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서라는 단어가 어렵고 듣고 싶지 않다.
용서와 무한정의 관용은 같은 개념으로 들린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건과 잔혹한 전쟁은 선 넘었을 때 지적 대신 그냥 넘어갔을 때 벌어진다. '아 쟤한테는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낙인이 찍히면 폭풍같은 무례함이 펼쳐진다.
히틀러를 방관한 유럽은 2차세계이란 참혹한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동물농장>의 돼지새끼들은 사과랑 우유를 지들끼리만 쳐먹으며 다른 동물들에겐 농장을 잘 운영하기 위한 두뇌운동한단 말도 안되는 선동질을 한다. 이때 다른 동물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묵인했던 진실로 동물농장은 나폴레옹의 패악질을 용인한,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멈춘다.
용서와 무제한의 관용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이를 혼동하게 하는 건, 팩트를 외면한 채 용서부터 언급해서다.
불같은 분노로 사람이 망가져선 안된다.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용서를 감히 선언함으로써 자신을 왜곡해서도 안된다.
사실 확인이 먼저다. 용서란 말에 앞서 가리워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길 바란다.
좋은 사람들의 용서로 세상은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악한 사람들을 쉽게 용서한만큼 세상은 어두워지기도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선거 잘해라.