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막내작가 Aug 01. 2021

여름, 귀뚜라미 우는 밤

<이계창 씨의 막내딸> 8.

 귀뚜라미 소리를 좋아합니다.

 특히, 늦여름에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를 좋아합니다. 낮동안 대단했던 무더위의 기세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한 공기가 밀려오는 밤, 그런 밤에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말입니다.

 늦여름 밤,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우면 열어놓은 창문으로 마당에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떤 날은 울음소리가 어찌나 크고 가깝게 들리는지, 엄마는 귀뚜라미 소리 때문에 잠을 깬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가 시끄러워서 더운 밤에도 창문을 닫고 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멋진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을 청하는 밤이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아늑함이 찾아옵니다.

 문득,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귀뚜라미 소리에 얽힌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기로 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니, 가장 먼저 당신의 과수원이 보입니다. 초가을 선선한 밤에 당신의 과수원에서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였습니다. 외딴 산속 과수원을 뒤덮던 밤하늘은 어찌나 까맣던지, 별들이 셀 수 없이 반짝였습니다. 그 밤하늘 아래 당신이 있고, 내가 있었습니다.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조용히 내 다리에 꼬리를 스치며 기척을 하는 바둑이도 있었습니다. 평온했던 밤, 그 배경에 귀뚜라미 소리가 있었습니다.


 조금 더 기억을 따라 올라갑니다. 외갓집 근처 냇가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던 밤이 나옵니다. 지금처럼 캠핑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당신은 빨간색 4인용 텐트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줄줄이 소시지처럼 탱탱한 줄에 조각조각 매달린 쇠막대기들을 이어 텐트에 끼우고, 텐트를 지탱해줄 줄을 잡아당겨 땅에 단단히 박았습니다. 텐트 바닥에는 당신이 군대에서 사용했다던 국방색 담요를 깔아주었습니다. 텐트 안의 냄새, 담요의 촉감만으로도 아늑함이 완성됩니다. 초등학생 시절 여름방학이면 당신과 함께 외갓집에 갔습니다. 종종 근처 냇가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습니다. 친척 언니, 오빠들까지 함께인 날은 4인용 텐트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텐트 위로 커다란 천막 지붕을 만들고, 그 아래에 특대형 사각 모기장을 둘렀습니다. 바닥의 울퉁불퉁한 자갈들을 고르고, 집에서 챙겨 온 두꺼운 겨울 이불을 몇 겹씩 깔았습니다. 낮동안에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할 만큼 무덥고, 밤이 되면 두꺼운 담요를 하나씩 뒤집어쓰고 잠을 자야 할 정도로 추웠습니다. 그날의 냇가, 깜깜한 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졸졸졸 흘러가는 냇물 소리, 그곳에도 귀뚜라미 소리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있고, 내가 있었습니다. 


 거기였나 봅니다. 기억이 가닿는 가장 먼 곳이 그곳이니, 귀뚜라미 소리에 아늑함을 느끼기 시작한 곳이 바로 거기였나 봅니다. 돌아보면, 참 행복했다는 말을 붙여주고 싶은 그런 밤입니다. 감사한 밤이었지요. 기적과도 같은 밤이었습니다.


 그날의 귀뚜라미 소리가 기억 속에 선명하게 울려서, 문득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나는 당신이 내 곁에 있던 그 밤으로 곧장 날아가는 상상을 합니다. 당신의 숨결이 있던 밤, 귀뚜라미가 우는 밤, 그 그리운 밤을 찾아갑니다.


 어느 늦여름 밤, 친정집 거실에 누워 마당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함께 들어요 ^^


매거진의 이전글 잔소리 대마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