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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Dec 18. 2021

어젯밤에 꿈, 꾸셨나요?

: 몸과 따로 놀기를 좋아하는 머리가 밤새 혼자 하는 일.

 일주일에 두 편의 글을 발행하겠다는 거대한 계획을 품고 시작했던 브런치의 결과는, 한 달에 평균 서너 편의 글이었다. 그마저도 딴짓을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뜸해지더니, 급기야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어갔다. 말 그대로 핑계였다. 글을 쓰는 능력도 '근육'이라더니,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줄어드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가 보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워서 쓰지 않으니, 더더욱 잘 써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어떻게든 글을 완성하고 보자는 생각을 붙잡고 늘어졌다. 2주 전에 떠오른 글감을 붙들고 씨름해오던 중, 오늘은 기필코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열 손가락의 준비운동을 마쳤다. 혹여 졸작이라 하더라도 일단 완성을 해야 수정을 하든, 반성을 하든, 뭐든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오늘의 1차 목표는 저녁 메뉴로 찜해놓은 목이버섯 밥을 짓기 전에 글의 초안을 완성하는 것. 1차 목표 실패 시 2차 목표는 자정 안에 글을 완성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글을 발행하기 전에는 책상 앞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거참, 거창하다. 이렇게 글 서두에 잔뜩 힘을 주어놨으니 오늘 글은 이미 망한 걸로 치고, 마음 편하게 수다를 떨기로 한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서, 언제 잠이 든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진 기억이 까마득하다. 꿈도 꾸지 않은 채 아침까지 긴 잠을 자본 게 언제였더라?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는 몸과 마음이 매일 고된 터라, 밤이면 그야말로 눕자마자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드디어 하루가 끝났다. 나 잔다!' 하고 눈을 감을 때였고, 그로부터 5분 후 즈음에 엄마가 나를 깨웠다. "얼른 일어나! 학교 늦어!" 분명 조금 전에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아침이라고? 억울했다. 내 밤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이 끝나자 억울함도 사라졌다. 거의 대부분의 날에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몸이 피곤해서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드는 날에도,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 잠이 든 날에도 꿈을 꿨다. 잠이 깬 후에는 꿈이 선명하게 기억나거나, 꿈의 내용은 가물가물하더라도 꿈을 꿨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기억했다. 꿈에 대한 기억이 또렷할수록 잠을 푹 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학창 시절이 끝남과 동시에 꿀잠이 사라졌다.


 이후... 잠이 들면 으레 꿈을 꾸는 것이라 여기며 20여 년을 살다 보니, 어느 날 '꿈 부자'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꿈 부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꿈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유난히 생생하거나 인상적인 꿈의 내용을 서둘러 글로 남겼다. 제아무리 생생하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기억하는 꿈은 마치 따뜻한 손바닥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처럼 0.1초 만에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서, 머릿속에 떠다니는 장면들을 문장으로 받아내기 위해 손가락들이 바빠졌다. 하룻밤의 꿈으로 잊힐 것들이 글자로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들을 다시 들쳐볼 때마다 나는 같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고스란히 그날의 꿈속으로 되돌아가 그때의 기이하고 신비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기억이 왜곡된 장면도 있겠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다. 꿈을 기록하는 일은 소소한 재미가 있다. 나름의 취미활동이 하나 생긴 셈이다.


 기록된 꿈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발견한 사실도 있다. 꿈의 내용은 대부분 그날 낮동안에 내가 겪거나, 보거나, 생각한 것들이다. 특이한 점은, 그것들이 아무런 맥락도 없고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마구 뒤섞여 있어서 언뜻 보기에는 생뚱맞은 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조각들을 하나씩 잘 떼어내다 보면, 어디서 온 조각들인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낮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내가 살아온 삶의 전혀 다른 기억과 아주 조그마한 교차점이라도 있으면, 그것들을 엮어 완전히 새로운 꿈을 만들어냈다. 퍼즐 조각 같은 꿈의 장면과 현실을 잇는 연결고리를 발견하면, 혼자 조용히 박수를 친다. 이 꿈의 창조자는 누구일까? 도대체 이토록 마구잡이로 버무려놓은 꿈은 누가 만든 것인가? 과연 내 뇌가 한 짓이 맞을까? 그렇다면 내 뇌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나와 내 머리가 서로 다른 존재처럼 느껴진다. 경이롭다 느낀다.


