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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Apr 26. 2021

너의 일상이 나의 행복이란 걸

<사춘기 조카 편> 5.

 "이모! 요즘은... 모든 일상이 다 행복해."

 열세 살 조카의 말에, 나는 "왜?라고 물었다. 곧이어 행복의 이유들이 나열되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작년과 달리 올해는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매일 학교에 등교하는데, 6학년이 된 후 친구들이 많아져서 행복하다고 했다. 조카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미술학원에 같이 다니는 친구, 학교에서 노는 친구, 컴퓨터 게임을 할 때 같이 접속하는 친구가 따로 있단다. 그 외에도 담임선생님이 안 무섭고 친절하시단다. 조카는 진심으로 매일의 일상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진심으로 부러웠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행복하다니. 바꿔 말하자면, 행복한 일들이 날마다 반복된다니. 그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모든 것'이라니. 이 녀석이야말로 '오늘'을 천국에서 살고 있구나.


 그날 이후, 조카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나의 일상은 어떠한가 자주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 내게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 아니면 불행한가?"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행복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내게 '너의 행복은 참 소박하구나.' 하고 비웃을 수도 있고, 혹은 '조금 더 잘 살지, 왜 그렇게 살고 있어?' 라며 속상해할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보기에 딱히 '행복하다' 여길만한 조건들이 아닐지 몰라도, 나는 지금 내가 짊어진 고민과 짐을 포함하여, 삶이 감사하고 만족스럽다. 그럼에도 단계 나아가 '나의 일상이...', 그것도 '일상의 모든 순간이 행복한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다.


 문장이 좋고, 글이 좋지만, 매일 적어나가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내 일상을 모두 채우기에는 부족한가 보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설레는 구름이지만, 관측 시각마다 올려다봤던 구름이 내 일상을 다 채우기에는 부족했었나 보다. 가장 큰 이유를 가져다 놓아도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 나의 일상을 행복으로 채워줄 것들을 더 수집해본다. 집 근처에 좋아하는 샌드위치 가게가 생겼다는 사실, 수수꽃다리 꽃이 활짝 피어 한동안 그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 얼마 전 2TB 외장하드가 공짜로 생긴 사실을 비롯해, '이것도 행복이라 할 만한가?' 하는 것들까지도 꾸역꾸역 찾아냈다. 그런데도 일상을 행복으로 모두 채운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을 담는 것처럼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입을수록 늘어나는 스웨터처럼, 나이를 한 살 더 먹을수록 행복을 담을 '일상'이란 주머니는 점점 늘어나버린 모양이다. 이전보다 더 가득 채워야만 행복해진다고 커다란 입을 벌리며 나를 재촉한다.


 그렇게 3주가 흘러가던 무렵, 며칠 전이었다.

 꿈속에서 조카를 잃어버렸다. 8살 어린 조카를 애가 타게 찾아다니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모든 게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심장이 여전히 두근거렸다.

 그날 저녁,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꿈에 너를 잃어버려서 얼마나 슬펐는지 몰랐다고 얘기했다.

 조카가 웃었다.

 "괜찮아, 꿈은 반대야."

 뒤이어, 자기는 새로 산 휴대폰을 아스팔트 길에 떨어뜨리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나도 말했다.

 "괜찮아, 꿈은 반대야."


 그날 밤, 문득... 혼자서 혀를 끌끌 찼다. 그동안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손에 어떤 물건을 쥐고서, 그 물건을 찾겠다고 한참 동안 방안을 뒤진 기분이었다.

 모든 일상이 행복하다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너의 손을 잡아볼 수 있다는 것. 네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 내 일상이 행복으로 모두 채워지고도 남았다. 바로, 너의 평범한 일상이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잊고서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더 주워 담으려고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주머니만 더 늘어나버렸다.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그래서 행복하면 온전히 행복하고, 마음이 속상할 땐 또 온전히 속상해하는, 삶의 주머니가 심플한 열세 살 너의 곁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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