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조카 편> 6.
책장에 언제부터 꽂혀 있었는지 모를 오래된 공책을 꺼내 들었다가, 그림 한 장을 발견했다. 사용하지 않아 새 것이나 다름없는 공책의 맨 첫 장에 누군가 몰래 그림을 그려두었던 것이다.
'이게 뭔가?' 싶어 그림을 들여다보던 나는, 잠시 후 말문이 막혔다.
'괴수 이몽진' (이몽진은 내 별명 중 하나다), '잔소리', 그리고 '살려 줘'라 썼다가 '말려 줘'로 고친 것 같았다. 언니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어떤 놈인지 찾아내!"
그림을 본 언니는 박장대소를 했고, 곧바로 범인을 찾아냈다.
"여기 있네, 자기 얼굴을 떡-하니 그려놨네."
그랬다. 그림 속에서 "예~"라고 외치며, 까까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는 의심 없는 나의 첫째 조카였다. 추측컨대, 조카가 9~10살 즈음에 그린 그림 이리라.
그림은 볼수록 가관이었다.
괴수 이몽진은 뿔이 달린 걸로도 모자라, 다리가 세 개였다. 주 무기가 잔소리인 모양이다.
'아..... 이놈의 시끼.....'
중3이 된 첫째 조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언니가 그림을 보여주며 물었단다. 조카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아마 내가 그린 그림은 아닐 걸?"라고 부인을 했단다.
하지만 나는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조카들에게 적지 않은 잔소리를 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잔소리 때문에 먼 훗날 괴수가 될 줄 알았더라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빠는 잔소리가 심했어."
아빠와 30년을 함께 산 나와, 나보다 3년을 더 살았던 언니가 입을 모았다.
"너네 아빠는 잔소리가 심했어."
아빠와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아온 엄마가 덧붙였다.
가족들의 만장일치로, 아빠는 명실공히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빠의 잔소리는 대부분 안전사고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어도 차가 오는지 확인하고서 건너라.
* 버스 정류장에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어라.
* 버스 좌석은 너무 앞도 말고, 뒤도 말고, 중간 즈음에 앉아라.
* 바람이 세게 불 때는 간판 아래로 걷지 말아라.
* 밤늦게 다니지 말아라. 범행 대상이 누가 될지 모른다.
나이가 들고 삶의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아빠의 잔소리가 모두 맞는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호를 보지 못하고 횡단보도로 돌진하는 자동차가 있고, 강풍에 떨어진 간판 때문에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다. TV에서는 '묻지 마, 살인'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어쩌면 나는 아빠의 잔소리 덕분에 지금껏 무탈하게 살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잔소리는 주로 현관문 앞에서 시작되었다.
언니나 내가 집을 나설 때, 혹은 두 딸을 남겨두고 아빠가 집을 나설 때, 현관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는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아빠의 잔소리는 마치 대문을 여닫을 때 철컥! 하고 나는 소리만큼이나 귀담아듣지 않는 소리였다. 귀담아듣지 않을 걸 알아서였는지, 아빠는 매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고3이었던 해였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빠가 여느 날과는 달리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어색한 고백을 했다.
"우리 막내,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들은 건, 사춘기 이후 기억이 뜸하다. 어린 시절에는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 날 아빠에게서 들은 사랑한다는 말이 지금껏 내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날의 사랑한다는 말은 아빠의 잔소리 대신이었고, 그 숱한 날들의 잔소리가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짐작해본다.
조카들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걱정' 때문이었다. 걱정이 너무 지나친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두 녀석 앞에 펼쳐진 세상 모든 일이 걱정스럽다. 아빠도 그랬겠지. 두 딸들이 혹여 다칠까, 혹여 나쁜 일이 생길까,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음이었겠지. 너무나 당연해서 들리지 않던 말들이, 이제와 돌아보니 나를 사랑했던 아빠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빠에게 전할 방법이 없으니... 대신 조카에게 말해줘야겠다.
이모는 '이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것을 너에게 전해주는 것이라고. 그것이 잔소리의 탈을 쓴 '사랑'이라는 사실을 녀석이 언제쯤 알아차려줄까? 하지만 사랑의 탈을 쓴 '잔소리'가 되기 전에 이제 그만 줄여야겠다. 아마도 무지 애를 써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조카에게 이것만은 꼭 물어봐야겠다. 그림에서 KTS는 무엇이냐고. 혹시 KBS(공영방송)와 KTX(고속철도)를 헷갈렸던 것이냐고.
* '이할아버지'는 아빠의 성을 따서 만든, 네 살이던 첫째 조카가 외할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