 경이로운 꿈이 있는가 하면, 어떤 조각들은 대놓고 낮동안에 몸이 하던 일을 반복한다. 주로 평범하지 않은 일을 했거나,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무언가를 했던 날이다. 낮에 갔던 소풍을 꿈속에서 다시 간다거나, 영화관에서 본 공포영화가 끝나지 않고 밤새 이어진다거나,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순간이 꿈속에서 자꾸 반복되는 식이다. 몇 주 전에는 며칠 동안 프레젠테이션 작업에 열을 올렸는데, 밤마다 꿈속에서도 PPT를 만들었다.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나면 어쩐지 밤을 꼬박 새운 것처럼 피곤한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피곤한 꿈은 나라의 녹봉을 받던 시절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일을 하던 때였다. 내가 소속된 기관에서 중국 기관과 교류를 했는데, 그 해는 중국 기관의 대표단 7명이 일주일 간 한국에 방문을 하기로 했다. 양 기관 간 협력회의, 기술교류 세미나를 비롯해서 대표단의 숙소, 식사, 이동 등의 세세한 것까지 모든 일정을 준비해야 했다.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했음에도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되었고, 아마도 내 머리는 24시간 그들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급기야 대표단이 도착하기 일주일 전부터 나는 그들을 꿈속에서 먼저 만났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온갖 상황들(예를 들면 중국어 통역사가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회의 자료를 잃어버리거나, 비행기 시간을 놓친다거나 등)의 시뮬레이션이 매일 밤 이어졌다. 며칠 후 대표단이 실제로 왔고,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현실의 그들은 일주일 전에 떠났지만, 이후 일주일은 더... 밤마다 내 꿈속에서 대표단의 일정이 이어졌더랬다. 내 몸이 '이제 끝났다! 너무 피곤해.'를 외치며 잠이 든 사이, 신경과민증에 걸린 내 머리는 눈치 없이 그만해도 되는 일을 밤마다 계속한다. 열심인 건 좋은데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나로서는 피곤한 일이다. 


 그런 머리가 가끔 기특할 때도 있다. 내가 내 머리에게 '어라!' 하고 진심으로 놀라는 순간이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이 녀석이 꿈속에서 글감을 건져 올린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머리가 꿈속에서 어떤 생각들을 따라가다가 이 생각과 저 생각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명쾌한 한 문장으로 표현해낸 다음, 꿈속에서 내게 속삭인다. '빨리 기억해 놔!'

 하지만 꿈속에서 들려오는 문장을 아침까지 기억하는 건, 꿈속의 장면이나 스토리를 기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마구 뛰어가고 있었어. 뒤에서 곰이 쫓아오고 있었거든!'을 기억하는 것과 '어젯밤 꿈속에서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마구 뛰어가고 있었는데, 그때 소나무에 걸린 푯말에 00000이라고 쓰여 있었어.'를 기억하는 차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 문장을 기억에 붙잡아 두려고 온갖 방법을 썼다. 그러다 키워드가 될만한 단어 하나를 기억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꿈속에서 "열심뿐인 소리는 아름답지 않다."는 문장이 들려왔을 때는 '소리'라는 단어를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아침이 되었을 때, '소리'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꿈속의 문장이 되살아날 때도 있고, 그저 "뭔 소리야?"가 될 때도 있다. 그렇게 영원히 묻혀버린 문장들이 있고, 문장을 기억해내기는 했으나 도무지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는 뜬구름 잡는 문장으로 남기도 하며, 아주 아주 가끔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기도 한다. 


 몸과 따로 놀기를 좋아하는 머리 덕분에 꿀잠을 포기하고 얻은 가장 멋진 경험인 건 분명하다. 가능하다면 자주 경험하고 싶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럴리는 없다. 그러니 꿈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내 열 손가락으로 매일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오늘 밤 꿈은 내 머리가 그저 마음껏 뛰노는 무대가 되기를 바라며... 당신의 밤 역시 좋은 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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