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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Dec 30. 2021

'술찌'의 와인 넘보기

: 술 찌질이(술찌),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소주는 한 잔, 맥주는 반 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다. 

 조금 더 마시면 온 몸이 빨개지고, 거기서 더 마시면 코만 하얗게 변한다.

 계속 마시면 얼굴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다. 그 대신 주변 사람들이 못 볼 꼴을 보게 된다.



 술자리에서는 아직 소주 한 잔도 비우지 않은 주제에, 테이블에 있는 모든 술을 혼자 다 마신냥 얼굴이 취해 있다. 그런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얼굴이 곧 터질 것 같은 내가 걱정이 돼서 혹은 무서워서 더 이상 내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술은 나에게 '마시면 괴로운 것'인 동시에, 그럼에도 '가끔 즐기고 싶은 것'이다.

 '가끔'이란 무더운 한여름 저녁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거나, 마음이 울적한 날 소주 한 잔이 생각나거나, 연말이 되면 싱숭생숭한 마음에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싶은 때 등을 일컫는다.


 와인이 마시고 싶을 때면 주로 대형마트의 와인코너나 집 근처 와인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가게에 간다. 와인에 대해 1도 모르면서 진열장에 붙은 라벨들을 신중하게 살핀다. 그러고 있으면 대부분의 경우 직원분이 다가온다. 그리고 적당한 와인을 추천해준다. 그러면 나는 추천해준 와인을 잔말 없이 들고 나온다. 아주 가끔 특정 와인을 찾기도 하는데, 그것은 '소량' 와인이다. 와인을 따면 한 번에 다 못 마시기 때문에 용량에 비해 조금 비싸더라도 소량으로 담긴 와인을 사거나, 코르크 마개 대신 재밀봉이 가능한 다른 형태의 마개로 된 와인을 찾는다. 많은 경우 그런 와인을 찾기가 어렵긴 하다.


 그렇게 추천해준 대로 와인을 마시고 돌아서면, 맛이 어땠는지 뭘 마셨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 맛을 본 와인의 정보를 하나씩 수집해보기로 했다.


 며칠 전 와인샵에서 와인 한 병을 샀다. 와인 애호가인 연예인 장동건이 추천해서 유명해졌다는 와인 한 병을 들고 집으로 왔다. 

 

 프랑스 산 와인으로, 중간 정도의 단맛(이 기준 자체가 참 우습지만, 어쨌든 단맛이 강한 와인에 비해서는 덜 달고, 달지 않은 와인에 비해서는 더 달았으니 중간이다.)에, 750mL 한 병의 가격은 18,000원, 알코올 도수는 13%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돌려서 열고 잠글 수 있는 마개라, 마시고 남은 와인을 보관하기 편했다. 물론 한 번 오픈한 와인은 공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두 번째 마실 때 향이 조금 변하더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빛깔이 어떤가? 향이 어떤가? 바디감이 어떤가? 등은 모르겠다.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내 평은,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구나 한 번에 다 마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재구매 의향은 없다. 아직 마셔보지 못한 와인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당분간은 새 와인 개척에 집중하기로 한다.

 

 내친김에 와인잔도 샀다. 설거지를 하다가 와인잔을 몇 번 깨뜨린 뒤로는 그냥 적당히 투명한 유리컵에 와인을 마셨더랬다. 연말이라,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와인잔에 담으면 와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잔을 구매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 와인잔이라면, 아래와 같다.

 우아한 자태의 잔들은 모두 무시하고, 씻기 편한 잔을 샀다.

 '이번에는 깨뜨리지 말아야지!'

 내년 연말까지 와인잔이 무사하길 바란다.


 홀짝홀짝 와인 한 잔을 마시다, 볼 상 사납게 빨개진 얼굴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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