를 범하고 있다. 그들이 연구에 쏟은 노력과 지식과 열정과 성실함은 생각하지 않은 채. 내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작성했던 수많은 공문서들과 몇 권의 기술 노트도 지금 펼쳐보면 비문투성이일 텐데.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 역시, 써놓고 돌아서면 부끄러워지는 것을. 조금 전 한숨을 쉬던 내가 거만한 개구리 같았다. 올챙이들을 바라보며 비웃는 개구리, 혹은 아기 백조를 못생겼다고 놀리는 오리 같았다.
2014년, TED(Technology, Entertainmant and Design) 강연에 미국 심리학 교수 캐럴 드웩(Carol Dweck)이 나왔다. 강연의 키워드는 "yet."이었다. 시카고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점을 다 이수하지 못한 학생들의 성적표에 "낙제"라는 단어 대신 "Not, yet"이란 표현을 쓴다고 한다. 여기서 Not yet의 의미를 굳이 우리말로 번역해보자면, "아직 아니다."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학생은 학점 이수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학점을 아직 이수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직 아닐 뿐"이므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남겨둔 표현인 것이다.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닌 연구보고서 초안을 다시 읽어나갔다. 지금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을 학생들의 미래를 기대하고 상상하며, 그들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능력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기로 한다.
나 역시도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고 퇴직을 한 지, 4년이 지났다. 누군가 나의 근황을 듣고, 4년 동안 이룬 성과가 없으니 "실패했다."라고 마침표를 찍어버린다면... 나는 억울할 것 같다. 분명 처음보다 지금, 작년보다 올해, 어제보다 오늘,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다. 누군가 함부로 우리의 삶에 마침표를 찍고서, 비문 투성이라고 단정 짓는 무례함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부터 그렇다. 그리고 혹여, 누군가로부터 우리의 삶이 그런 억울한 평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실패했다 여기며 삶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오늘 밤 잠이 들면, 내일 아침에는 오늘보다 더 발전한 우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