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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Sep 16. 2021

엄마의 언니

<봉순이 엄마 편> 5.

 납골당 정문을 통과하려는데 차단기가 앞을 막았다.

 "고인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순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울 이모...'


 서울 이모. 처음부터 그녀는 내게 서울 이모였다. 엄마의 언니이고 서울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서울 이모' 불렀다. 그렇다 치더라도 서울 이모의 이름을 여러  들어봤을 텐데, 갑자기 떠올리려니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모의 성만 더듬거렸다. 다행히도 직원분이 명단에 이모의 이름을 찾아내 주었다.



 서울 이모에 대한 내 기억은 아주 단편적인 것들이다.

 서울 이모는 엄마나 둘째 이모와 달리, 여리한 체구에 얼굴이 작았다. 그 작은 얼굴에 늘 곱게 화장을 했다. 옷의 취향이나 헤어스타일도 남달랐다. 엄마와 둘째 이모가 뽀글뽀글한 아줌마 파마를 고수할 때, 서울 이모의 머리 컬은 부드럽고 단정했다. 비싼 미용실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세련돼 보였다. 어린 내가 봐도 이모가 예뻤다.

 그런데도 나는 이모를 무서워했다. 초등학교 시절, 이모가 우리 집에 며칠 놀러 와 계실 때였다. 방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이모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대뜸 '가시내가 다리를 쩍 벌리고 누워 있다'고 야단을 쳤다. 어린 마음에 민망하고 무서웠다. 그때부터 서울 이모는 신경질적인 사람, 날 별로 예뻐하지 않는 사람으로 각인되었던 것 같다. 서울 이모를 생각하면 무뚝뚝하다 못해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것이 이모의 고된 삶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건, 한참 그리고 한참 후였다.

 이모는 젊은 시절에 남편을 잃었다. 다음으로 아들을 잃고 가슴에 못이 박혔다. 그러고도 혼자서 서울에 남아 계속 살아냈다. 종종 서울 이모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가 있었다. 이모는 제부, 그러니까 내 아빠와 사이가 좋았다. 아빠의 유머감각을 특히 좋아하셨는데, 아빠가 우스갯소리를 하면 이모는 크게 웃었다. 그렇게 활짝 웃는 이모의 모습이 신기했다. 그럴 때면 이모가 무섭지 않았다.

 좀처럼 마음을 알 수 없던 서울 이모가 당신의 일기장을 내게 보여준 건, 내가 2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이다. 몇 주간 이모집에서 신세를 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모가 매일 일기를 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삐뚤삐뚤한 글자들이 노트에 큼지막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모가 노트를 휘리릭 넘겼기 때문에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 안에 이모의 가장 정직한 심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 같았다. 이모의 치매가 심해져서 요양병원에 가신 이후로는 일기장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다.   

 가장 최근에는 엄마의 휴대전화 사진첩 속에서 서울 이모를 보았다. 짧게 밀어버린 머리, 깡마른 몸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도 낯설었다. 이모의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지 않았다. 초점 없이 그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이모는 떠났다.


 서울 이모를 떠나보내면서 모두들 '잘 가셨다'고 말했다. 세상에 아깝지 않은 목숨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그렇게 살아계신들 삶에 무슨 의미가 있었겠냐고 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병원에 있던 이모는 이미 이모가 아니었기에, 이모의 영혼이 몸 깊숙한 곳 어딘가에 꽁꽁 갇혀 있는 듯했다. 그 삶이 더 가엾고 안쓰러웠다. 이모의 유골은 살아생전 소원대로 아들 옆에 안치되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깡마른 몸이 재가 되고서야,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



 서울 이모의 장례식은 이모의 막내 동생인 엄마가 상주를 맡았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의 언니를 떠나보냈다. 이미 오래전 엄마의 오빠가 떠났고, 엄마의 남편이 떠났고, 엄마의 엄마가 떠났었다.

 엄마의 엄마가 떠나던 날, 앞서 가는 상여를 뒤따라가다가 엄마는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어린애처럼 두 발을 바둥거리며 서럽게 울었다. 그보다 더 서럽게 "엄마!"하고 외쳤다. 그날의 엄마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내 외할머니가 엄마의 엄마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진심으로 깨달았다.

 엄마의 남편을 떠나보낼 때에도, 엄마의 언니를 떠나보낼 때에도, 엄마가 느낄 아픔이 얼만큼인지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아빠를 떠나보낼 때의 마음에 비추어보아, 엄마에게 그런 아픔이 더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태어나서 죽는 것은,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하는 자연의 순리임에도, 우리는 그 앞에서 늘 무너져 내려앉는다. 어떤 죽음 앞에서는 삶이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잔인하게도... 그러면서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그러면서 무너진 것들을 조금씩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러면서 삶을 눈곱만큼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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